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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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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 맞은 이야기.


BY 자두 2001-07-30

오늘은 벌써 며칠째 내리는 비로 온 몸이 늘어지고 기분도 꿀꿀하여 빈대떡이나 부쳐먹으려고 호박사러 슈퍼에 가다 동네 아줌씨가 아덜을 패고 있는 장면을 목격하고 나의 옛날 뚜드러 맞은 기억이 새록 떠올라 팬을 들었습니다.

제가 뚜드러 맞았다고는 하나 울 부모님이 아동학대 폭력 부모는 아니였던 관계로 나의 뚜드러 맞은 기억은 단 2회에 불과하여 화려한 경험담을 쓸 수 없음을 양해바랍니다.

첫 번째 뚜드러 맞은 기억은 '유치원 탈출과 날아온 나무둥치'입니다.

내가 일곱 살때 우리 집안 역사상 처음으로 공립유치원 뺑뺑이 돌리기에 불운하게 합격하여 남덜 다 안가는 유치원에 입학하게 되었다. 공립유치원은 원비가 거의 없고 시설이 좋은 관계로 그때만해도 경쟁률이 엄청나게 높았건만 하늘도 무심하여 첫째언니, 둘째언니도 모두 피해간 그 뺑뺑이 돌리기에 내가 덜컥 붙어버린 것이다.

엄마손에 이끌려 유치원에 도착한 첫날, 우스꽝스런 모습으로 둥글게 원을 그리며 노래를 하고 자기 이름이 불리면 유치원 선생님께 '네~~ 누구누구입니다.'를 손들고 외쳐야 한다니 나에게는 정말 생지옥이 따로 없었다. 유치원도 싫고 그런 유치한 짓거리를 왜 하는지도 도저히 알 수 없었던 나는 내가 대답해야 하는 차례가 오자 두말도 않고 유치원을 뛰쳐나가 도망치기 시작했다.
울 엄마 무지 당황하고 기가 막혀 나를 막 쫓아 오시는데 한 달리기 하는 나를 어떻게 붙잡을 수 있으랴! 단숨에 집까지 도착한 나는 엄마에게 붙잡히지 않으려고 요리조리 피하며 유치원에 안간다고 울고불고 소리치는 수 밖에 없었다.

그러기를 두어시간 했을까? 점심드시러 집에 오신 아부지가 이 현장을 목격하시고 나를 붙잡는데 합세하셨다. 나는 붙잡히지 않으려고 뒤를 돌아보며 열나 달리다가 앞에 있는 나무둥치를 못 보고 그대로 부딪쳐 코피가 쪼르르 흐르는 상태로 아부지의 손아귀에 놓이고 말았다.

그런데 울 아부지.... 어려서 학교다니기 싫다고 매일같이 땡땡이 치다 결국은 고등학교 중퇴라는 전력이 있던터라 자식이 유치원도 안다니고 가방끈을 놓을까봐 과도하게 신경과민이 되셔서 이따시만한 몽둥이를 들고 내입에서 '유치원 갈께요.'라는 말이 나올때까지 뚜드러 팼으니 나는 별 잘못도 없이 아버지의 뼈아픈 과거 때문에 열라 맞은 케이스가 되었다.

그러면서 그 어린 나이에 다짐한 것이 있었으니 만약 내가 자식을 낳으면 절대로 유치원은 보내지 않겠다는 거였다. 어쨌든 나는 동네 아덜도 없고, 다 이상한 애덜만 있는 유치원에 알록달록 삐애로 같은 원복을 입고 정말 적성에 맞지 않는 유치원을 다니느라 거의 악몽같은 일년을 보냈지만 학교에 가서는 고등학교까지 12년 개근에 땡땡이 한번 안치고. 공부도 잘 했으니 만약 유치원 가기 싫어하는 자식을 둔 부모가 있다면 뚜드러 패지 말기를 바란다.

두 번째 맞은 기억은 '그넘의 오백원 때문에'다.
우리집안 사형제중 막내인 동생은 혼자 고추달고 나와 어려서부터 아부지 친구분들이나 친척분들이 오시면 혼자서만 용돈을 받는 적이 많았다. 돈지 뭔지도 모르는 여섯 살 어린넘한테 오백원짜리 지폐를 주시는 분도 계셨으니 그리 큰 돈을 지가 어따 쓰겠는가? 방바닥에 버리는 수 밖에.

그래서 버려진 오백원을 내가 살짝 집어 들고, 이건 주운 돈이지 절대 훔친돈이 아니다!! 나름대로 좀 찔리는 마음을 정리하고 놀이터로 향했다. 딴에는 오백원의 증거를 없앤다고 나의 어린 맘에도 이 오백원을 다 쓰고 집에 들어가야 겠다는 일념에 온 동네 아덜에게 온갖 불량식품을 사주고 나도 쓸만큼 썼건만 어찌된 일인지 밤이 이슥하도록 사백원도 채 쓰지 못하고 아직도 놀이터를 배회하고 있었다.

이때 나를 찾으러 오신 부모님께 붙들려 집앞까지 이르러 내가 떠올린 생각은 '집에 들어가면 맞는다.' 였으니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집에 안들어 간다고 울고불고 생쇼를 쳤다.

그러니 열받은 울아부지 신고계시던 슬리퍼를 벗어들고 내 엉덩이를 치기 시작하셨는데, 고집세고 무식했던 나는 도망칠 생각도 없이 근 삼십분을 그렇게 맞았다. 보다못한 엄마가 나를 끌고 들어가 재워주셨는데, 엄마도 내 엉덩이를 살펴보시고 거의 뻘거시름 그 자체인 것을 보자 같이 눈물을 흘리셨던 걸로 기억한다.

그 이후 나는 정말 한동안 돈에 염증을 느껴 돈이라면 돌보듯하였으니 길거리 떨어져 있는 동전이 눈에 띄어도 줍지 않았을 정도이다.

이 두 번의 뚜드러 맞은 기억 때문에 나는 필요할 때는 아를 한번 되게 팰 필요는 있으나 아가 왜 그런행동을 했는가는 꼭 살펴보고 아도 이해를 시키고 패야 한다는 소신을 갖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한마디하면 그래도 뚜드러 맞은 일 때문에 아부지한테 유감은 없다. 다음에는 울 형제덜 맞은 이야기나 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