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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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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에 단 하나뿐일 특별한 날--전경린 소설


BY 1004bluesky1 2001-10-30

 

 

   행복이란 무지한 상태의 다른 말이죠. 행복하다는 말은 모른다는 말과 같아.

  내가 아기를 긁어내고 마취에서 깨어날 동안 오빤 꼼짝 않고 병원 대기실에서 기다렸어. 우린 장난을 한 게 아니야. 오빤 나를 분명히 사랑했어. 당신 같은 안전주의자가 평생을 나누어도 못 나눌 양의 사랑을 우린 나누었어. 넌 나에게 가라고 하면 안돼. 미안하지 않냐고? 천만에,  전혀. 나에게도 너만큼의 권리는 있어.    

                                       남편의 여직원       

 

   그렇다 행복은 그렇게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더 깊이 심취할 수 있는 것일거다. 그래서 소문을 듣고도 많은 사람들이 막상 확인하기를 꺼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렇게 평생 절대로 듣고 싶지 않은 말을 듣는 불행은 피해갈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깨어질 비밀은 결국 깨어질 수밖에 없는 것 또한 인생이다. 

 

  오빠라니, 구역질 나 그러면 더 재미있니?
  넌 이제 내 남편이 아니야, 넌 이제 내 남편이 아니야. 내게 손대지마.
 그날 이후 나는 오랫동안 낯선 장소에 있었다. 아주 어둡고 좁다랗고 아무도 들어서지 않는 적막한 곳. 세상의 신문 종이를 다 날려보낼 듯 거센 바람이 부는 곳. 구둣발로 들이닥치는 채권자들처럼 불쑥불쑥 머리를 열고 들어오는 두통. 어느 땐 하루 중 반나절 이상을 두통으로 보냈다.  
  결혼한 뒤 몇 년동안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행복했었다. 어쩌면 효경과 함께 사니까 행복해야한다고,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믿었던 것 같다. 무엇보다도 나는 그의 냄새를 사랑했다. 그의 냄새가 나는 공간에서는 세상을 행해 긴장을 풀 수 있었고 세상이 어디로 흘러가든 내 인생에 몰두할 수 있었다. 나의 꿈은 그런 것이었다. 스물 한 살에 만난 남자가 그의 전 생애동안 오직 나만을 사랑하고 나또한 단 하나의 남자만을 사랑하며 평생동안 하나의 생을 온통 함께 사는 것. 우리의 냄새를 다른 냄새와 뒤섞지 않는 것, 나의 꿈은 그것 뿐이었고 그것은 흡사 하나의 이념과 같이 지킬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가끔 사별한 아내를 쫓아 자살한 남편이나 남편을 뒤쫓아 죽음을 택한 아내의 이야기를 잡지책에서 읽을 때가 있었다. 그런 이야기들은 내게 전혀 낯설지가 않았다. 만약 남편의 여직원이 우리를 방문했던 그 해의 크리스마스 전에 효경이 죽었더라면 나도 그렇게 죽었을 것이다. 예상외의 공허를 이겨내지 못했을 것이고, 효경을 잃은 뒤에는 그렇게 죽는 것으로 내 생은 충분하다고 믿었을 것이다.
                                                    주인공 미흔

 

  결혼은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라는 말을 앞두고도 결혼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아마 이런 생각을 한 번쯤은 가졌을 사람들이 아닐까? 또한 그 시절이 행복했다는 것도 깨어진 후에 더 절실히 느끼는 것이 아닐까? 이미 행복이라고 생각했던 미흔에게 그것은 한 순간에 인생을 멍청히 하늘만 바라보는 삶으로 바꿔 놓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여기서 나는 의문을 제기하고 싶다. 왜 처음부터 미흔은 이혼을 생각하지 않았던가? 자신을 편안히 해주는 냄새가 사라지던 그 순간 그녀는 이혼을 생각했어야 했다. 그렇지 않다면 남은 생을 모두 무의미한 시간보내기로 만들어 버리기 보다는 상처의 치유를 위해 노력해야 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에 그녀의 대처방법이 의문으로 남는다.

 


  어차피 죽어도 좋다고 생각하고 그를 사랑했다. 애초부터 사랑하는 남자의 아이를 낳아서 내 손으로 키우기 위해 열아홉살의 나를 농사꾼에게 팔았다. 그 삶은 한 번도 내 것이 아니었다. 아이의 아버지를 다시 만났을 때, 재회를 없던 일로 하고 그대로 살까도 생각했었다. 그러나 난 그를 사랑했다. 그런 사랑을 하면서 이런 일이 생길 줄을 몰랐겠는가? 그 날 시아버지가 아니라 그 낫에 찔려죽어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늘 무서웠지만 나는 사랑을 그만두지 않았다. 나에게 남자는 당신들이 간부라고 부르는 내 아들의 아버지 뿐이다. 그러나 나는 절대로 당신들이 말하는 부정한 여자가 아니다.       
                                                                 이웃집 부희

 

  나는 부희의 마음을 겉으로는 이해한다해도 용납할 수가 없다. 제도권 안에서 사는 삶을 택했다면 그녀를 보호해주었던 남편과 사아버지를 불행으로 몰아넣은 자신이 할 말이 없어야 마땅하다. 아니 보호해주지 못했다하더라도 그녀는 그들을 이용했다. 그녀의 몸을 숨길 곳으로. 그러면서 자신들의 사랑이란 이름으로 그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방법이 없었느냐? 결코 네버. 그녀는 노력하지 않은 거다. 더 힘든 가시밭길을 갈 용기가 없었을 뿐. 결국 그녀의 왜곡된 아집은 제3의 피해를 낳는다. 참으로 답답한 일이다.

