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법 술에 취한 모습으로
다른 날보다는 좀 이른 시간에 들어온 남편.
일기쓰기 하나 남겨놓고 엄마 속을 그리도 끓이던 아들은
아빠 인기척에 얼른 지 방으로 달려갔다.
숙제 시간을 최대한 미뤄대는 아들이기에
어젯밤, 아빠께 혼도 나고 생활계획표도 짰던터라
하루만에 계획대로 따르지 못함에 아빠가 무서웠나 보다.
TV 프로 따라 아이들 발맛사지를 해 주겠다던 남편이
뜬금없이 아이들에게 야단을 친다.
주제도 없다.
다른날 같으면 들어오기가 무섭게 잠 들던 신랑이
아이 둘을 앞에 앉히고는 눈싸움이라도 하듯 뚫어져라 바라본다.
피식 피식 웃어보던 아이들은
분위기가 심상찮은지 잔뜩 주눅이 들어있다.
저 어린 아이들의 마음이 얼마나 복잡할까?
아이들 야단치기를 잘 하는 내 가슴이 다 아프다.
드디어 딸아인 막내 티 내듯 울음을 터뜨리고..
잠시 후 아빠는 무릎에 아이를 앉혔다.
근데, 그 모습에서 갑자기 20여년전의 내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는 눈 언저리가 젖어든다.
기분좋게 약주한잔 하고 오시면 작은 딸인 날 옆에 앉히고는
"우리 숙이, 우리 숙이" 를 되풀이 하시던...
풍겨대는 술 냄새가 싫고, 반복되는 말씀들이 지겨워
아버지 곁을 살짝 빠져 나오면
"숙아, 숙아" 또 불러대신다.
아버지의 그런 모습은 그 시절에서 끝이 났고
그 후 담배도 끊으시고, 약주도 적당히 하시는 분으로 바뀌셨다.
요즘 6살박이 딸아이와 남편을 보면서
내 어릴적 모습이 가끔 그리워지곤 한다.
나도 저랬을까?
적잖게 귀염받았던 작은 딸.
나 어릴적에도 울 아버지 품에 안겨 저렇게 종알 종알 떠들어댔을까?
늘상, "엄마, 엄마" 엄마만 찾아대던 딸이
저 또한 딸을 키우다보니 아버지가 자주 그리워집니다.
제가 찾아가는 친정에서 늘 아버지 모습을 볼 수 있도록
엄마와 함께 오래 오래 건강히 살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