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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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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차의 절규(上)


BY 프리즘 2001-11-29

안녕하세요~
전 92년생이구요 이름은 '트라' 성은 '엘란'이랍니다.
그동안의 제 업적은 마빡의 계기판에 새겨진 207,000km 라는 숫자를
보면 대충 짐작하실거에요.


저의 주인은 '프리즘'이라는 괴상한 이름을 가진 성질더러운 여잔데요
얼마나 부려먹는지 이 나이에 은퇴도 못하고 아직 현역이랍니다.
제 동기들은 벌써 몇년전에 폐차장에서 운명을 달리했거나 이름모를
한적한 길가에서 고려장을 당한 애들이 많다더군요.
이게 행복한건지 불행한건지 저도 헷갈리네요.


하지만 그동안 당했던 일들을 생각하면 억울해서 눈물이 앞을 가리죠.
지 가고싶은대로 데려가주고, 춥거나 덥거나 아무 상관안하며 볼일
끝날때까지 그 자리에 서있어주고, 가끔 침대노릇 해주길 원할때는
포근히 감싸주었건만 이 여자가 나에게 해주는거라곤 딸랑! 굶어죽기
일보직전에 기름통 채워주는 것밖에 없걸랑요.
그래도 꼴에 '자동차10년타기운동본부' 회원이라네요.
워셔액넣는 구멍이 어디있는지도 모르는 주제에.....


지금 저의 앞코(범퍼)는 완전히 깨지고 갈라져있어요.
얌전히 잘가다가 지 승질난다고 주차장 벼루빡을 꽝하고 박았던 그날
이 예쁜 콧등이 내려앉고 부서졌었죠.
뭐, 달릴땐 괜찮아요.
워낙 속도를 내는 주인덕에 옆차선의 멋진놈이 '저차 찌그러졌자나!'
라는 표정으로 불쌍한듯 날 쳐다보기전에 저멀리 가버리기 때문이죠.
문제는 주차장에 서있을때에요.
줄줄이 늘어서있는 다른 애들이 처음엔 안됐다며 위로해줬었는데
그 꼴을 벌써 2년째 하고있으니까 이젠 왕따가 되버렸답니다 ㅠ.ㅠ
아 젠장...그나마 언제나 옆자리에 나란히 서있으면서 틈만나면 나랑
놀아주던 403호 뉴코란도넘...며칠전 새로들어온 201호 빨간터뷸런스
년이 삑삑! 소리로 유혹하자 홀라당~ 넘어가버렸어요.
그래서 요즘은 내 옆에 서있지도 않는다니깐요.
슬픈 일이지만 주인잘못만난 팔자탓으로 돌리고 참고있지요.


뉴코란도 자슥...충분히 이해는 해요.
전 앞코뿐만 아니라 눈도 애꾸에다 배때기엔 긁힌 흉터도 꽤있거든요.
애꾸눈된지는 3년이구요, 배에 흉터는 하도 오래되서 기억도 안나요.
한두개라야 기억을 하죠.
지난 여름엔 왠 아저씨가 궁딩이로 허리를 박아서 문짝이 꽤나 음푹
들어갔거든요?
승질끝내주는 우리 주인, 쌈박질해가면서 수리비 10만원 받아냈죠.
솔직히 이거 고쳐봤자 2만원도 안들거든요.
전 이 기회에 병원가서 주사라도 맞혀줄거라고 기대했어요.
훗.....말을 말아야겠죠.
그 돈으로 식구들 바리바리 싣고 가더니 식당가서 밥먹더군요.
식당주차장에서 첨보는 애들한테 찌그러진 앞코때매 놀림당하는 기분
정말 더럽다니깐요.
게다가 술이라도 한잔 걸치고 저를 몰때면 오늘이 제삿날이구나 싶어
서글픈 눈물이 줄줄 흘러내리지요.
그래도 그 날은 대리운전 시키더군요.
돈좀 챙겼다 이거였겠죠.


제몸에는 주인동생이 갖다준 커다란 스티커들이 여러개 붙어있어요.
나름대로 있어 보이는척 할때도 있죠.
스킨스쿠바는 공기통도 못만져본 프리즘아줌마가 얼마나 대빵만한걸
여기저기 붙여놨는지, 얼핏보면 스쿠바베테랑이 몰고다니는 자동차로
착각하게 되거든요.
근데 이거요? 사실 도장벗겨진거 감추려구 붙이고는 균형맞춘답시고
덕지덕지 도배해논거에요.
그나마 붙인지 하도 오래되서 군청색이 하늘색으로 보일 정도구요,
귀퉁이는 떨어져나가 진짜 꼴사납다니깐요.


겉은 그렇다치고 속은 신경쓰는줄 아세요?
저요...남들 다하는 시트커버....어흑~....한번도 입어본적 없어요.
추운 겨울날 바람쌩쌩부는 주차장에 서있으려면 팬벨트가 꼿꼿이 얼고
깨진 앞코에 얼음이 서리는데, 정말 너무한거 아니에요???
2년전에 무슨 맘을 먹었는지 운전석에만 얇은 옷을 하나 입혀주데요.
저 감격해서 rpm이 5천까지 올라갈뻔 했자나요.
거기다 덤으로 핸들에 기어봉에 주차브레이크 스틱에 까지 장갑을
씌워주더라구요.
네네...다 좋아요.
하지만 2년내내 한번도 벗긴적 없어서 그 밑에 제 살이 썩은 악취로
짓물러가고 있다고요 ㅠ.ㅠ
적어도 여름에는 이 장갑, 한번쯤 벗겨줄수도 있자나요!!


휴....저 오늘 일을 너무 많이해서 무지 피곤하거든요.
우리주인 씹으려면 3박4일도 모자라지만 오늘은 이쯤에서 맛배기만
보여드리고 다음에 또 꼰질러 드릴께요.
바퀴가 너무 아파서 담번에 움직일때까지 맛사지좀 해야겠어요.



여러분~~~
저 '트라' 잊지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