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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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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두리 삶의 이야기(13)


BY 영광댁 2001-02-10

설 명절을 다녀와서

혼잣말 (2)

커다란 저수지 아래를 지나가고 저수지 아래를 이어지는 큰 수로들이 잠들어 있었네요.
저 수로들 곁의 논으로 체육복을 입고 들어와 옆으로 쓰러져 도체 질서라고는 없는
보리들을 베었다고 해봅니다. 그때도 일 안하고 넘어가는 친구들도 많았는데 처음 잡아본
낫이였는데 어쩌자고 그렇게 꼼꼼하게 보리를 벤다고 논바닥에 엎그려 구슬땀을 흘렸을까.

보리만 베었나. 모내기도 했지요. 노력동원이란 이름아래서. 참 미련하기도 했어.
시키는 대로 다 했으니까. 종아리에 붙던 거머리들 징그럽게 달라들기도 했어요.
아무리 뗄래도 떼지지 않았거든.미끌거리고 , 울었던가, 다른 어떤 순한 얼굴이 내 다리에
붙어 있던 거머리를 떼어 냈을까. 한 마지기의 모내기가 끝나면은 모두들 수로로 달려가서
그 이쁜 종아리들을 씻기도 했어요. 다시 또 논속에 들어갈거면서 씻고 씻고 또 씻고...
이 길 가득 재잘대던 말소리들도 물따라 흘러가 버렸을까..

저수리 아랫말에 살던 계집애처럼 말을 하던 그 남자는 미용을 배우더니 성공했을까?
오랫동안 장가를 못가 터덕거리다가 중국처녀와 결혼했단 소리도 실려오고 조금 살다가
그 색씨가 살림을 뭉쳐 들고 고만 내?鍛募?소리도 있어지더니...

달려 도망가는 저수지마을을 뒤로 하고 작년에 전화를 서너번 한 종희네 마을을 지나칩니다. 생각지도 않았는데 그냥 썩을년 이 튀어나왔어요. 하긴 죽으면 다 썩은건데 미리 그런 말을 할것까지도 없는데... 아들 둘이랑 이쁜 남편이랑 이 마을 친정어머니집에 와 있을텐데.
스쳐갑니다. 스쳐왔던 것이 그 하나뿐이였겠어요마는.

왼쪽으로 외벽으로 쌓은 교회를 지나칩니다. 논가운데에 자리잡은 허름한 교회가 있고
면사무소 자리였다가 이제는 경로당으로 변한 면사무소 자리 앞에 붉은 벽돌로 뽀쪽탑까지
세운 그야말로 근사한 교회가 서 있었어요. 어디를 가든지 교회건물이 참 멋있다는 생각을 합니다.저 허름한 교회에서 시작하여 대처로 나가 성공하신 김 목사님은 이제 하늘로 가셨고 저 교회에서 발붙이고 살았던 K목사님은 그가 늘 사랑을 위하여 기도했던 순박한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해 쫓겨갔습니다. 진정한 사랑이 눈멀었겠죠. 밥이 쌓이는 녹을 부여받았을 때니.그 많았던 축복기도에 누가 축복을 받았느냐고 물을 수 없었겠지요.
오빠라고 불렀던 J도 이제는 목사님이 되어 건강한 삶을 꾸리고 있겠지. 절로 한숨이 모아졌네요. M시에서 삼년동안 쉬지 않고 편지를 보내주고 졸업식에도 오고 명절 이맘때쯤이면 자전거를 타고 와서 항상 책을 주고 가더니 그랬단다, 라고 써 보네요.
아무런 문제가 없었는데. 그가 갔었다고. 그가 사랑을 고백한 사람은 k목사님이 딸이였다고. 그 집안에 별 볼것이 없다는 구실이 있어 그녀의 아버지 목사님이 극구 반대를 했었다는 바람소리를 들었다고. 화아... 이 박하냄새.
박하냄새를 타고 나는 등짝에 가방을 짊어지고 그 땅을 나왔을 겝니다. 그 어느 가을에...

2차선 도로의 버스가 다니는 길을 만났네요. 이 길을 타고 왼쪽으로 꺽어들면 눈을 감고도 들어갈 수 있는 집이 보이는데 베스트 드라이버는 부러 초등학교를 끼고 빙빙 돌아
외곽으로 들어섭니다. 이젠 더 이상 돌래야 돌 수 없는 막다른 벽에서 모가지 비틀린 풍뎅이가 고만 조용해졌을 무렵의 막다른 길. 뒷동네 어귀에 서울번호를 단 차 한 대가 오두마니 서 있고... 동네개도 짖지 않은 한달음의 길을 구불거리며 뱀처럼 지나왔더니 뽀끼할매네
집에 오라버니의 차바퀴가 황토흙을 잔뜩 묻힌 채 서 있었네요.
동생들 차 때문에 나왔나? 아랫집 골목이 텅 비었네. 그 골목으로 핸들을 돌리며 집 마당을 지나갈려다가 그냥 텅 빈 겨울 찬 바람만 서성이며 서 있는 빈 마당을 만났습니다.
찬 바람만 서성이는 빈 마당에 들어서며 시대가 그렇다고 , 그런 세월이라고 낮게 울부짖고 맙니다. 그들을 보냈을 어머니 마음을 들여다 본다면 바람이 웃기도 할테니까....

그랬다네요. 누구에겐가 보낸 편지에 내가 목비틀린 풍뎅이 처럼 그 어느 날 목이 비틀리지는 않았지만 그 비슷한 모습으로 얼음 속에 앉아 빨래를 할 일 있으면 이슬을 두 잔 마시고 그 곤충처럼 그 좁다란 부엌에서 대여섯 바퀴 달리기를 한 다음 등에 땀을 조금 낸 뒤에 빨래를 빨고 나를 빨고 그 시간을 빨고, 그 가난한 마음을 빨았단다 라고요. 간간히 눈물도 얼었네요. 라고 한 것 같았네요.
누구나 돌아갈 수 없는 길들을 만나겠지요.
후회를 할 수 있었던들 돌아갈 수 있는 길에 서겠지만 .
사람이라니까. 사람만이 희망이라니까 그럴 밖에요.

배시시 웃었던 마당 가득한 마음에 운동장 크기만큼의 서러움이 밀려들었단다 하면
그 어머니 땅을 일찍 떠나올수 없었단다 하면 아셨을래나 벗님들.

명절 같은 거 없었음 좋겠다고 알싸한 마음을 달랬는데
우우 뻥새 일기는 그날 더 없는 축제 였답니다. 중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