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동창생을 찾는 사이트에 들렀다가
가끔 생각나던 이름을 발견했다.
국민학교와
(난 아직 초등학교보다 국민학교가 더 정겹다.
왠지 초등학교는 낯설어서.... 이 민족반역자에게 돌을 던지라-)
중학교를 같이 다닌 동창녀석.
반가움이 앞섰지만 정작 메일을 보내려니 망설여졌다.
짧지 않은 시간이 흘렀고
그 시간 동안 나도 많이 변했으니
마냥 편하게 과거로 돌아가지지가 않았다.
몇번의 망설임 끝에 간단한 메일을 날렸다.
"나 기억하겠지?"
라는 제목으로.
새삼 긴장도 하면서.
답장이 안 올 지도 몰라.
나처럼 메일 박스를 잘 안 열어볼 수도 있고,
어쩌면 보고도 답장을 안 할 수도 있겠지.
괜시리 기대와 초조감이 섞이는데
뜻밖에 몇시간 만에 답장이 날아왔다.
"당근 기억하지"
로 시작해서
"너의 첫사랑이"라는
짓궂은 농담으로 끝나는 편지.
그 시절이 생각났다.
시골학교에서 공부 좀 잘했다고 우쭐해서
못되게 굴었던 나.
(고등학교에 가서 우물안 개구리는 세상넓은 줄 알았답니다. 깨갱!!)
별 말 없이 씨익 웃기 잘하던 그애.
중학교 3학년 때 난 남녀합반의 실장이었다.
남녀 혼합반으로 편성한 첫해였다.
새 학기 첫날, 교실에 들어오신 선생님은
관례대로 남자 실장과 여자 부실장을 선출하라고 하셨다.
그러나 용감하고 선구적인 우리의 여성동지들이 뭉친 거다.
"선생님, 그건 불공평하잖아요. 득표순으로 해요."
그리고는 뒤에서 여자들의 표를 모으자고 작전을 짰던 모양이다.
예상대로 남자애들의 표는 분산 됐고
여자애들의 표는 나에게 몰리니
당시로서는 가히 혁명적이라 할 수 있었다.
개교이래 처음으로
여자 실장과 남자 부실장이 탄생한 것이었다.
한창 여드름이 나고 이성에 관심이 많은 시기.
그래서 더 쑥스럽고 괜히 심술을 부리던 아이들.
그 속에서 나도 우리반 한 녀석을 찍어서
첫사랑에 가슴앓이도 했었다.
졸업식 날.
식이 끝난 후 엄마랑 점심을 먹으러 갔다.
세대를 초월하는 외식메뉴의 백미,
짜장면!
사실 시골이라 그 곳 말고는 달리 갈 곳도 없었다.
자리를 잡고 앉아 있는데
방에서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인 그 녀석이 나온다.
벌써 다 먹고 나가는 길인가 보다.
문앞에 이르른 그 녀석,
왠지 쭈뼛거리며 서 있다.
내 시선은 줄곧 그 녀석에게로 가 있었다.
'이제 보기 힘들텐데 작별인사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내가 망설이고 있는 사이 그애가 슬며시 내 쪽으로 돌아선다.
"야, 실장! 졸업 축하해."
그리고는 뒤도 안 돌아보고 내뺀다.
나도 뭐라고 인사를 하고 싶었는데.......
그게 마지막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렇게 수줍었던 시골 소년의 모습은 오래도록
내 기억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그 소박했던 중국집과 함께.
곧 결혼한다는 그애에게 답장을 보냈다.
아줌마다운 넉살을 섞어서.
"총각이라니 이 아줌마 가슴이 뛰는구나. 아깝다. 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