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무료한 오후 한나절 무심코
인터넷 사이트를 여행하다가 낮 익은 어느 게시판에서
어느날 민들레 홀씨 되어 날아 가버린
나의 여식의 추석 명절이 되어도 멀리서 친정을 바라만 볼뿐..
찾아뵙지 못함을 두고 슬퍼함의 마음을 읽었는데..
얼마나 어미의 가슴이 아팠는지..
그 딸아이는 나에게 살림밑천이었고..
고등학교까지는 다른 아이들처럼 그저 평범하게 자랐으며
학교성적은 시골학교라지만 전교에서
일 이등을 다툴 정도로 우수했었다.
그 당시 자기 동생들은 이미 대구로 공부하러 나갔지만
이 아이만은 가정형편상 대학교부터 대구유학 길에 올랐고..
졸업을 2년 정도 남기고 자기 아빠를 잃는 슬픔을 겪었는데..
그 당시 줄줄이 사탕처럼 자식 모두를
대구에 내보내서 교육을 시켰으니 ...
이 뇨자는 혼자서 가진 재산도 없고
늘 어판장에서 남정네들과 힘든 경쟁 속에서
거두어들인 황금으로 학자금을 보냈으니..
그 때의 처절했던 나의 삶은
지금도 기억조차 하기 싫은 추억담 속에 저장되어 있다..
참으로 힘들게 아이들을 대학교까지 마치게 했는데.
그 당시 그 딸아이는
넘 힘들어하는 지어미에게 지키지 못할 약조를 했었다.
“엄마! 아빠자리까지 맡아서 힘들어함을 알고 있어요.
하지만 이 맏딸이 대학교를 졸업하면
막내 현이 만큼은 대학까지 책임지고 지 댁을 맞이할 때도
이 누나가 다 알아서 해 줄 터이니 엄마 염려마세요“
그런데..
영문학을 전공한 딸아이는
졸업과 동시에 서울에 취직을 했었고.
받는 월급은 쥐꼬리만하여 자기 입에 풀칠하고
지 몸치장하기에 늘 허둥지둥했었지.
낮 설고 물 선 타향에서 고독을 씹는데 힘들어하더니
타향살이 어느날
대학교 선배의 끈질긴 구애에 홀라당 넘어가버렸고..
막내 남동생의 장래를 책임지겠다고 한 호언장담은 고사하고
단돈 십 원도 이 어미에게 보탬을 주지 못했고...
결혼만이 마냥 행복으로 착각하더니
그 어느 날 훌쩍 내 곁을 떠나갔었다.
그 당시 그 아이의 신랑감은 이리저리 아무리 보아도..
이 뇨자의 고슴도치사랑이라고 님들은 말하겠지만..
내 여식과는 비교가 안될 만큼 1/100도 마음에 안찼다.
먼저 남과여 만남은 첫인상이라고 했는데..
내 여식의 인물이 남자에 비해서 너무 아까울 정도였고.
또 학벌도 똑 같은 대학교를 졸업했고
성적도 내 딸아이 대학4년 동안 내내..
장학금을 받았으니 밑질 염려 없고.
우리 집 가정도
단지 지네아비가 병으로 먼저 여의는 것 외에는
경주월성 박씨의 뼈대 있는 집안 이였으니
뭐 그리 티 잡힐 일은 없지 않는 감?.
그런데 신랑감은
4남매의 맏이로 양친부모님 생존하셨고..
거기다가 시골에 농사를 짓는 종가집안의 대들보의 역할을
잔뜩 어깨에 짊어지고 있는 유교집안의 표준이었다.
그 옛 승인의 말씀 하나도 그런 것 없다고 했는가..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었고..
또한 그 시 어머니.
은근슬쩍 예단감에 많은 스트레스를 나에게 주었는데
그 당시 아버지 없는 자식 표시 안 낼라고
이 뇨자 안간 힘을 동원하여 딸아이 섭섭하지 않게
그 시절에 시댁에서
많이 해 왔다는 소리 들을 정도 바리바리 싸서 보냈다.