 

  믿을 수가 없다. 나 같이 아무 것도 모르는 애가...... 왜 그랬어...... 왜 그런 짓을 했어? 너에게 좋은 것들을 다 해주기 위해 가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데...... 넌 그런 애가 아니었어. 대체, 정말 너를 모르겠다. 인간이 뭔지 모르겠어.
  집안의 물건들은 그대로 있는데도 네가 없으니까 칼로 목을 베는 듯이 섬뜩했어. 네가 나가버린 것이 아니라 내 인생이 나가버린 것처럼...... 논리도 사지 않고 판단도 서지 않았어. 그래서 무턱대고 너를 쫓았어. 용서할 수 없는데 왜 너를 쫓았는지...... 너를 찾아다니는 동안 어느 날은 내 손으로 너를 죽이고 싶기도 했지만 어느 널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정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살 수도 있을 것 같았어. 다시 음식 냄새와 수의 목소리와 동동거리는 발소리와 너의 냄새들로 집을 채울 수만 있다면......
  하지만 오늘 알았어. 너를 데리고 돌아갈 곳이 없다는 것을. 우리에겐 이제 집에 없어. 우린 집을 가질 수가 없어. 우리가 날려버린 거야. 아주 값싸게.... 하필이면, 내가 너를 위해 안간힘을 다하던 때에. 가족을 위해 내 전체를 희생할만한 가치가 있는 거라고 믿기 시작했을 그때에......   
                                                     남편    효경

 

  제 발등을 제가 찍는다는 말이 있다.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자신의 인생만 망친게 아니라 남편은 효경은 아내와 그의 정부의 삶까지 뒤흔들고마는 일을 한다. 그가 단순히 실수라고 말하는 여직원과의 관계로. 그는 그녀를 만나면서 이런 일을 예측이나 했을까? 아마도 생각했다하더라도 내게는 일어나지 않는 일로 치부해 버렸을 거다. 그 작은 판단착오는 여러 사람을 불행으로 이끈다.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이 이끌어 가는 세상. 염병할...

 

     나이 쉰 다섯에 소설을 내어서 아내에게 이혼당할 위기에 처한 사람이 '아침마당'에 나왔다. 말이 소설이지 자신의 여성편력을 담은 수기이었다. '죽어서 무덤에 들어갈 때까지 절대로 너를 못 잊을 거야'라는 대사도 넣어서.

아내는 "요즘 수상했어요.집에만 오면 핸드폰을 꺼놓고, 뭐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소설을 낸 거에요. 상의도 없이. 30년을 나는 주변에 숨기고 살았는데. " 하며 분함을 참지 못한다. 남편은 한사코 소설적 표현일 뿐이라고 변명하고, 교수의 추천으로 어쩔 수 없이 출간하게 되었다는 둥,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는다.

옛일에 대해선 자신이 지금 밥짓고 설거지, 청소를 하는 등으로 열심히 속죄하고 있다고, 아내가 정녕 바라는 일은 그것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엄앵란은 말한다.

"그러길래 젊을 때 상채기 내지 말라는 거야. 한 번 상처나면 치유가 얼마나 어려운데. 늙어서 밥, 청소? 평생해야지. 그래도 간에 기별이나 가나. 그 동안 속 끓이고 당한 게 얼만데"

난 그들에게 소리치고 싶었다. 소설이 문제라면 버리면 되지 않느냐. 서점의 소설들을 다 거둬들여서 불태우면 그만인 것을 왜 저렇게 답답한 말만 되풀이 하고 있는 건지. 정말 인생의 허허로움 때문에 글을 썼다면 그냥 써서 묻어두어야 할 글이었다. 그 아내가 인정하기 전에는...

 

   효경이나 그 아저씨나 뒷날을 예측하는 지혜가 있었다면 그렇게 자신을 시궁창으로 밀어넣는 일은 저지르지 않았을 터인데. "내 생애 하나뿐일 특별한 날"이라는 제목을 보고 나는 그날이 그녀가 찾아온 크리스마스 전날이라고 생각했었다. 미흔의 생을, 효경의 생을 다 뒤짚어 엎어 버린 날이었으니. 그런데 규를 만나러 가는 날이라니. 그녀가 진정 사랑을 만난 것이었다면 그가 교통사고를 당하기 전에 그들은 다른 방도를 찾아야 했을 것을. 사랑은 결코 서로를 벼랑끝으로 밀어넣는 일이 아닌 것을.

  그것은 결코 해결책이 아니었다. 그러기에  결국 그녀 또한 이 바다를 건너 언젠가는 그 처음으로 가고 싶다는, 훼손되지 않은 내 꿈의 맨 처음으로 가고 싶다는 이젠 결코 이뤄질 수 없는 꿈을 꾸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