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이곳은 폭풍이였다. 맞으면 아플것 같은 장대비가 참 모질게 하루종일 내려쳤다.
아침 출근길.
비를 뚫고 달리는 내 머리속에 떠오르는 공간이 있었다.
남자친구와 헤어진 후, 남편을 만나기 전.
철저히 혼자이던 시절. 한동안 대인기피증에 걸려서 악날하게 혼자를 고집하며 살던 때의 나의 공간.
혼자 자고 혼자 밥을 하고 혼자 먹고 혼자 일을 가고 혼자 책을 읽고 혼자 테레비를 보고, 욕을 바가지로 먹으면서도 사람들을 피하고.
일을 하면서도 집에 갈 생각만 계속하고.
집에 꿀단지라도 모셔둔것처럼 도망치듯 집을 돌아와, 텅빈 어두운 원 룸 아파트의 불을 키고 문을 잠그고 전화코드를 빼어버리고.
겨우 어휴~~~~
한숨을 지으며 느긋하게 씩 웃고.
혼자 참 행복하게 뒹글던 공간.
엉뚱하게도 어제 출근길에 나는
그 달콤한 혼자의 공간을 생각하고 있었다. 오늘 일이 끝나면 그런 공간으로 돌아가고 싶다....... 라는 생각.
하루의 일이 끝나고,
어두워진 창밖을 보니, 아침에 내리던 장대비가 여전히 내리고 있었다.
밤.
내가 돌아간 공간에는
불이 켜져 있었고 남편의 컴이 켜져있었고 남편의 T.V.도 켜져 있었다. 남편과 나의 저녁을 짓고, 둘이 머리를 맞되고 앉아 식사를 했다. 그리고 이런 저런 말도 했다. 돈 이야기. 저기서 돈이 들어오고, 요기로 돈이 나가고, 이리로 돈을 쓰자. 그래라.
방안에 가득찬 내가 아닌 사람의 숨결.
내가 아닌 사람의 목소리. 내가 아닌 사람의 냄새. 내가 아닌 사람의 소리. 내가 아닌 사람의 체온.
혼자있고 싶었다.
침대에서 남편을 베개삼아 베고 누워서도 그 생각을 했다.
남편에게 물었다.
당신의 꿈은 뭐야?
나 꿈 안꿔. 난 푹 자.
잠자는 꿈말고, 당신이 원하는 삶. 그 꿈.
음........ 니가 섹스를 거부하지 않고, 막 하자고 덤벼드는거.
에이, 장난하지 말고, 진짜로. 꿈이 뭐야?
우리 가족, 너, 나, 울 아기들, 행복하게 사는것.
어떻게 행복하게 ?
그냥 재미있고 막 행복하게.
그리고 남편은 잠이 들었다.
오늘 아침 일어나 나를 웃기는 텔레토비 춤을 추는것을 보니, 나의 조용함이 왠지 불안한가 보다.
폭풍이란다. 여전히 장대비가 내린다.
내 안의 이기적이고 괴팍한 내가 몸을 움크리고 있지만 여전히 꿈틀거린다. 내안의 바다가 출렁인다. 어마 어마한 파도가 되어서 나를 삼켜버릴까봐 나도 불안하다. 아마 그런일은 없을것이다. 없어야 한다.
평범한 아줌마.
나.
이것을 놓치면
깊은 바다에 빠져 죽고, 저 어마 어마하게 몰려드는 파도에 산산히 부셔질것 같다.
유리창을 탁탁탁 때리는 빗소리가 내 신경을 탁탁탁 때리며 별의 별 유혹을 내리 쏟는데.
나.
평범한 아줌마는.
밀린 빨래하고. 청소해야지.
내가 할줄 아는 뜨거운 국을 끓여놓고 (즉, 라면.) 남편을 기다려야지. 따뜻한 아내로.
빨리 비가 그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