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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니 시다바리가???


BY 손풍금 2001-11-19

몇 년전 그날
직장이 쉬는날 인지라 꼭 보고싶었던 영화 그해 세계영화제 상을
휩쓸었던 아름다운영화 "피아노"를 보러가기위해 나서는데
한 터프하는 내 사내는 "가지마..! 나하고 같이 놀아"하고는 뒤돌아서
는 나를 붙들어 세웁니다.

"뭐하고 놀아? 어른들이... 그러지말고 자기도 영화 보러 가자.
참 좋은영화인데.."하니

터프한 남편
"좋은 영화? 어떤 영화가 좋은 영화인데...." 하고 날 바라보는 느끼하고
끈적끈적한 그 눈빛.
"내가 뭘좋아하는지 알지?"하고 묻는 그쯤으로 변합니다.

내가 누구입니까?
눈치코치 백단인 나는 남편이 무얼 원하는지 알고
이내 "음... 아마 그 영화에 에로물이 많이 나온다지...
우리나라 영화로 치면 백치아다다와 비슷한 분위기이도 하고..
벙어리 여배우의 에로연기가 뭇사내들의 마음을 녹신녹신 녹인다지 ...아마...
(흠.. 그 청순한 여배우를 만나려면 이보다 더해야 포스터하나만으로도
우수에 젖은 그 외로운 어깨와 희고 창백한 작은 얼굴의 여주인공를
만나볼수 있으니 내 거짓말을 이해해주시길....)하고

나는 더욱 남편을 유혹해야 했기에
"영화선정에도 포르물로 가까워 보인다며 상영을 하느냐 마느냐 하는
절대위기까지 갔다지 아마...
자기가 좋아하는 그 포르노 있자너.
첫장면부터 끈적거린다네..자기도 보면 재미있다고 할텐데.."했더니

남편은 느끼한 눈을 일순 번뜩이더니
단박에 "가자!!"하고 따라왔습니다.

내 참 전생에 많은죄를 졌는지
좋은영화 한번 남편의 에스코트 받으며 우아하게 보지못하고
포르노라고 거짓말을 시켜가면서 봐야했던 그때 그날.
하지만 그다음이 문제였습니다

여주인공인 미혼모 아다.
어찌보면 덜 성장된 미소녀 같기도 하고 꼭다문 입이 바다보다
더 깊은 침묵과 푸른 눈빛속에서 가느다란 손가락은
쏟아내고 싶은 말만큼이나 현란하게 움직였고
나는 시작부터 영화에 빠져들어 걷잡을수 없는 고독하고 신비로운 침묵과
함께하고 있는데
옆에 앉아있던 남편이 슬며시 내쪽으로 기울더니
"첫장면부터 에로물 나온다며 왜 안나와?"하고는 심각하게 말합니다.
"이런..."나는 남편을 다독거려줄 심산으로
"응.. 조금만 참아봐.. 조금있다가 나올꺼야.."
(이건 내가 말해놓고도 웃겼다. 참으라니 .. 뭘참아? )
그리고 잠시 옆에 남편이 있는것도 잊어버리고

미혼모이기에 고향에서는 다른 삶을 살수가 없어 자신의 아홉 살난 딸
과 함께 얼굴도 모르는 남자와 결혼하기 위해 푸른 파도가 넘실거리는
미개척지인 뉴질랜드 해변에 도착하여 모래사장위에 놓여진 피아노에
앉아 겁먹은듯한 눈동자는 이내 어느누구보다도 섬세하고 성숙한모습
으로 잠든 원시림을 깨워놓고 있었던 그 영상속에 한없이 빨려들어가다가도
간간히 습관처럼 나는
"조금만 참아봐.. 조금만 있으면 나올 거야..
에로물 안나와도 재미 있자나. 그치 ?" 하고는 말을 끊임없이 주다가
드디어 얼굴에 문신을하고 강인하며 잔인하게 까지 보이는
베인스와의 만남.
자신이 목숨처럼 사랑하는 피아노를 놓고 벌이는 그 육체의 협상속에 내부에
갇혀있던 작은여인의 욕망을 활화산처럼 깨어나게 하며 몸을 탐하는
남편이 기다리던 에로장면이 나왔습니다.
그게 앞 뒤 떼어놓고 억지로 보면 에로지, 그게 어디 에로물이겠습니까?

