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이 새벽에 두 눈이 말똥말똥한 까닭은?
지금은 새벽 4시...
잠꾸러기 우리 부부가 이 새벽에 두 눈이 말똥말똥한 까닭은?
우리 시부모님은 새벽마다 뭔가를 하십니다.
매일 새벽 2:30이면 아무리 깊이 잠이 드셨더라도 어김없이 스르르 깨어나셔서 발자국 소리
도 없이 현관문을 나섰다가 4시가 되면 다시 옷깃 스치는 소리도 내지 않으시고 살며시 들
어오셔서 아침까지 잠깐 눈을 붙이십니다.
결혼 한지 1년 반이 넘은 지금까지도, 무뚝뚝이 신랑은 단지 "새벽마다 하시는 일이 있으셔
서...."라고 끝을 얼버무립니다. 그건 터프가이 시동생도 마찬가지 인데 어쩌다 시부모님 새
벽 일을 이야기 할 때는 혹시 내가 듣기라도 할까 신랑이랑 눈치코치로만 슬금슬금 얘기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부모님도 마찬가지셨어요. 제가 대체 무슨 일을 하시느냐고 여쩌보면 역시나 "응~~그냥 뒷
집 아줌마랑 ..."하시면서 제대로 말씀을 안해주셨죠. 그러니, 저는 시부모님의 새벽 일에 대
해서는 눈치만 볼 뿐, 더 이상 묻지 못하고 그냥 뭔가를 하시는구나...로만 여겼지요.
그렇지만, 시부모님의 그 새벽일은 저한테는 정말이지 야속한 일이었어요.
작년 시부모님 생신때에는 시동생과 돈을 모아 온천을 보내드리기로 했었지요. 처음으로 우
리끼리의 힘으로 부모님을 휴양지로 보내드린다는 것에 우리 셋은 마냥 즐거워서 빠르게 일
을 추진했지요. 우리 셋이 더 들떠서 날짜를 잡고 호텔을 예약하고 여행비를 마련하고 같이
가실 분들을 초대하고........무슨 일이 있어도 꼭 보내드리자고 시동생이랑 철썩같이 약속을
했는데......정작 시부모님은 날짜가 다가오자, 우리의 마음을 산산히 부셔버리시더군요.
"그래, 그래. 가야지. 너희가 보내주는 건데 꼭 가야지. 그런데, 어쩌냐. 아무래도 그 날 새벽
일에 빠질 수가 없구나. 너희들 마음 엄마,아빠가 다 아니까 올해는 갔다 온 걸로 치자. 괜
찮으니까 그냥 식구끼리 식사나 하고 내년에나 한 번 더 생각해보자구나. 알겠지?"
정말이지, 섭섭해서 눈물이 다 날 뻔 했어요.
이 번 여름휴가도 마찬가지예요. 역시 처음으로 식구들이 휴가날짜를 다 맞춰서 1박이라도
계곡물에 발이라도 담갔다 오자고 철썩 같이 약속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시부모님은 날짜 다
되서야 "새벽 일 때문에 우리는 그날 저녁에 올 테니까 너희는 더 놀다가 다음날 오너라."
하시는 겁니다.
정말이지, 대체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하시길래 매번 우리를 섭섭하게 하시는지(아니, 저 혼자
만 몹시 섭섭해 하는 것 같았어요. 신랑과 시동생은 그려려니 하구요) 알다가도 모를 일이
었어요.
........하지만 휴가 기간에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듯 내리쏟아지는 폭우 때문에 아무데도 못
가서 그나마 섭섭함이 가라앉았지요.
그러던 이틀전이었어요. 한참 잠을 자고 있는데 새벽 4시에 신랑이 부시시 일어나더니 옷을
입어요. 모자까지 눌러 쓰길래 어딜 가느냐고 다그쳤더니 "부모님 일하시는데....." 그러더군
요.
혼자 다녀오겠다고 휭 나가더니 잠시 후 들어오더니 "벌써 다 끝나셨나봐. 안 계셔. 너무 늦
게 갔어...내일은 꼭 가서 도와드려야지..." 하더니 잠을 잡니다.
