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동안 대충대충 대강대강 치웠던 집안을 청소기를 돌리고
구석구석 걸레질을 했다.
방마다 벗어 놓은 옷가지며
과자껍질이며
물컵이며
장남감이며
책이며...
치워도 치워도 끝이 없을 것 같은 자질구레함이
내 손으로 하나하나 제자리로 돌아가는 걸 보면서
내가 이 집에 없으면 어떻게 될까? 이런 아픈생각을 했다.
추석전에 담가 논 오이지를 다섯 개 꺼내
두 개는 물을 자박자박 부어 오이지 물김치를 만들고,
세 개는 바작바작 주물러 오이지 나물을 무쳤다.
남아 있던 돼지고기를 김치와 함께 볶고,
우엉조림과 함께 식탁위에 차렸다.
딸아이는 미술학원에 갔다가와서는
이른 저녁을 먹고...
다시 종합학원으로 가야한다.
"엄마 밥을 조금 펐어요?"
여간해서는 더 먹지 않던 딸아이가 밥을 더 먹었다.
돼지고기 볶은 것과 오이지 물김치가 맛있다며...
아들아이는 밥 먹자마자 만화를 본다.
컴하고 싶다는 걸
"한가지만 해." 했더니 만화를 선택해서 본다.
휴일이 길면 내 무기력함도 길어진다.
휴일이 많으면 내가 저 밑으로 가라앉는다.
끝도 알 수 없는 맨홀속이 그럴거야.
그 깊은 어둠속에 사로잡혀 작은 하늘만 바라봐야하는 무력감.
청소를 했더니 시원하다.
네모난 창엔 네모난 하늘이 홀로되어 서 있다.
베란다의 분꽃은 잎만 무성하지 꽃은 피우지 못하고 이 계절을
보낼 것 같은 예감이든다.
국화도 잎만 길죽하게 늘어났지
꽃망울은 보일 기미가 없다.
사랑초만이 언젠나처럼 싱싱하고 분홍꽃을 자잘하게 피우고 있다.
또 하루가 간다.
내일은 등산을 가고,월요일부터는 일을 나가야 한다.
이제는 긴 무력감에서 탈퇴를 해야겠다.
티브이를 보던 아이가 아이스크림을 꺼내 먹으면서
내게 헤즐럿카페 아이스크림을 갔다 준다.
한 입 와작 깨물어 먹으니 너무 달다.
이런 아이스크림을 만들 때 조금 덜 달게 하면 안될까?
커피나 한잔 끓여 마셔야겠다.
설탕 세스푼을 넣은 커피...
커피는 완전 설탕물을 해가지고 마시면서
아이스크림은 달다고 투정을 했다.
불만이 많으면 아무리 좋은것을 보더라도 단점만 보이듯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지 못하면 이 푸른 가을하늘도 아름답지 않듯
무기력한 내 마음이 자꾸 겉으로 들어난다.
긴 휴일은 갔다.
시원하게 청소를 했다.
청소를 하고난 뒤의 개운함들이 내 속으로 들어왔으면 좋겠다.
창아래 세상은 눈이 부시다.
노오란 햇살이 나무들 사이로 비집고 들어와
나뭇잎이 덩달아 노오랗게 물이 들었다.
긴 휴일을 보낸 세상은 눈이 부시다.
아! 눈부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