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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공휴일 어느 날이 낫다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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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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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주운전은 호환마마보다...


BY 프리즘 2001-09-25

그날 밤은 참 밤공기가 상쾌했습니다.

한겨울 코끝이 쨍하도록 추우면서도 기분좋은.. 그런 날 있잖아요?

그런 날이었습니다.

그 기분이 끝까지 갔더라면 더이상 좋을 수 없는 밤이었죠.

약혼식을 20일쯤 앞둔 어느날 저녁에 팔공산이라는 대구의 명소로

동동주를 마시러 갔어요.

분위기? 죽였습니다. 술맛? 안주?

손구락만 빨아도 티-본 스테이크 부럽지않던 시절이었습니다.

파전에 막국수에 동동주까지 배뽕냥하니 걸치고서 회사직원들 통근에

이용되던 16인승 토픽을 몰고 집으로 가는 중이었지요.

그냥 집으로 갈걸 그랬나봐요.

하지만 그게 어디 그렇습니까?

약혼식까지 하려고 맘먹은 두 청춘남녀...헤어지고 싶었겠어요?

뭔가 아쉽고 뭔가 빠진거 같고....

그래서 괜히 음악틀어놓고 무드잡아가며 이쪽 길, 저쪽 골목, 요쪽

막다른 길, 조쪽 으슥한 길(-_-) 방황하고 있었지요.

음악은 쿵쾅대며 그 커다란 16인승 버스의 썰렁한 분위기를 메우고

한잔씩 걸친 우리들의 얼굴은 발그레하니 오르고 있었지요.

초보운전자인 주제에 그 큰차를 몰고 한손은 내손을 잡고, 한손은

운전 딥따잘하는 척 담배까지 빼어물고 공단뒤쪽 한적한 도로를 지나

룰루랄라~ 노래하며 즐거웠죠.




가다보니 파출소가 보이길래 괜히 찔리는 맘에 유턴했어요.

별 생각없이요.

그리곤 다시 그 기분을 즐기며 유유히 드라이브를 하고 있었지요.

조금 가다보니 뒤에서 경찰차가 한대 오더라구요.

친절하게도 깜빡이까지 켜주고 그 추운날 창문을 열고(수동식...

손잡이 돌려 내리는거 있잖아요) 먼저 지나가라고 손까지 흔들었죠.

바쁠거잖아요....범인잡으려면.

근데 별로 바쁘지 않았던지 안지나가더라구요.

그런가부다하고 우린 유유자적 한적한 골목만을 찾아다니며 -_-;;

드라이브를 즐겼지요.

근데 그 토픽이란 차를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절대로 드라이브에

적합한 차가 아니걸랑요.

앞자리에 앉은 우리는 피끓는 청춘의 열기에 신경쓰일거 없었지만,

뒷자리는 휑뎅그리한...백미러가 3미터정도 뒤에 있는...

그런 구조인데다가 엔진소리는 을매나 큰지 골목길을 올라갈때는

클랙션을 따로 누를 필요가 없답니다.

골목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알아서 비키지요....

오호호홋! 울트라캡숑짱으로 좋은 차 아니겠어요?

그런 차를 몰고 한밤중에 드라이브를 했으니 동네사람들 다 깨우려고

작정한 거나 다름아니지요.

거기다 음악소리 또한 장난아니었으니까요.




한참가다보니 뒤에 따라오던 순찰차가 안되겠다 싶었는지 우리 앞에

끽~하고 서더라구요.

왜그런가 싶어 내려봤지요.

허거덕!!경찰아저씨 두분이 한사람은 수갑을 들고, 한사람은 권총을

빼들고 우리들에게로 마구 달려오더라구요.

영문을 모르는 우리는 멍하니 서있다가 순찰차에 짐짝실리듯 태워져

사이렌 소리도 똥꼬발랄하게 파출소로 연행됐지요.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그 파출소의 순찰당번이 막 순찰돌러 나서는

순간 웬 시커먼 봉고차량 한대가 끼익~! 소리도 요란하게 눈앞에서

유턴을 하더래요.

그리곤 이쪽저쪽으로 정신없이 달아나더라나요.

그당시는 봉고차로 여자들을 납치하는 범죄가 기승하던 때라서 경찰

아저씨들은 그런줄 알았고, 비상까지 걸어놓고 우리를 추적했었대요.