그러더니 다음날 시동생과 또 눈치코치로 같이 갈 약속을 정하더군요. 가뜩이나 시부모님의
새벽 일이 궁금해 미칠 듯한 제가 그걸 놓칠리 없죠.
"나도 같이 가!"
"엥? 잠순이가 어딜 간다고 그래. 일어나지도 못하면서."
"그래요, 힘드니까 형수는 그냥 집에 있어요."
"무슨 소리! 안 자고있다가 따라 갈거니까 둘이만 몰래 갔다가는 밤새도록 소리 빽빽 지르
고 있을테니까 동네망신 안 당할려면 나도 데리고 가욧!"
그게 바로 오늘.
우리는 한 번 잠이 들면 업어가도 모를 판이니까 안 자고 버티려고 밤 10시부터 눈에 힘을
줬고 쏟아지는 잠을 겨우겨우 참아서 드디어 새벽 2시 30분.
시부모님의 비밀장소(?)에 갔습니다!!
비몽사몽으로 그곳에 간 저는 단박에 눈이 번쩍 뜨이고 말았어요.
뭔가 보물이 숨겨져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저의 상상은 온데간데 보이질 않았고, 그곳엔 빗
자루를 들은 아버님과 쓰레기통을 비우고 계신 어머님, 그리고 함께 청소를 하고 계신 뒷집
아주머니 내외분이 계실 뿐이었습니다.
비밀은 풀렸어요.
우리 시부모님이 새벽마다 하시는 일은 바로, '패션몰 분양사무실 청소' 였습니다.
소일거리라도 맡아서 하면 살림에 보탬이 될까하고 시작하신게 벌써 수년째라고 하십니다.
온종일 근무를 하는 사무실 사람들을 피해 일부러 새벽에 청소를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쓰레기통을 비우고 책상, 바닥 청소를 하고 유리를 깨끗이 닦고 화장실 청소까지는 1시간여
남짓 걸렸습니다. 1.2층 사무실을 네 분이서 매일같이 그렇게 청소를 하셨던 겁니다.
저는 그 새벽, 아니, 모두가 잠에 곯아떨어진 그 깊은 밤 중에 청소복장을 하시고 구석구석
빗자루질을 하고 계신 시부모님을 보자 그만 울컥 목이 메어버렸습니다. 그 동안 집에서 연
습장 하라고 주시던 이면지도 여기에서 추려내신 거라는 말씀에 저는 하마트면 눈물을 쏟
을 뻔 했습니다.
혹여 자식들이 걱정이라도 할까봐 자세히 말씀도 안 해주시고 티나지 않게 일을 하셨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고 나니 그 동안 섭섭하게만 생각했던 제가 참 부끄럽기만 했습니다.
제가 힘들지 않으시냐니까 "운동삼아 하는 건데, 뭘..." 하시던 말씀도 제겐 부끄러운 가르침
일 뿐이었습니다.
시부모님은 내색은 하지 않으셨지만, 꿈 속을 헤매고 있어야할 자식들이 소리도 없이 나타
난 것을 보고 몹시도 감동하신 것 같았습니다. 연신 뭐하러 왔냐고 꾸중을 하시긴 했지만,
결코 꾸중이 아니라 고맙다는 말씀이라는 것을 우리는 다 알아채렸습니다.
집에 오니 4시.
신랑과 저는 서로 말은 안했지만 한참이나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습니다.
부모님을 도와 드리고 왔다는 것에 대한 뿌듯함과 온통 잠들어 있는 것 들 틈에서 우리 부
모님은 깨어서 부지런히 움직이고 계시다는 자랑스러움이 바로 잠꾸러기 우리 부부를 이 시
간까지 두 눈 말똥말똥 하게 한 이유입니다.
..........
앗! 벌써 동이 텄습니다.
이제 조금 졸립네요.
신랑도 어느새 잠이 들었어요.
오늘, 우리 부부와 시동생, 그리고 시부모님은 모두 같은 꿈을 꿀 것 만 같습니다.
꿈 속에서 시부모님을 만나면 꼭 말씀드리겠어요.
시부모님이 자랑스럽다고요....
2001. 8. 1 새벽에
- 언제나 젊은 우리들에게 백 번 말보다 더 진한 가르침을 주시는 시부모님께 존경의 말씀
을 드리고 싶은 꼬마주부였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