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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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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인터넷 사이트에서 슬피 울고 있는 내 딸아이의 모습을 보고...-


BY 박 라일락 2001-10-06

- 어느 인터넷 사이트에서 슬피 울고 있는 내 딸아이의 모습을 보고...-
어제 무료한 오후 한나절 무심코 인터넷 사이트를 여행하다가 낮 익은 어느 게시판에서 어느날 민들레 홀씨 되어 날아 가버린 나의 여식의 추석 명절이 되어도 멀리서 친정을 바라만 볼뿐.. 찾아뵙지 못함을 두고 슬퍼함의 마음을 읽었는데.. 얼마나 어미의 가슴이 아팠는지.. - 어느 인터넷 사이트에서 슬피 울고 있는 내 딸아이의 모습을 보고...- 그 딸아이는 나에게 살림밑천이었고.. 고등학교까지는 다른 아이들처럼 그저 평범하게 자랐으며 학교성적은 시골학교라지만 전교에서 일 이등을 다툴 정도로 우수했었다. 그 당시 자기 동생들은 이미 대구로 공부하러 나갔지만 이 아이만은 가정형편상 대학교부터 대구유학 길에 올랐고.. 졸업을 2년 정도 남기고 자기 아빠를 잃는 슬픔을 겪었는데.. 그 당시 줄줄이 사탕처럼 자식 모두를 대구에 내보내서 교육을 시켰으니 ... 이 뇨자는 혼자서 가진 재산도 없고 늘 어판장에서 남정네들과 힘든 경쟁 속에서 거두어들인 황금으로 학자금을 보냈으니.. 그 때의 처절했던 나의 삶은 지금도 기억조차 하기 싫은 추억담 속에 저장되어 있다.. 참으로 힘들게 아이들을 대학교까지 마치게 했는데. 그 당시 그 딸아이는 넘 힘들어하는 지어미에게 지키지 못할 약조를 했었다. “엄마! 아빠자리까지 맡아서 힘들어함을 알고 있어요. 하지만 이 맏딸이 대학교를 졸업하면 막내 현이 만큼은 대학까지 책임지고 지 댁을 맞이할 때도 이 누나가 다 알아서 해 줄 터이니 엄마 염려마세요“ - 어느 인터넷 사이트에서 슬피 울고 있는 내 딸아이의 모습을 보고...- 그런데.. 영문학을 전공한 딸아이는 졸업과 동시에 서울에 취직을 했었고. 받는 월급은 쥐꼬리만하여 자기 입에 풀칠하고 지 몸치장하기에 늘 허둥지둥했었지. 낮 설고 물 선 타향에서 고독을 씹는데 힘들어하더니 타향살이 어느날 대학교 선배의 끈질긴 구애에 홀라당 넘어가버렸고.. 막내 남동생의 장래를 책임지겠다고 한 호언장담은 고사하고 단돈 십 원도 이 어미에게 보탬을 주지 못했고... 결혼만이 마냥 행복으로 착각하더니 그 어느 날 훌쩍 내 곁을 떠나갔었다. - 어느 인터넷 사이트에서 슬피 울고 있는 내 딸아이의 모습을 보고...- 그 당시 그 아이의 신랑감은 이리저리 아무리 보아도.. 이 뇨자의 고슴도치사랑이라고 님들은 말하겠지만.. 내 여식과는 비교가 안될 만큼 1/100도 마음에 안찼다. 먼저 남과여 만남은 첫인상이라고 했는데.. 내 여식의 인물이 남자에 비해서 너무 아까울 정도였고. 또 학벌도 똑 같은 대학교를 졸업했고 성적도 내 딸아이 대학4년 동안 내내.. 장학금을 받았으니 밑질 염려 없고. 우리 집 가정도 단지 지네아비가 병으로 먼저 여의는 것 외에는 경주월성 박씨의 뼈대 있는 집안 이였으니 뭐 그리 티 잡힐 일은 없지 않는 감?. 그런데 신랑감은 4남매의 맏이로 양친부모님 생존하셨고.. 거기다가 시골에 농사를 짓는 종가집안의 대들보의 역할을 잔뜩 어깨에 짊어지고 있는 유교집안의 표준이었다. 그 옛 승인의 말씀 하나도 그런 것 없다고 했는가..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었고.. 또한 그 시 어머니. 