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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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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길(65) *며느리 노릇*


BY 쟈스민 2001-11-26

문틈으로 찬바람이 살살 불어오는 이맘때쯤이면
시골에 계신 어머닌 김장 준비에 바쁘실 게다.

딸 셋과 아들 둘의 집에 겨우내 먹을 김장을 담그시는 일은
60대의 어른이 하시기엔 힘에 부치는 게 사실이다.

올해까지만 하고, 내 년부터는 각자 담그던지 하자고
힘에 부치실 때면 혼잣말을 하시곤 하던 지난겨울의 어머니는
올해에도 어김없이 그 많은 김장을 다 담그시려나보다.

처음에 시집와서 얼마안있어 첫 아이를 갖고서였다.
부른배와 부은 다리로 새벽녘 따스한 온기가 무척이나 아쉬웠건만
새벽같이 일어나 절여둔 배추를 씻으러 우물가로 가시는 어머니의
인기척이 들리실 즈음이면 굳이 자명종이 아니고서도 무거운 몸은
어느새 어머니를 따르고 있었지 ...

일년 내내 농사지으신 무우, 배추 밭에서 모두 뽑아내시어
한치의 오차도 없이 살살 다듬어 알맞게 절여 놓으신다.

갖은 양념 준비하여 손수 지으신 고추농사탓일까?
맛깔스런 색깔하며 그 맛은 요즘 세상 아직도 김치를 담궈서
드십니까? 어디선가 많이 본듯한 광고문구가
오히려 낯설게만 느껴진다.

커다란 다라 앞에 둘러 앉아 이리 저리 양념을 넣다 보면 허리가
틀어지게 피곤한 건 그날 함께 일을 하는 사람 누구나 마찬가지지만
딸은 그래도 잠시 힘들다 꾀라도 부리는데 며느리는 며느리라 그런지
그 일이 다 끝나도록 말 한마디 하질 못한다.

김이 모락 모락 나는 수육에 쌈을 싸서 연신 먹어대는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흥겹기도 한 때이다. 그렇지만 그 일을 다 마치기
까지는 많은 시간이 소요되고나서야 일련의 정리가 되어진다.

아기 가져 배부른 딸은 힘들어서 못오고,
가게일 바쁜 딸은 바빠서 못 온다.
하지만 며느린 이러나 저러나 가야만 하는 것이다.

며느리가 나 하나일때는 배가 남산만 하여도 며느리라 와야 하더니만
딸은 헹여 잘못될까 무섭다 하여 배부른이의 특권을 누릴 수가 있다.

며느린 부른배를 하고서도 새벽같이 일어나 배추를 씻고, 버무려 담고, 뒷설겆이를 모두 해야만 했다.

며느리가 하나 더 들어오니 이젠 좀 덜 힘들까 했다.
그런데 시집오기 전 아무것도 해 보지 않아서 할 줄 모른다고
이래 저래 큰며느리만 불러댄다.
이것 혀라... 저것 혀라... 로 일관된 시어머님의 분부에 그러려니
하다 보니 어느새 그 모든일은 내 일이 되고 만다.

해마다 김장 때만 되면 어김없이 치러내야 할 내 몫의 일이
올해에도 나를 기다린다.

올해는 어쩌다 보니 여동생의 아기 돌잔치 날과 날짜가 겹친다.
동서랑 편하게 이야기 하다 보니 그 이야기를 어머니께 했나 보다.

어머니께선 전화를 하셔서 김장걱정일랑 말고서 식구들 모두 모이는 일이니 다녀오라고 말씀은 그렇게 하시는데...
불편한 마음으로 돌잔치에 다녀오느니 약간의 육체노동을 하고
마음이 편한 쪽을 택하려 한다.

딸은 김장할 때 도와드리지 않고서도 아무때나 들러서 김치를 가져가도 마음이 편할지는 모르지만 며느린 그렇지가 못한 것이다.

내겐 그렇게 편안하게 아무때나 들러서 조금쯤은 게으름을 부려도
나를 이해해줄 친정도, 친정어머니도 안계신다.

힘들게 농사지으셔서 자식들 건수하시는 부모님의 마음이 고맙기도
하면서도 며느리로서의 도리를 다한다는 일이 조금쯤 버거운 건
왜일까?

맞며느리가 된다는 건 늘 자신을 먼저 챙기기 보다는 더 많은 것을
형제 자매들에게 주기를 요구받고 사는 듯 하다.

집안은 늘 오픈하여 놓고 부모님이 오실적마다 형제자매들이 모두
모이는 장소가 되고, 그 뒷치닥거리는 늘 큰 며느리의 몫이다.

친정부모와 의좋은 딸들은 밤이 저무는지도 모르고 수다를 떨어도
며느리 된 자는 그 자리가 모두 파할 때까지 어정쩡한 자세로
앉아 있어야 한다.

언제부터일까 모인다는 일이 두렵기 시작한 것이 ...
한바탕의 잔치후엔 쓰레기 더미와, 아수라장이 된 집안만이
또 다른 일손을 기다리고 있으니 점점 꾀가 나고 있는 내가 거기에
있다.

여느 주부들이라면 그런일들 이후엔 하루쯤 푹 쉴수나 있을텐데
어김없이 출근을 해 내야만 하는 것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똑 같은 일의 반복으로 한해를 마무리해 가겠지 ...

그래도 살아계셔서 자식들에게 이것 저것 해주시고저 할 때가
좋아보이시는데 ... 내 마음 한켠을 누르는 그 무게의 의미는 왜
점점 커져만 가는건지 ...
나이를 먹을수록 한해 두해 그 짐스러움이 좀 가벼워져야만 하는 건
아닐런지...

애초부터 답이 없는 문제임를 알고서 괜스레 고심하는 지도 모르겠다.

그저 그 모든 것들이 내가 안고서 가야할 문제인 것을 알면서도
힘이 들때 힘들다고 말하지 못하는 ... 마냥 편안하지 못한 그 마음
때문에 또 힘들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