우리가 이 골목 저 골목 돌아다니는 내내...뒤에서 스피커로


"3916! 3916! 토픽 3916! 서지않으면 발포한다!"


이딴 방송을 해가며 정차를 강요했지만 우리는 묵묵히 씹고서 우리

끼리의 드라이브를 즐겼던거에요.

까맣게 몰랐다고...술마신거 들킬까봐 모른척하고 다녔다고...

음악소리때문에 서라고 하는 소리 못들었다고...터푸하게 운전한건

아니고 엔진소리가 워낙에 그래서 그렇게 보였을 뿐이라고...

골목으로 다닌건 그냥 다닌거라고.....-__-

아무리 애원하고 나쁜 사람 아니라고 호소를 해도 한시간넘는 동안

웃기지도 않는 추적에 약이 오를대로 오른 경찰님들은 귓등으로도

안듣더라구요.

까딱하면 인신매매범으로까지 몰릴 상황이었어요.




드디어...저의 마지막 비장의 무기를 꺼내야할 필요를 느꼈어요.

연기력이지요.

눈물을 철철~ 흘리기 시작했습니다. 슬픈 생각을 하는거지요.

머...어렵지도 않아요.

낼아침에 술도 덜깬 상태에서 일찌기 출근해야 되는거랑, 저번에

나이트가서 오바하는 바람에 미처 다 못먹고 나온 비싼 안주랑,

친구년이 깨뜨린 곗돈이랑...그 정도만 생각해도 충분히 슬프지요.

눈물을 동반한 호소력짙은 주접은 경상도 사나이들에겐 워낙 약빨이

쌘걸 알거던요.



"흑흑...아저씨 ㅠ.ㅠ 저를 봐서라도 한번만 봐주세요
일주일뒤면 결혼하기로 돼있는데 안그래도 우리집에선 반대했어요.
돈없고 성질드럽구 직장까지 변변찮다구요.
하지만 전 너무 사랑하걸랑요? 이제 모든걸 다 극복하고 겨우겨우
승낙받았는데 오늘 이렇게 되뿐지면 전...흑흑...죽어버릴래요!!
뱃속의 아이는 무슨 죄겠어요? 저사람 이제 마음잡고 여자하나 만나
행복한 가정 꾸리려는데....제발 도와주세요.."

(중간중간...생략)



멀쩡한 공무원 아들래미를 쌩양아치로 만들고, 너무나 좋아하시는

사윗감을 개떡으로 만들고, 키스도 겨우하는 조신한 나 자신마저도

속도위반한 순정파 여인으로 만들고...나중엔 고향까지 팔아대며

눈물연기를 15분정도 펼쳤습니다.

저의 리얼한 연기에 정신이 팔린 이 인간은 하던 딸꾹질도 멈추고서

존경스런 눈으로 보고 있더군요.

한쪽 구석에서 제 얘길 듣던 어떤 분은 슬며시 뒤돌아서 소매끝으로

무언가를 닦기까지...

우리를 잡아왔던 경찰님은 딱하다는 듯이 제 어깨를 두드려주시구요.

그 파출소안에 있던 나머지 피의자님들, 행패부리던 술망나니님들,

아저씨랑 열나게 싸우던 술집 호스테스님....모두가 조용히 제 얘기를

경청하고 있던걸요.




그로부터 30분후...우리는 그 파출소 근처의 포장마차에 앉아 있었어요.

겨울밤의 서정성짙은 눈물연기가 성황리에 끝난 것에 대한 자축연 겸,

하룻밤에 두번이나 음주운전에 걸리겠느냐는 말도 안돼는 배째정신이

우리를 그곳에 앉아 있게 한거지요.

물론, 운전은 안했습니다. 추워디지겠는데 걸어서 집으로 갔습니다.

저도 양심이 조금은 있걸랑요.





요즘이야 이딴 어설픈 연기에 코웃음한방 날리고 바로 조서꾸미겠죠?

음주운전은 전쟁이나 호환마마보다 무섭대요....

잘나신 제 남편은 그후로도 오랫동안, 아니 지금까지 신나게 퍼질러

술먹고 운전한답니다.

모쪼록 죽을라믄 혼자죽도록 기원이나 해야될까요?

새삼 승질이 나서 코골며 자는 웬쑤의 목을 조용히.....아주 살짝

졸라봤어요.

아이~ 스트레스 풀려라~~ 오호호호호호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