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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게 늙어가는 방법 52


BY 녹차향기 2001-02-06

공사때문에 저희 집에 10개월을 머물러 계신 어머님께서 이제 다음주면 완공된 건물로 돌아가세요.
어머님이 쓰실 물건들을 이삿짐차에 실어 보내고, 같이 따라가 어머님쓰실 방을 쓸고 닦고, 또 장롱을 넣고 서랍마다 옷을 정리하여 드렸지요.
모든 것이 새 것이라 깔끔하고, 반짝반짝 윤이 났지요.
어머님의 자개장롱이 새 집에서 더 빛을 발해 방안을 더 환하게 해 주더군요.

목욕탕 거울도 크고 예쁘고, 세련된 디자인의 변기와 세면대, 반짝거리는 수도꼭지와 메탈샤워기까지.
모든 게 맘에 들고 좋았어요.
서랍마다 어머님 물건을 정리해서 넣고 있었는데,
새 집에 어울리지 않게 어머님 물건들은 모두 오래된 것 뿐이었어요.
물론 몇년 사이에 백화점에서 구입하신 옷가지들도 있었지만,
"이 옷은 남대문 시장에서 5년전이 샀나보다..."
"와!! 이 옷은 한 십년전에 해 입은 것인데.. 색이 많이 바랬지?"
"이것 좀 봐라..."
어머님의 손에는 대학입학을 하는 제남편과 기념으로 교정에서 찍은 액자가 들려있었어요.

어쩜 남편의 얼굴은 그리도 앳되고, 어머님은 그리 젊으신지요..
그 젊디젊은 아낙의 얼굴은 어디가고 양볼이 조금씩 늘어지고 검버섯이 군데군데 피어나는 할머니가 되셨는지요.
"와! 어머님 너무 고우시다. 아범은 이때 살이 더 쪘었나봐요.."
"그랬지."
어머님 짐 속에선 이것저것 오래된 물건들이 많이 나왔어요.
워낙 버리지 않으시고 무어든 모으시는 성격이신지라 한짝이 되었는데도 버리지 않는 덧버선, 오래된 골무, 때에 절어 보이기까지 하는 바늘꽂이, 망사로 짜여진 쇼올.
한번쯤 어머님과 주무시다가 모르고 흘리고 간 친척들의 낡은 옷들조차 여기저기서 패잔병처럼 기어나왔지요.
"이런 것은 좀 버리시지 그랬어요?"
"어떻게 버리냐? 아직두 한참 쓸만한데.."

다시 빼앗아 서랍에 넣으셨어요.
마음에 들게 여기저기 물건을 놓았다, 내려놨다, 돌려봤다, 뒤집어봤다....그렇게 세간을 정리하는 데 종일이 걸렸지요.
완벽하게 정리를 하진 못했고, 아직은 보일러가동이 되지 않는 건물이라 우리는 집으로 돌아왔지요.
오면서 내내 어머님은 새 집에 들어가서 어떻게 살꺼나 하고 걱정을 하셨어요.

짐을 정리하면서도, 거기서 내내 걸레질을 하면서도 별반 마음이 무겁지 않았었는데 아파트에 도착해서 엘레베이터 앞까지 걸어오고, 엘레베이터 버튼을 눌러 엘리베이터가 내려오길 기다리는 바로 그 순간.
눈물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어요.
"어머니!!"
전 어린 학생처럼 징징 거리며 울었어요.
성격이 급하시고 화도 벌컥 잘 내시고, 참을성이 부족하신 어머님이라구 몰래몰래 꿍시렁 거리고, 젊은 사람들 마음 하나도 이해해 주지 못해 서운하다고만 투덜거렸었는데 막상 이삿짐을 옮겨놓고 나니 눈물이 앞을 가렸어요.
"울기는...."
어머님도 우셨어요.

"나도 다 안다. 깨끗한 거 좋아하고 종일 열심히 치우면서 사는데 내가 얼마나 어지럽혔냐? 그간 니가 무던히 참았다. 내가 다 안다. 정말 고맙다."
전 어린 학생처럼 계속 징징징... 울기만 했을 뿐 말이 나오질 않았어요.

이제 다음주 월요일이면 어머님은 새 건물로 들어가세요.
장사도 곧 시작하실거고요.
원하시던 일이 시작하시니 마음이 좋으시면서도, 또 한편 막연한 걱정이 앞서기도 하시나봐요.
어머님, 그간 잘 모시지 못해서 정말 죄송해요.
부족한 며느리를 따뜻하게 감싸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오래도록 건강하시고,
모든 일이 어머님 맘 먹으신대로 술술 잘 풀렸으면 정말 좋겠네요.
크신 은혜 어떻게 갚을 수가 있겠어요?

정말 건강하셔야 해요.

며느리 올림.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