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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의 산책~


BY hyny77 2001-01-26

오랫만의 산책에서 돌아 왔다. 시계를 바라보니 40분이란 시간이 흘렀다. 다리가 조금 아프긴 하지만 머리는 맑아지고, 기분도 한결 홀가분해 진 걸 느끼면서 살아 있는 느낌이 든다. 베란다 창문을 활짝 열어 본다. 조금전에 내가 걸엇던 구부정한 길이 보인다. 이 곳에 이사 온지 2년이 가까워지는 지금 베란다 창을 통해 바라만 보던 길을 오늘은 직접 걸어서 다녀 온 것이다. 새삼스럽게 새롭게 보인다. 그림처럼 보인던 풍경이 살아 있는 듯 숨결이 느껴진다.
어느 새 나의 마음은 그 길을 되 짚어 한 발자국 한 발자국 걸음을 걷고 있다.

"잘 놀다가 올께~" 현관문을 나서면서 던지는 하늘의 말을 받아 "고생이 많으시네. 마눌 먹여 살리느라~ " 동문서답식으로 던지며 어깨를 주물러 주니 당황한듯 "내가 멀 먹여 살려!?~" 되묻는 하늘에게 "나아 백조잖아~ 흐흐" 웃으며 한 마디 던진다. 그렇게 하늘은 아침이면 어김없이 출근을 하는 것인지 집을 나가곤 한다. 오늘도 연휴인데 나가버린 하늘.... 그리고 직장땜에 자취방으로 딸들마져 가 버리고 다시금 홀로 되어 컴 앞에 앉아서 하루를 보내다가 그저 답답함에 현관문을 나선다. 특별히 갈 곳도 없이 그냥 화장하고 길을 떠나본다. 무작정~ 그렇게 현관문을 나서본다.

아파트를 끼고 돌아서자 즐비하게 늘어선 차들이 보인다. 큰 덤프트럭. 버스. 중장비들이 주욱 늘어서서 쉬고 있다.
밝은 햇살을 받아 고이 잠든 것인양 조용하게 늘어서서 있다. 힘차게 움직여야 할 차들이 할 일을 잃고 지쳐 있다.
주욱 늘어선 차들을 지나쳐 가려는데 한 모퉁이 햇살아래 네모난 화판위로 한 사람이 나뒹구러져 쓰러져 있다. 맨 바닥이 아닌 화판위에 꾸부리고 잠을 자는 것인지 움직임이 없다. 술이 취한 것일까~ 그 옆에 자전거가 지켜 보고 있다. 차마 다가 가지 못하고 지나쳐 걸어간다. 조금더 타박타박 걷고 있자니 도랑물이 졸졸 흐르고 상쾌한 바람이 머릿결을 스친다. 멀리 과수나무가 불그스름하게 봄을 준비하나 보다. 여기 저기서 봄을 알리고 있다. 베란다 창으로 밤마다 반짝이던 십자가를 가진 교회앞을 지난다. 충주중앙교회.. 넓다란 앞마당을 감싸면서 울타리처럼 늘어진 꽃나무들이 물이 오른듯 살아 숨쉬는 것이 보인다. 왕궁처럼 보이던 금곡어린이집을 지날 때에는 왁자직껄 어린이들 떠드는 소릴 기대 했는데... 아기자기한 놀이터가 주인을 잃은듯 조용하다. 오늘이 연휴구나....생각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논길을 따라 돌아온다. 파릇파릇 새싹들이 널려진 지푸라기 사이로 인사를 한다. 어떤 아저씨와 딸인듯한 여자가 둘이 소곤소곤 무엇인가 얘길 하며 지나간다. 타박 타박 한동안 걸어본다. 밝은 햇살이 너무 기분좋게 빗추고 바람이 알맞게 상큼하다. 아무 생각없이 그렇게 먼 하늘을 바라다 보며 걷다보니 멀리 네모난 아파트가 보인다.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가 나를 내려다 보고 있는 듯하다. 지금쯤 누군가가 내가 그랫던 것처럼 이 길을 내려다 보고 있겠지....
아파트가 점점 가까워질 수록 다리가 조금씩 아파온다. 해가 점점 서쪽으로 기울어져 올때 쯤 아파트에 거의 가까워졌다. 다행히 아까 쓰러져 있던 아저씨는 보이지 않고 네모난 화판만이 얌전히 있고 자전거는 역시 그 화판을 지키고 있다. 어디로 간 것일까? 집으로 간 것일까? 궁굼함도 잠시 무엇이라도 사 갖고 갈까? 하다가 그냥 상점앞을 지나쳐 텅 빈 화단을 따라 걷는다. 아이들이 놀이터에 옹기종기 놀고 있다. 다시금 아파트로 들어가려니 답답하다. 하지만 따뜻한 방안이 그리워 빨리 들어가고 싶기도 하다.
나 어느새 조그만 방에 갇혀 지내는 것에 익숙해져 있나보다. 그리워지다니~ 조그만 나의 공간이 그리워지다니 말이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니 훈훈한 공기가 와락 껴 안으며 맞아준다. 나를 반겨준 것이 아니고 나를 따라온 40분간의 산책을 반겨주는 것이리라. 나는 늘 방안에 있었으니 무엇이 반가울 것인가. 산책하고 온 나를 반겨주는 것이겟지.

내일도 오늘처럼 또 산책을 해 보리라~ 무작정 걸어보리라~
자꾸만 큰 덩치를 부끄럽게 서 있기만 하던 중장비들이 생각난다. 할 일을 기다리고 있는 듯 묵묵히 줄지어 서 있던 모습이 아무 일도 하지 못하고 있는 내 모습을 보는 듯 하다. 마음한 구석이 후련하면서도 씁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