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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길(52) *아침풍경*


BY 쟈스민 2001-10-30

귀에 익은 멜로디가 여섯시를 알린다.

이제 그만 일어나야겠다는 나의 마음과 나를 끌어당기는
따스한 이불속 공기가 한바탕 실랑이를 벌인다.

창문을 연다.
그 실랑이를 평정할 수 있는 아침바람을 불러들이기 위하여...

그 바람에선 박하향처럼 싸아한 향기가 난다.

익숙한 손놀림으로 가스불을 켠다.

국을 끓여야 한다.

내 마음이 우러나 있고
내 사랑으로 간을 맞춘 국으로
아침 바람에 시린 가족들의 속을 달래어야 한다.

어제밤 씻어 불린 쌀을 안치어 밥을 한다.
따로 따로는 살수 없어...
뭉쳐야만 무슨일이든 할 수 있는거야...
뜨겁다고 몸부림치다 어느새 윤기가 좌르르 하니 하나가 된다.

주방이 데워지고 있는 동안
나는 뜨거운 물에 나를 맡기기로 한다.
샴푸 냄새 퐁퐁 나고 , 헤어드라이 엥엥 거린다.
머리핀 하나 찾아 꽂고, 스킨 로션 발라댄다.

요즘들어 기미가 생긴거 같아...
썬크림도 발라야지...
화운데이션의 두께가 자꾸 두꺼워진다.

아...
구수한 냄새에 놀라 주방쪽을 돌아본다.

아침은 이렇게 소리와 냄새로 내게 온다.

"엄마, 옷 주세요... 엄마, 머리 묶어 주세요...."
"애야 그옷 말고 이옷 입어라... 로션은 발랐니?"

주섬 주섬 반찬 담고 소담하게 밥을 푸어
깔깔한 입을 적셔야 한다.

밥이 어디로 들어가는지 온통 시계바늘에 정신이 가 있다.

나의 아침은 언제나 이렇게 동시진행형으로 마치 비디오를
빨리 되감아놓은 듯 헝클어진 모습이 된다.

밀리는 도로상황을 연상하며 ...
제대로 닦이기는 하는 건지 손따로 마음 따로인 설겆이를
쓱싹 빨리도 해 치운다.

아...
느긋하게 기대어 앉아 커피 한잔 하고 싶다는 생각이 짧게 스친다.

아이들에게 잘 다녀오라는 인사를 건네고...
나는 또 어떤 옷을 입을까 서성거림으로 몇분의 시간을 허비한다.

"여자란 참 피곤한 동물이야, 뭐 그리 챙길게 많담...."

투덜거리는 남편의 목소리가 방문틈으로 새어 든다.

20대의 분홍빛 화사함이 이미 내겐 없다는 허탈함으로 거울앞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가는 건 사실이다.

30대의 원숙함을 위하여 ...
투자한 시간만큼 성과가 있다는 신념하에 온 정성을 들인다.

옷을 차려 입고 차에 오르면서
나는 100미터 달리기를 방금 마친 이처럼
숨을 고르며 시동을 건다.

오늘만큼은 머피의 법칙에 내가 예외가 되길 바라며 힘차게 하루를
달리려 한다.

익숙한 방향제의 내음이 편안하고, FM진행자와 만난다.

처음으로 만난 음악이 좋으면 그날 하루가 만사형통일 것만 같다.

가야할 곳이 있는 이의 아침은 언제나 이렇게 조금은 정신없이
채근하듯 달려 간다.

그러고 보니 오늘 아침 창밖을 내다 보는 시간을 빼먹었네...
지금쯤 베란다에는 분홍빛 제라늄이 넉넉한 아침햇살을 받고
있을터인데...

달리는 차안에서도 연신 도로가의 가로수들의 정취에 눈을 빼앗기고
신호등 보랴... 경치 구경하랴... 또 바쁘기는 마찬가지다.

이즈음 같이 풍경이 멋드러진 날에는 ...
차가 좀 밀려도 예전보다 훨씬 덜 짜증스럽다.

이곳 저곳 살피며 바라다 보면 즐거운 풍경들이 참 많아서이다.

정든 나의 자리로 가서 아침 커피 한잔을 만드니
그 향기에 나는 또 행복하다.

컴을 연다.
미지의 세계를 여행하는 설레임으로 기웃거린다.

늘 그날이 그날같은 일상이지만
나는 분명 어제의 내가 아니기에
오늘을 살아가야할 이유가 생긴다.

고운옷을 갈아입은 나무들처럼 ...
나도 내 마음의 옷을 갈아입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무엇보다 자연스런 내가 되어보고 싶다.

자연의 빛깔이 그러하듯 꾸밈없는 그 자체로
사람의 내음을 잃지 않을 수 있다면

이 아침
약간 달뜬 화장으로도
나는 그렇게 행복할수가 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