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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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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 십 점 짜리가 백 점 보다 더 좋은 시험지야.


BY ns05030414 2001-10-30

""내 생전 이렇게 올 되는 아이는 첨 본다.
무신 아이가 칠 개월 만에 걸음마를 시작한다냐?"
딸이 처음 걸음마를 시작할 때 증조할머니가 한 말이다.

"아니, 야가 시방 세 살이 맞냐?
무신 세 살 짜리가 요렇게 말을 잘 한다냐?"
오랫만에 손녀 딸을 만나 말을 시켜 본 할머니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 했다.

"하늘, 하늘, 푸른 하늘...
따라해 봐!
오빠는 그 것도 몰라?"
혼자서 한글을 깨우친 딸이 뒤 늦게 한글을 배우느라 진땀을 흘리는 제 오빠를 보고 한 말이다.
오빠가 느린 게 아니고 동생이 빨랐던 것이다.

딸은 어디를 가나 화제를 몰고 다녔다.
그 똑똑함 때문에...
모든 면에서 제 오빠를 앞질렀다.
달리기를 해도 오빠를 이겼다.
오빠가 누구에게 맞기라도 하면 쫓아가서 때려주고 오기도 여러 번이었다.


"고럼, 고럼, 누구 조카 딸인데..."
이모는 자기를 닮아서 똑똑한 거라고 했다.
"야가, 누굴 닮았다냐?
하긴 지 애비가 핵교 다닐 때 똑똑허긴 혔지."
할머니는 아빠를 닮아서 똑똑한 모양이라고 했다.
고모도, 삼촌들도 서로 자기를 닮아서 똑똑한 거라고 야단들이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도 딸은 들고 오는 시험지마다 백점이었다.
숙제도, 준비물도 알아서 척척이었다.
엄마는 그저 뒷 전에서 바라만 보았다.
"똑똑한 딸을 두어서 정말 좋으시겠어요..."
엄마를 만난 선생님은 엄마를 부러워하기 까지 했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날이 있다고 했던가?
딸은 어느 날 백 점 짜리 대신 삼 십 점 짜리 시험지를 들고 왔다.
시무룩한 표정으로 딸은 시험지를 내밀었다.
엄마가 봐도 시험 문제가 어려워 보이긴 했지만 그래도 너무 낮은 점수였다.
"딸아, 우리 이 시험지 벽에다 붙일까?"
한 번도 벽에다 시험지를 붙여 본 적이 없는 엄마가 말했다.
그 많은 백 점 짜리 다 두고 엄마는 삼 십 점 짜리 시험지를 벽에다 붙이자고 하였다.
딸은 싫다고 하였다.
"너가 몰라서 그렇지, 삼 십 점 짜리가 더 좋은 시험지야.
이 시험지를 볼 때 마다 이렇게 생각하는거야.
나도 잘못하는 것이 있구나!
다른 사람이 잘못하는 것이 있어도 너그럽게 봐 주어야겠다."
그러나 딸은 엄마를 이해하지 못했다.

엄마는 딸이 미치지 못할까봐가 아니고 지나치게 될까봐 염려가 컸다.
이런 엄마를 비웃기라도 하듯 딸은 지극히 평범한 아이로 자랐다.
수학이 어려워서 절절매는......
사춘기가 된 딸은 어느 날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난 이상해. 자긍심이 부족한 것 같아. 그래서 다른 사람 앞에서 주눅이 드는가봐."
엄마는 딸에게 이런 면이 있을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엄마는 착각 속에서 살았던 것이다.
엄마는 비로소 이해했다.
삼 십 점 짜리 보다는 역시 백 점 짜리 시험지가 더 좋다는 사실을...
자신이 고슴도치 엄마였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