난 침을 꿀꺽 삼키며 "자기야.. 나오네.. 에로..거봐.. 나오지?"하고는
툭 치자 남편에게 반응이 없었습니다.
바라보니 남편은 기다리다 지쳐서 고개를 떨구고 졸고있었습니다.
영화를 본다거나 음악감상을 한다거나 낚시를 한다거나.. 정적인 것을
좋아하는 나와는 다르게
육박전과 거칠고 속도감을 즐기는 남편에게
애시당초 영화감상이 무리인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속아주는척하고 따라와준 남편에게 에로물이라고 속인데 대한
일말의 가책을 느끼며 조용히 계속 졸게 냅두고 영화를 보고 있었습니다.

주인공의 의상은 여자라면 누구나 한번쯤 입어보고 싶은옷.
허리를 꽉죈 브라우스로 주름을 많이넣은 플래어 롱스커트로 이어진
드레스와 하얀 슈미거들과 슬립에 순백의 꽃자수가 놓여 순결하게
빛나는 그 속옷에 챙이 넓어 턱선으로 묶어버리는 여성스러운
그 아름다운 모자하며 어느것 하나 놓칠수 없는 영상들을
머리속에 채곡채곡
가슴속에 채곡채곡 쌓아놓고 있을 때
아다의 남편은 아내의 불륜을 알고 질투와 분노로 피아노를 칠수없게
남편이 아내의 손가락을 자르는 그장면
그리고는 "베인스를 만날때만다 손가락을 하나씩 더 자르겠소"하던
그 광란도 사랑이였을까?
마치 내손가락이 잘려나가듯 나는 두손을 어찌할줄 모르고 있다가
남편의 손을 꼭잡고 안타까움을 참고 있으니
화들짝 놀란 남편, "헉!!"하고 일어납니다.
"뭔일여? 아직 안끝났어?"
그리고 한다는말.
"에로물은 언제 나오는데. 안나오면 네가 책임져야해.."하고는
아무일 없다는 듯이 화면엔 눈한번 안주고 다시 이어서 졸기 시작합니다.

"내가 왜 책임져? 어떻게? 이런.. 희안한 억지경우도 있네.."
하지만 어쩝니까?
한터프한 남자와 사는 한소프트한 여자의 시련인 것을...
그래도 남편이니까.. 마음에 드는영화를 함께 본다는 것
그거 하나로도 참 감사한일인데..
그렇게 눈시울을 적셔가며 영화는 종영부로 치닫고 있을 때
뱃전에 목숨같은 피아노를 싣고가던 그여자...
바닷속으로 던져질 피아노의 발판에 자신의 발목을 묶는
그 눈물같은 작은여자..
가슴이 시려 더는 볼수없을 듯 했지만
뜨거운 사랑에 자신을 받칠줄 알았던 가녀린 여자의 운명에
모두 숨을 죽이며 그 푸르고 푸른 깊은
심연의 바다는 세상에 있는 어느 영상이 그처럼 슬플수가 있을까 하고
숨죽이고 있는 찰라
영화관의 관객들은 고요한 침묵을 넘어서 숨막힐 듯 차고드는 위기감
에 눈을 떼지 못하는 그 깊은 정적 속에서

