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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이 회사의 요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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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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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다 나를 더 챙기는 사람


BY 雪里 2001-10-20

아침일찍 나가봐야 손님도 없는데 서둔다며
부산을 떠는 등뒤에서 그이는 한마디 한다.
손님이 시간 예약하고 오냐며 얼굴을 바짝 들이대니
하회탈 같은 웃음으로 얼버무림을 해버리는 그이.

화요일부터 시작한 그이 아지트 석축 공사가
하루하루 길어지더니 다음 월요일이나 되야 끝마무림 지을것 같다.
돈을 벌어들여도 시원찮을 이 판국에 돈쓸일만 지꾸 만드는 그이가 미워 짜증을 내 보다가도 자기를 위해서는 돈한푼 쓸줄 모르는 데 대한
보답이라 생각하며 꾹 참고 있다.

닷새째 혼자 가게에서 징역(?)살이를 하는 것도 힘들고,
문닫고 마트에서 찬거리 사서 밤 늦게까지
다음날 일꾼들 먹을 반찬을 준비해 놓는일도 피곤함을 보태서 몸이 영 말이 아니다.

엊저녁.
어두워져서 작업을 끝냈을 시간이라
가게에서 그이에게 전화를 했다.
준비 해놓은 밥은 잘 차려서 내드렸나 싶어서.
한참을 신호음이 울리는데 받지를 않는다.
수화기를 내려 놓으며 엊그제처럼 일꾼아저씨가 다치는 일이 생겼나 싶어 불안함이 마음을 채워가고 있는데 벨이 울린다.
"여보세요!"
"왜 전화 끊었어?"
"한참동안 안받으니까 자기 밖에 있나 싶어서..."
"손에 퐁퐁 묻어서 닦느라구!"
"왠 퐁퐁?"
"응~~! 나, 설겆이 하고 있었거든! 손닦고 받으러 가니까 끊어지드라!"
"설겆이? 자기 지금 설겆이 했다고 했어요?"
"응!"

암만 생각해도 기가 막힐 노릇이다.
그릇을 닦고 있는 그이 모습이 눈앞에서 나를 웃기고 있다.
비실비실 입밖으로 기어나오는 웃음을 억제 할 수가 없다.

다른날보다 삼십분쯤 일찍 샷터를 내렸다.
마트에서 아저씨들 간식거리와 찌게거리를 사는시간도 최대한 단축하고 어른들을 위해 닭도 한마리 토막쳐 달래고...
집에서 갓김치를 챙기며 어머니께
"낼 저녁엔 닭도리탕 해 드세요!"했다.요즘 덩달아 고생하신다.

시골은 밤도 유난스레 까맣다.
약간 외딴 그이 아지트의 외등만 희뿌옇다.
공사때문에 차를 아래에 세우고 들어가니, 그인 욕실에 있었다.
씽크대위에 깨끗이 닦여 엎어져 있는 그릇들!
후라이팬까지도 깔끔하게 닦아 가득 쌓아논 걸 보니 또 웃어진다.

어느것 하나 몸 움직이는것에 인색했던 그이가
결혼생활 이십오년만에 드디어 설겆이 까지 하는 거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내 힘을 덜어 주고싶어
노력을 하고 있다는걸 내게 보이는 자체도 멋적어 하고 있는 그이가 나이에 걸맞지 않게 천진스럽기까지 하다.

"왔어?"
"응! 설겆이 잘 했네요."
"설겆이도 하고 청소기도 밀고, 닦고 다했어! 자긴 내일 준비만 하고 자면돼."
젖은 머리에 수건을 얹고 나오며 의기양양하다.
초등학생 청소 당번이 깨끗이 청소 해놓고 선생님께 검사를 받는 것 같다는 생각이 번쩍 스쳤다.
겉으로 그말은 내놓지 않았다.그러면 그나마 그만 둘 까봐.

서로의 얼굴 미소 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함의 척도를 알아 차릴수 있는 부부가 된 우리라서 말 없이 포도 한송이를 씻어 그이앞에 내어 놓았다.

국 없이 아침을 먹으면 벌금을 무는줄(?)아는 그이.
감자국 끓여놓고,점심 준비하고...
바쁜데 뒤에서 아침 먹고 가라며 채근이다.
집에가서 먹겠다고 해놓고 지금 생각해 보니까 안먹고 나왔다.
허겁지겁 얼굴에 찍어 바르고 나오느라 밥 먹는걸 잊은거다.
난 내몸을 잘 안챙기는 편이다.
미련 스러울만치 자신을 돌보지 않는다고 그이가 성화다.
허리통증으로 고생하는 날 보고 가족들은 몸을 너무 혹사 시켜서 그렇다고 한다. 곰퉁이 짓이라나...

아침에 그이가
세수를 하고 나오는 내게 체중계에 올라가 보란다.
바쁜데 성가시게 한다며 그냥 나왔다.
허겁지겁 운전석에 오르는 나의 뒷 통수에 대고 그이가 중얼댄다.
"2자만 보이면 가만 안있어!"

나보다 나를 더 신경쓰는 그이가 있어 행복하다.

미련스런 짓 그만하고 나를 내가 챙기고 아끼겠다고 생각을 하며
모처럼 과감하게 내옷이라도 하나 사려고 나서고는
상가를 돌면 아들놈들 옷만 눈으로 들어 오는,
나는 정녕 곰퉁이인가!

곰퉁이래도 좋다.
늙으며 철드는 남편이 있고
그사람이 나를 나보다 더 잘 챙기고 있으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