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빛바랜 사진처럼 퇴색되어지긴 했으나
여전히 내 기억속의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일들...
그때 나는 여고 2년쯤 되었을까?
단벌머리의 여고생이었지만
치열한 생존의 위협을 느껴야만 했던
살기위하여 먹어야 했고 ... 그리고 살아야만 했던
시절들이 있었다.
어느 집안에든 기우는 때가 있고, 흥하는 때가 있는 것인지
그땐 몰랐지만 아뭏튼 그랬다.
그 때가 우리집이 기울고 있었을 때인것 같았다.
앓아 누워 자리보전한 엄마를 보살피며 세 동생들 도시락을
싸야 하고, 주말이면 시장을 보아 김치를 담가야 했고,
서투른 솜씨로 나마 난 이미 주부의 역할을 감내해야 했다.
얼마되지 않는 아버지의 월급으로 대 식구들의 생계를 해결하기
위하여 집근처에 쌀집이 있었음에도 납작보리쌀과 쌀이 섞어져 있는
혼합곡을 사러 멀리까지 쌀을 사러 가곤 했다.
아주 추운 어느 겨울날이었던 것 같다.
그날도 집근처 쌀집에 혼합곡이 다 떨어져서 멀리까지 가서 주문을
해두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는데 남동생과 함께였던것으로
기억된다.
남동생이 저만치 앞서 가고 난 뒤에서 가고 있었는데 언덕진 곳에서
내가 미끄러졌는지 뒤따라 오던 내가 오질 않기에 뒤돌아 보니
뒤로 벌렁 자빠진 채였단다.
다행히 크게 다치진 않았지만 그 순간 나는 몹시도 서러웠고 ...
내 앞에 놓여진 삶이란 숙제가 왜 그리도 어렵게 생각되었던지
집에 돌아와서 이불을 쓰고 한없이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공장에서 퇴근하는 아버지와 여동생을 위하여 따끈한 청국장과
김치 몇가지로 차려내는 밥상을 준비해 놓고서 집앞을 서성이며
기다림이란 걸 알았고 ...
아무 도움이 되질 않아도 나의 엄마에게 그저 살아만 계셔달라
애타게 매달리던 그 겨울의 시린 기억들이
잊을수도 없는 되새김질이 되어
아직도 내 기억속에 그렇게 남았다.
아침 끼니가 없어서 이웃에 사는 이가 친히 와서 끓여준
국수몇가락에 눈물을 떨구며 차마 목에 넘어가지 않았던 시절 ...
흔히들 말하는 사춘기는
내겐 어쩌면 지나친 감정의 사치일수도 있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보리쌀이 너무도 많이 섞이어 시커먼 도시락을 열면서 몇번씩
주저거리기도 했고, 손수 마련해간 어줍은 반찬에 머쓱해진 적도
있었다.
창피하단 생각을 하지는 않았지만 왠지 위축되고마는 자신을 느끼는
일이 스스로에게 더 창피하던 그런 시절이었다.
누군가 가난은 부끄러운 게 아니라고 하였지만
여고생이던 그때의 나는 참 많이도 부끄러웠다 .
그래서 더욱 공부를 해야 했고 ... 더욱 착실한 여학생이어야 했던
나는 철저하게 감춰져 베일에 쌓인 인물처럼 늘 그리 살아야 했던
것 같다.
지금의 나는 쌀통에서 쌀을 꺼내다가도 문득 문득 그때의 일들이
떠오르곤 한다.
알알이 말간 쌀밥을 먹는 지금의 나는
참 많이 행복해야 할 것 같은데...
내가 느끼는 행복지수는 얼마만큼인지가 궁금해진다.
내 아이들을 보면서 ...
그 아이들의 평온한 얼굴을 보면서 ...
부모의 그늘이 얼마나 그 아이들의 삶속에 거다란 영향을 미치는건지
누구보다 난 일찌기 알게되어서인지 좋은 것만 주고 싶고 ...
고운 것만 보여주고 싶어진다.
그렇지만 언젠가는 그 아이들에게도 내가 갖고 있는 잊을수도 없는
기억들에 대하여 말해 주려 한다.
아이들이 밥 먹기 싫다고 할 때 ...
음식이 맛이 있네 없네 할 때...
옷이 어쩌네 저쩌네 하고 말 할 때 ...
아이들이 아직 어리지만 난 자꾸 나의 그 시절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져 입을 들썩인다.
그때는 아마 내 삶의 지독한 겨울이었을까?
지나고 나면 모두가 추억이 된다 하였는데 ...
아직도 그 때의 기억들을 더듬을 때면 가슴 한켠이 시리기만
한걸 보면 ...
따뜻한 물에 방금 샤워를 마치고 나온 아이들의 발그스레한 얼굴을
바라다 보며 베시시 웃음지으며 살수 있는 지금의 나는
참 눈물겨운 행복속에 빠져 들어
다사로운 봄을 살아내고 있음을 느낀다.
그러면서 그 시절에 나의 부모님이 자식들에게 못다해주어 늘
마음 아파하셨을 마음이 헤아려져 한참을 그렇게 서성이는
시간들이 늘어만 간다.
하지만 그렇게 힘든 시간들을 건너서 여기까지 왔기에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일수도 있는
내가 가진 모든것들의 소중함을 잊지 않고
볼수가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해마다 겨울이면 ...
그 때의 기억들이 떠올라서 시린 찬바람을 몰고 오던 가슴한구석을
부여잡고서 헤메이던 시간들이 있었다.
이젠 모두 추억처럼 곱게 접어서
내 마음의 서랍장에 얌전히 넣어 두고서
나는 언제나 아이들에게 따뜻한 가슴을 하고
두 팔 벌려 안아줄 준비나 해야 겠다.
해마다 겨울이면
뽀얀 두 녀석들을 품안에 안고서 도란 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느라
세월가는 줄 몰랐다고 ...
내 젊음이 다 가는 줄도 몰랐다고 ...
먼 훗날에
떠올릴 그런 추억을 쌓아가며
이젠 그리 살고 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