갑자기 어디선가 "커 억~~!!"하는 그 소리가 얼마나 컸던지 시선을
돌려 화들짝 놀라 바라보니 바로 옆에서
우리의 한 터프한 내 사내가 잠을자다가 고개가 뒤로 넘어가도록
코를 고는 소리였습니다.
곧이어 어둠속 에서도 사태를 파악한 이층에 있는 관객들 사이에서
웃음소리가 흐르기 시작하더니 곧이어
아래층 에서도 잔물결처럼 웃음소리가 타고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흐이구.. 내가 미치..." 자기 코소리에 놀란 남편은
깜짝 놀라 일어나 정신을 차리고 한다는 말
"웃기는거 나오면 나 좀 깨우지...
뭐가 저리 재미있기에 사람들이 웃니 ?"합니다.
주위사람들의 웃음은 키득키득 계속되고
"그런데 에로물은 언제 나오는건데..
한 장면이라도 봐야 본전생각안나지?"하는 남편...
씨이... 난 왜이렇게 복도 지지리 없는겨..
왜 근사한 남자하고 영화도 한편 못보는겨.


하지만 이상황에서는 이것도 사치입니다.
곧이어 끝이라는 글자가 스크린에 올라올거고 불이 켜지면 코골았던
내남자의 얼굴이 다 공개될 것을..
빨리 남편을 이상황에서 탈출시켜야 하는데...하는 급박한 생각으로
남편의 귀에 대고
"지금 사람들이 왜 웃냐하면 자기가 코고는 소리에 웃은거야.
코소리가 대포소리 같았거든. 집에서 골때보다 더..
왜냐하면 고개가 뒤로 넘어가서.. 그러니까 당신 있지..
지금 빨리 밖으로 나가 끝날 때 다됐어.
지금 상황이 에로물 찾을 상황이 아냐..."하니
"웃을거도 되게 없네.. 코골았다고 웃어?
그리고 왜 나 코골 때 깨우지 안깨웠어?
그럼 끝끝내 에로물은 못보고 가는겨? ?"하는 남편
나는 "에고.. 지겨워. 그놈의 에로물은 아까 아까 다 지나갔어..
그러니 가자."하고 손잡고 계단을 걸어
일층으로 내려와 다시 뒷자리에 앉아 끝상영를 보았습니다.
그리고는 내 터프한 사내에게
"나 있지, 제발 영화 혼자 볼수 있는 자유좀 줘. 알았지?
하자 내 남자 왈.
"그래.. 그건 그런데 영화는 왜 보는건지.. 난 그게 이해가 안되더라....
영화는 왜 보는건데?....."
피아노에 얽힌 코고는 이야기였지만
그렇게 피아노를 통해 좋아하는 영화 혼자볼 수 있는 시간을 갖으면서
도 아직 남편에게 영화는 왜 보는거냐 하면...
이란 답을 별로 ,, 아니 사실.. 말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얼마전 요즈음 화제가 되고있는 영화 "친구"를 인근도시에서 보고왔
습니다.
좋은영화를 보면 마음이 따뜻해지고 사라져가는 기억들이 되살아납니다.
하지만 나쁜소리 하나 배우고 들어왔습니다.
저녁에 남편은 담배좀 그만 피우라고 피우라고 부탁하는 내게
담배 한 개피 내주면서 "라이타를 안가지고 왔네.. 가스불에 불좀 부쳐다줘"
하고는 내밉니다.
이제 내나이 마흔살을 넘어섰으니 이쯤에서 저항할때가 된 듯 싶습니
다.

그리고 "친구"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리며
"내가 니 시다바리가?..."하며 단호하게 거절하자
한 터프하는 내 사내. 어이없어 그러는지...
웃음소리가 절묘하더군요. 헛헛헛헛...이렇게 말입니다.

그래서 이어서 저 이렇게 말했습니다.
"끝까지 자꾸 속썩이면 나 이쯤에서 도망가삐린다,
이제 한 소프트한 여자로는 가슴에 치받는게 많아서 못살겠네."하니
계속 이런 웃음이 묻어나더군요.
헛헛헛..... "아니지, 니가 왜 내 시다바리가? 절대로 아니지.."
"나좀 그만 용서해주꾸마.."
"내가 니 시다바리지... 너는 내 시다바리가 절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