시어머니 예단 중에는
이 뇨자가 3년 동안 계모임해서
애지중지 힘들게 모은 금덩어리 약간을 함께 보냈는데..
보낸 그 금으로
딸아이 폐물로 목걸이, 팔찌, 가락지가 되어서 뒤 돌아왔으니..
또 신랑다이아 반지를 원하기에
그래도 좀 넉넉한 것을 해 주었는데
시댁에는 정말 너무 초라하고 형식적인 폐물을 보내왔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어미가 할 것이 아니고 자기 부부들이 소유하는 것이니깐
좀은 섭섭했지만 상관하지 않았는데..
결혼이라는 것을 하고부터 지 남편의 봉건적 사상으로
딸아이는 참으로 힘들어하는 눈치가 역력했고..
벌이의 1/3정도는 매달 시댁으로 송금해야하는 것은 약과이고
바로 밑의 시동생이 밥 먹고 숭늉 마시듯 사고를 치니
그 뒤치다꺼리로 가슴앓이를 하면서 일찍 결혼함에 후회함을
이 어미에게 전화로 하소연하여 왔었고..
이 어미는..
“너 자신이 도끼로 찍은 상처이니 참고 살도록 해라”
단 한마디 대답으로 묵살했다.
건설업계의 지네 남편직장에 어려움이 닥쳐오면서
딸아이..
생활전선에 나서서 전공과목인 영어강사로
지금 현재까지도 일하는 어려움에 있고..
언젠가 직원 아파트를 각 개인으로 등기이전하면서
만만찮은 거금을 이 어미에게 지원받아 갔건만..
그 당시에만 고맙다고 인사치례를 몇 번하더니
몇 년이란 세월이 흘러감에 까맣게 잊어버린 딸아이 남편은
당연지사로 느끼는 것까지는 이해를 하지만..
요즈음도 다른 자식 알게 모르게 힘들어하는 딸아이에게
푼돈 아닌 푼돈이 송금되어가고 있으니..
참으로 자식은 애물단지 인가 싶다..
그런데 해마다 추석이나 설 명절을 맞이하면서도
딸아이의 시댁에는 친정한번 보내는 일이 없고..
연휴 끝나는 마지막 날까지 아들 내외를 붙잡아 두고 있으니..
딸아이의 친정엄마에 대한 도리에 어긋남의 미안함과
지네 동생들에게 지키지 못한 그 약속 땜에
늘 가슴앓이 하는 모습을 보여 왔는데..
그리고 전화한통으로 효녀 노릇 대신했고..
이 번 팔월 한가위가 지나고 자기 보금자리에 도착하자 말자
어느 인터넷 게시판에서
흐느끼면서 지네 엄마에게 용서를 비는 마음을 올렸으니..
참으로 여식의 사는 모습이 애달프고 서글프도다..
나 역시 시어머니 입장에서
나의 아들 여자에게 이러지는 않았는데..
내 딸자식에게 주는 사랑 보다 더 깊고 더 많은 사랑을
아들의 그녀에게 한껏 주고 싶은 마음인데..
이 뇨자의 아들 부부는
추석전날
이 시어미가 보낸 사돈 선물을 가지고 처가엘 다녀왔고..
추석을 보낸 그 이튿날 부부가 함께 가서
아들만 어판장 일 땜에 돌아오고
아직도 친정에서 친구들이랑 함께 한다고
돌아오지 않고 있는데..
세상은 정말로 넘 넘 불공평한거 아냐?..
하기 사..
사람마다 이 뇨자 마음 같지 않으니...
누구를 원망하랴..
아직도 살날이 훨씬 더 많은 30대의 초반의 딸아이..
무겁지도 않은 남편 복 받지 못한 딸년의 팔자로 돌려야하지 아닐까..
어느 임께서 말했던가..
산다는 것!
도체 그 자체가 무엇일까?
어제도 오늘도 그 딸아이의 사연으로
마음이 어수선하고 가슴이 찡해서 일이 손에 안 잡히니..
참말로 무자식이 상팔자인가 하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