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얼마 전까지 그렇게도 기다리던 비였다.
그러나 장마가 시작되면 늘 피해를 보시는 분들은 올해도 똑같은 일
을 당하실까봐 걱정 하시는 이야기도 들었다.
비가 내리지만 약속이 있어서 11시 쯤에 집을 나섰다.
지하철역 가까운데서 만나기로 했기에 운전하지 않고 갈수가 있었다.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탔는데 옆에 앉은 분이 우리동네에서 함께
버스를 탔는데 공교롭게도 함께 앉게 되어서 이야기를 나눌수 있었다.
아까 버스도 함께 탔지요?
네 , 이사온지 일년쯤 되는데 아는 사람도 없고 심심해요.
그녀는 언뜻 보아 오십대 인것 같아서 초면인데도 말이 잘 통했다.
나는 강남구청에서 내려야 된다고 하니까 그녀는 강남역까지 가야
하니까 건대역에서 갈아 타야 된다고 하며 내리기 직전에 자신의
전화 번호를 적어주었다.
내가 사는 아파트와는 길 하나 사이였다.
남녀가 첫눈에 반해 서로 전화번호를 준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내가
잠시 만난 사람에게서 전화 번호를 받기는 처음이였다.
나는 약속한 친구와 만나서 점심을 먹고 친구집에 갔다.
새로 집을 사서 이사한 친구는 결혼후 이때까지 주택에서 살다가
처음으로 아파트 생활을 하게 됐다고 그 편리함에 좋아 하고 있었다.
더구나 77평인데 실평수는 오십평남짓인 고급 빌라였다.
가구도 자신이 모은 비자금을 풀어서 집에 어울리게 배치하고 내심
만족하고 있었다.
벽에 걸린 보리 그림이 조금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사람은
취향이 다르니까 입밖에 내지는 않았다.
비싼 가구에 조용한 아파트는 친구가 오래된 주택에 살면서 불편해
하던것을 일시에 보상해 준듯 싶었다.
사글세 시절부터 열심히 일을한 댓가라고 몇번이나 설명을 했다.
뿌린데로 거둔다는 말을 다시 한번 느끼게 했다.
다섯시에 집으로 돌아 왔다.
그리고 다음날 전화번호를 준 생각이 나서 전화를 걸었다.
내가 친구집에 간 이야기를 하고 그녀는 그녀의 친구를 만난 이야기를
풀어 놓았다.
강남의 모 부동산에서 근무 한다는 그녀의 친구는 전남의 모처의
땅을 매입 하라며 그녀를 불렀다고 하는데 왕년에 같은 직장에서
근무한 적이 있어서 마음을 놓고 투자를 할려고 한다는것이였다.
도청을 옮기면 지금보다 열배나 땅값이 뛸테니까 너는 이제 기다리기
만 하면 된다고 잔뜩 바람을 넣은것 같았다.
한평에 십만원 하는땅을 천오백을 투자 해서 백오십평을 산다는 것이
였다.
마침 자신이 남편 몰래 모은돈이 있는데 그 돈으로 투자를 한다고
긴 설명을 했다.
계약금으로 백오십을 빨리 온라인으로 입금을 하라고 해서 곧 은행으
로 간다고 했다.
나는 잠시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 땅주인도 만나지 않고 부동산 말만
듣고 어떻게 돈을 입금하냐고 물으니 ,먼저 계약금을 입금하면 다음
주에 비행기로 현지를 방문한다는 것이였다.
그리고 덧붙이기를 자신도 고민을 했지만 장영자도 땅을 살때는
남들이 거들떠 보지 않을때 미리 샀기 때문에 돈을 벌수가 있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물론 요즘 은행 금리도 신통치 않은데 나 자신도 열배로 불릴수 있다
는데 솔깃 하기도 했지만 금방 믿을수 없다는 판단을 마음속으로
하고 있었다.
있어도 살고 없어도 사는 돈이니까 투자를 한다고 하는 믿음에는
흔들림이 없는것 같아서 더 이상 말을 할수는 없었다.
그후에는 바빠서 전화를 해 보지 못했다.
친정 어머니 제사에 다녀 온뒤 생각이 나서 어제 오후 전화를 걸어
보았다.
계약금을 지불한뒤 왠지 미심쩍어서 현장에 있는 부동산에 연결해서
전화를 해 보니 서울 부동산과는 말도 안되게 헐값이라서 부동산에
근무 하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서 너를 믿고 했으니 계약금을 환불
하던가 아니면 현지 시세대로 해 주던가 하라고 서로 언성을 높인
모양이었다.
아직도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현실인 것이다.
그녀는 친구도 못 믿을 세상이라며 일이 잘 수습되면 자세히 알려
주겠노라고 했다.
나는 원래 일확 천금이나 이자를 많이 주겠다는 사람을 좋아 하지
않는다.
우직 하게 은행만을 믿고 있을뿐이다.
요즘은 은행원 말도 전적으로 믿지 않고 판단은 언제나 스스로의 책임
이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다.
우연히 만나 친구가 된 그녀가 어렵게 모은 비자금을 다 투자 하기전
에 잘못된것을 알게 되어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 한다.
길이 아니면 가지 말아야 하며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한다는 말이
새삼스럽게 떠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