은근슬쩍 예단감에 많은 스트레스를 나에게 주었는데 그 당시 아버지 없는 자식 표시 안 낼라고 이 뇨자 안간 힘을 동원하여 딸아이 섭섭하지 않게 그 시절에 시댁에서 많이 해 왔다는 소리 들을 정도 바리바리 싸서 보냈다. 시어머니 예단 중에는 이 뇨자가 3년 동안 계모임해서 애지중지 힘들게 모은 금덩어리 약간을 함께 보냈는데.. 보낸 그 금으로 딸아이 폐물로 목걸이, 팔찌, 가락지가 되어서 뒤 돌아왔으니.. 또 신랑다이아 반지를 원하기에 그래도 좀 넉넉한 것을 해 주었는데 시댁에는 정말 너무 초라하고 형식적인 폐물을 보내왔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어미가 할 것이 아니고 자기 부부들이 소유하는 것이니깐 좀은 섭섭했지만 상관하지 않았는데.. - 어느 인터넷 사이트에서 슬피 울고 있는 내 딸아이의 모습을 보고...- 결혼이라는 것을 하고부터 지 남편의 봉건적 사상으로 딸아이는 참으로 힘들어하는 눈치가 역력했고.. 벌이의 1/3정도는 매달 시댁으로 송금해야하는 것은 약과이고 바로 밑의 시동생이 밥 먹고 숭늉 마시듯 사고를 치니 그 뒤치다꺼리로 가슴앓이를 하면서 일찍 결혼함에 후회함을 이 어미에게 전화로 하소연하여 왔었고.. 이 어미는.. “너 자신이 도끼로 찍은 상처이니 참고 살도록 해라” 단 한마디 대답으로 묵살했다. 건설업계의 지네 남편직장에 어려움이 닥쳐오면서 딸아이.. 생활전선에 나서서 전공과목인 영어강사로 지금 현재까지도 일하는 어려움에 있고.. 언젠가 직원 아파트를 각 개인으로 등기이전하면서 만만찮은 거금을 이 어미에게 지원받아 갔건만.. 그 당시에만 고맙다고 인사치례를 몇 번하더니 몇 년이란 세월이 흘러감에 까맣게 잊어버린 딸아이 남편은 당연지사로 느끼는 것까지는 이해를 하지만.. 요즈음도 다른 자식 알게 모르게 힘들어하는 딸아이에게 푼돈 아닌 푼돈이 송금되어가고 있으니.. 참으로 자식은 애물단지 인가 싶다.. - 어느 인터넷 사이트에서 슬피 울고 있는 내 딸아이의 모습을 보고...- 그런데 해마다 추석이나 설 명절을 맞이하면서도 딸아이의 시댁에는 친정한번 보내는 일이 없고.. 연휴 끝나는 마지막 날까지 아들 내외를 붙잡아 두고 있으니.. 딸아이의 친정엄마에 대한 도리에 어긋남의 미안함과 지네 동생들에게 지키지 못한 그 약속 땜에 늘 가슴앓이 하는 모습을 보여 왔는데.. 그리고 전화한통으로 효녀 노릇 대신했고.. 이 번 팔월 한가위가 지나고 자기 보금자리에 도착하자 말자 어느 인터넷 게시판에서 흐느끼면서 지네 엄마에게 용서를 비는 마음을 올렸으니.. 참으로 여식의 사는 모습이 애달프고 서글프도다.. - 어느 인터넷 사이트에서 슬피 울고 있는 내 딸아이의 모습을 보고...- 나 역시 시어머니 입장에서 나의 아들 여자에게 이러지는 않았는데.. 내 딸자식에게 주는 사랑 보다 더 깊고 더 많은 사랑을 아들의 그녀에게 한껏 주고 싶은 마음인데.. 이 뇨자의 아들 부부는 추석전날 이 시어미가 보낸 사돈 선물을 가지고 처가엘 다녀왔고.. 추석을 보낸 그 이튿날 부부가 함께 가서 아들만 어판장 일 땜에 돌아오고 아직도 친정에서 친구들이랑 함께 한다고 돌아오지 않고 있는데.. 세상은 정말로 넘 넘 불공평한거 아냐?.. 하기 사.. 사람마다 이 뇨자 마음 같지 않으니... 누구를 원망하랴.. 아직도 살날이 훨씬 더 많은 30대의 초반의 딸아이.. 무겁지도 않은 남편 복 받지 못한 딸년의 팔자로 돌려야하지 아닐까.. 어느 임께서 말했던가.. 산다는 것! 도체 그 자체가 무엇일까? 어제도 오늘도 그 딸아이의 사연으로 마음이 어수선하고 가슴이 찡해서 일이 손에 안 잡히니.. 참말로 무자식이 상팔자인가 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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