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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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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과 아이


BY 솔바람 2001-01-27


꽁꽁 언 빙판길을 살금살금 걸어 들어와 집안에 들어서니, 어머나 세상에. 우리 아들이 제 친척아이랑 목욕한다고 물을 받고 있는데 미지근한 물에 들어앉아 춥다고 하고 있다.
"아유, 세상에 무슨 일이야? 이렇게 추운데 무슨 목욕이래?" 하고 감기에 걸려 코를 훌쩍이면서 소리쳤다. 지난여름에 두 아이가 목욕을 하면서 즐거워했던 일이 문득 떠올랐지만 하루 종일 몸살을 앓고 있던 참이라 내 괴로움을 내세워 아이 입장을 생각하기도 전에 먼저 질책부터 했다.
아이는 미안하고 무안한 표정으로 말없이 서있고, 친척아이조차 무안해 하고 있었다.

문득 생각나는 옛 기억 하나. 내가 내 아이만 했을 적의 어느 추석 때, 친척들과 모여 놀다가 심심해진 나는 문득 대추가 벌레를 먹어서 못쓰겠다고 하시던 아버지 말씀이 생각나서 텃밭에 있는 붉은 대추들을 따먹자고 모두들을 불러모았다.
마악 대추를 따먹으려던 찰나, 아버지가 뒷문을 열고 소리치셨다.
"얘들아, 그 대추 따먹지 말아라."
지금도 그 일을 기억하고 있는 걸 보면 나도 그때 무척 무안했었던 게 틀림없다.
그런 내가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입장을 생각해 보기도 전에 먼저 아무런 생각 없이 소리부터 친 게 한 두 번이 아니다.
내 판단으로 아이에게 무언가를 지시했을 때, 아이의 표정이 밝지 못하면 분명 무언가 아이의 입장에선 이해되지 못하는 것이 있을 것임을 알면서.... 시간이 지난 훗날 아이들의 일기장 속에서나, 아이들과 이야기를 하던 중에 아, 그때 내가 참 성급했었구나 하고 느껴지는 일이 참 많다는 사실이 내가 얼마나 부족한 엄마인지를 자주 가르쳐 준다.

어느 명절날, 남편 형제들과 아이들 모두 스무명 가까운 가족들이 다 모여있었는데 아이들이 컴퓨터 오락을 한 시간 가까이 하고 있었다. 좀 시끄러워진 상황이라 남편이 "이제 그만해라" 하고 아이에게 명령을 했다. 그런데 아이가 컴퓨터 앞에서 꼼짝을 않고 앉아 있었다.
남편은 열을 받아 소리가 커졌고, 모든 친척들이 보는 앞이어서 입장은 점점 곤란해졌다. 남편은 아이를 마구 야단치고 아이는 눈물을 뚝뚝 흘리고 섰다. 예전에 없던 일이었다.
아이들이 제 입장을 끝까지 고수하고 고집을 부린 적이 없었기 때문에 남편도 나도 당황했다. 급기야 남편은 화를 내며 아이를 베란다로 끌어내 몇 대 때린 다음 문을 쾅 닫아 버렸다. 그 날 애를 길러보적이 없는 시동생은 아이가 그렇게 제 아빠에게 저항하면 안되니까 혼을 내 줘야한다고 했다.
서로 상처를 받은 채로 며칠이 흐른 후, 가족들이 모두 떠난 다음에, 무슨 얘기 끝엔가 아이에게 그때 아빠에게 왜 그랬냐고 물었더니, 누나들이 먼저 컴퓨터게임을 하고 있었는데 그때 마침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사촌누나 차례여서 막 시작하려던 참에 아빠가 그만 두라고 했다는 것이었다. 아이는 누나가 얼마나 실망을 할까 걱정되어서 아빠 말씀을 금방 들을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살면서 아이들이 어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어른들 마음대로 말하고, 명령하고, 약속을 뒤집어 버린 적이 어디 한 두 번인가.
타당치 못하다고 말 할 여유도 주지 않고 강압적으로 행하는 어른들이 두려워, 아이들의 가슴속에 앙금으로 남아서 씻을 기회가 없는 일들이, 이 다음에 다시 그 다음세대의 아이들에게 되풀이되지는 않을 것인가. 십여 년 아이들을 키워가면서 자주 느끼는 유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