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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얼굴은 못생겼잖아요


BY 칵테일 2000-10-13


내 얼굴은 못생겼잖아요



내 얼굴은 못생겼잖아요

어제는 특별한 약속도 없이 갑작스럽게, 남편선배네 부부와 함께 저녁을 같이 먹게 되었습니다.

남편선배네는 덕소에 사는 사람들인데, 덕소란 곳이 아파트만 덜렁 새로 많이 지었다뿐이지 그동안 마땅히 외식할만한 곳이 없던 터에 맛있는 춘천닭갈비집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우리 가족도 닭갈비를 좋아하는 편이지만, 우선은 서로 자주 만나는 집안이다보니 그렇게 갑자기 자리도 만들어지네요.

어쨋든 새로 생긴 집은 우선은 깔끔하고, 양도 푸짐하니 많이 주는데다가 참 친절하고 깍듯합디다.

우리 분당에도 닭갈비집이 몇 군데 있긴 하지만, 어제갔던 그 집에 비해서는 모든 것이 뒤떨어집니다.

분당은 값도 비싸고, 맛도 별로고, 양은 그야말로 '에개개....'소리가 저절로 나올만큼 아주 적게 주거든요.
(심 두꺼운 양배추가 그나마 '양'을 채워줍니다.)

맛있게 먹고 우리 일행은 그 선배 부부의 집으로 향했습니다.

강바람이 불어서인지 어디보다도 더 춥게 느껴지는 밤의 한기가, 새삼 이제 겨울이 멀지 않았음을 느끼게 하더군요.

그 집에는 딸만 셋이 있어요.
초등학생, 유치원생, 갓난 아기..... 이렇게 셋이죠.

그런데 그 세 딸의 생김생김은 참으로 다 달라요.

대부분 같은 형제끼리는 어디가 닮아도 닮기 마련인데, 어찌된 게 이 집은 영 따로국밥입니다.

큰 딸은 초등학생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뚱뚱하고 키도 큽니다.

둘째 딸은 유치원생으로 야무지고 깜찍하게 생겼습니다. 아, 연예인 '김현주'의 어린시절이 아닐까싶을 만큼 아주 흡사하게 닮아 예쁩니다.

막내 딸. 아직 갓난아기다 보니 미모(?)를 논하기가 조금 불가능하네요.

남편과 그 선배가 거실에서 새로 차린 주안상을 받아 술을 주거니 받거니 하고 있을 때, 나는 아이들 공부방으로 건너가서 그 집 큰딸과 함께 있었습니다.

그 아이는 책상에 앉아 무언가를 열심히 그리고 있더군요.

초등학생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덩치를 가진 그 아이는, 모르는 사람이 보면 아가씨라고 해도 믿을 정도입니다.

나는 가만히 다가가 그 아이가 그리는 그림을 보았습니다.

예쁜 여자아이를 만화로 그리고 있었습니다.

색색가지 색연필을 번갈아 칠해가며 아주 예쁜 여자 아이를 그려가고 있었습니다.


"영은아... 누구를 그린 거야?"

"제 동생, 영윤이요!"

"영윤이? 그런데 영윤이가 이렇게 커? 아가씨같은데?"

"네! 영윤이가 이담에 컸을 때 모습이에요."

"그래? 그런데 왜 영윤이를 그려? 너 모습은 안 그려?"

"저는 못생겼잖아요. 제가 어른이 되면 끔찍할거에요. 생각하기도 싫어요. 어유~~~"

그 아이는 정말 생각하기도 싫다는 듯, 그림을 그리다말고 몸서리를 칩니다.

그때 언제 들어왔는지 내 남편도 내 곁으로 오고 있다가 그 소리를 함께 들었습니다.

남편과 나는 너무 놀라 서로 얼굴을 마주 보고 의아해했습니다.

덩치가 아무리 크다고는 해도..... 아직은 어린 아이(소녀라고 하기에도 너무 어린)일 뿐인데, 왜 저 아이가 자기 자신에 대해 저런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요.

"영윤이는 예쁘잖아요. 그래서 내 동생을 그리는 거에요. 미운사람은 그리면 안돼요."

나는 남편을 내보내고 영은이의 손을 잡고 말해주었습니다.

쉽게 말해서는 안 될 그 무엇이 있다고 나는 생각했고, 그것을 꼭 그 아이에게 진심으로 말해주고 싶었습니다.

나는 그 아이의 손을 잡고 한참을 있다가 말을 했습니다.

"영은아. 이 세상에는 다 예쁜 사람만 있어. 미운 사람도 찾아보면 다 예쁜데가 있단다. 그리고 영은이는 엄마 일도 잘 돕고, 동생들도 잘 돌봐주잖아. 그러면 사람들이 너를 얼마나 예뻐하는데...... 예쁜 건 얼굴만 예쁜 게 아니야. 사람들이 예쁘다고 하는 건 얼굴만 가지고 말하는 게 아니야. 그러니까 네가 못생겨서 어떻다는 말은 다시는 하면 안돼.... 알았지?"

그 아이는 두 눈을 반짝이며 나를 바라봅니다. 그 아이와 눈이 마주치자 하마트면 눈물을 흘릴 뻔 했습니다.

저렇게 마음약하고, 착하기만 한 아인데...... 안타까웠습니다. 진심으로.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큰아이와 작은아이의 외모를 비교하는 말을 그 아이들 듣는데서 함부로 이야기했던 모양입니다.

그러다보니 어느 새 그런 말을 자주 들은 큰아이는 자기 외모에 대해서 나름대로 체념한 것이구요.

도대체 누가 이 아이의 가슴을 이렇게 멍들게했을까요.

그 아이를 위해 진심으로 마음아파서 그 아이 손을 잡고 그렇게 한참동안 있다 나왔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는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도대체 왜 세상이 이렇게 되었을까.

연예인들은 그들의 직업때문에 미모를 추구한다고는 하지만, 이젠 어린 아이들까지도 외모컴플렉스를 겪어야하는 세상이라니.....

정말 마음이 아프더군요. 남편과 그런 이야기를 했더니 남편은 다 사람들이 그렇게 만든거라고 하네요.

그렇죠....어쩌다가 이것도 사람들이 만든 잘못된 굴레가 되어버렸어요. 아름다움이란 것도.

나는 그 아이가 얼굴보다는 마음이 예쁜, 어디서든 남에게 빛이 되는 참된 여자로 자라주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칵테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