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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치지 못하는 편지 2>


BY 금빛 누리 2001-06-20


부질없는짓인줄 알면서 나는 또 오늘 몇송이의 종이꽃을 만들었습니다.
늘 그러하지요.이제 다시는 만들지 않으리라 작정해 놓고는
혼자 있는 시간이면 습관처럼 재료 바구니를 끌어당겨 가위질을하고
철사에 초록 테이프를 감고 , 마치 이 세상에 종이꽃을 만들기 위해 태어난 여자처럼
그렇게 필사적으로 손을 놀립니다. 아까 잠시 낮잠이 들었습니다.
잠속에서 종이꽃들이 싱싱하고 순결한 생명체로 온 집안을 가득히 메우고 있었습니다.
장미, 팬지, 해바라기, 나팔꽃, 다알리아, 카네이션등 참으로 여러 종류의 꽃들이
저마다의 빛깔과 향기를 내뿜으며 속삭이고, 표정을 바꾸고 잎사귀를 흔들며
손짓했습니다.깔깔거리며 웃기도 했지요.
그러다 한 순간 그것들은 다시 무생물 종이꽃으로 되돌아 갔습니다.
그렇습니다. 종이꽃이 아무리 꿈꾼다한들 아침 이슬 머금고 피어난 한송이 장미,
또는 팬지꽃이 될 수는 없는것입니다. 부질없는일---- 나는 다시 꽃 재료바구니를
밀어내고 당신께 편지를 씁니다.내가 왜 당신께 편지를 써야하는지 그건 나 자신도
잘 모르겠습니다.굳이 수취인이 당신이 아니어도 좋을테이지요. 그냥 누구에겐가
편지를 쓴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조금 평화로워지고 그리고 적당히 슬퍼집니다.
나는 그저 많이도 말고 조금만 슬펐으면 좋겠습니다.누군가를 생각하면서
적당히 슬플 수 있다는것은 어쩌면 행복인지도 모릅니다.

해병대에 입대한 오빠가 첫 휴가를 나왔을 때 그는 참 근사한 남자로 변해 있었습니다.
적당히 그을린 구리빛 살결과 짧은 머리카락.안그래도 부리부리한 눈이
더욱 강렬한 눈빛을 내뿜었습니다. 아직 단발머리 여고생이었던 나는 그러한 멋진
오빠와 함께 거리를 걷는다는것이 아주 즐거웠습니다.
한가지 마음에 걸렸던것은 오빠가 대학 진학을 포기 했었다는 것이었지요.
우리는 만나면 그저 기쁘고 헤어지면 보고싶은 참 다정한 오누이였습니다.
내가 힘들거나 슬플 때 위로해주고 힘이되어주고 따뜻한 눈빛과 가슴으로
손잡아주는, 그는 나에게 참 좋은 오빠였습니다.
여고를 졸업하고 나는 그 도시의 우체국에 임시 직원으로 근무했습니다.
임시 직원이하는 일이야 우표를 팔고 등기물이나 소포를 접수받는 일이었지요.
봄 내내 뿌우연 흙바람이 신작로를 하릴없이 쓸고가는 도시.
매일매일 되풀이되는 우체국 창구의 단조로움.
하품이 났고, 눈물이 났고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회의에 갓 스물 내 젊음은
상처 입은 새처럼 날개를 파닥이며 남루한 둥지를 떠나 비상하고 싶었습니다.
그 즈음 주량이 부쩍 늘어난 어머니의 주정,팔자 타령과 잔소리에 몸서리가 나서
하루에 열두번도 더 어디론가 먼곳으로 도망가고 싶었습니다.
늦은밤 이불을 머리 꼭대기까지 뒤집어 쓰고 누워 듣는 어머니의 노래 소리는
심장을 후벼파다 못해 갈가리 찢어발겨 어둠자락 한켠에 절망으로 널어 놓았습니다
나는 오빠에게 편지를 ?㎧윱求?오빠, 제발 날 좀 구해줘요.질식해 죽을것만 같아요.
조금만 기다려줘. 제대가 얼마 안남았잖아. 제대하면 너를 네 원하는곳으로
데려다줄께. 너를 행복하고 자유롭게 해줄께.
그렇게 한 해가 저물었을 때 나는 한 남자를 만났습니다.
사랑이란 단 한번의 우연한 만남만으로도 가능하다는것을 나는 알게되었습니다.
그는 약간 마른 몸매에 깊은 눈매를 가진 내 꿈속의 왕자였습니다.
사랑은 한순간에 세상을 바꾸어 주더군요.밤마다 어둠속에 절망으로 펄럭이던 삶이
발그레하게 분홍빛으로 물들어 눈부시게 나를 적시기 시작했지요.
오빠가 제대를하고 어느날 내 앞에 나타났습니다.나는 물론 기뻣지요.
그러나 그 기쁨도 잠시, 오빠의 존재가 거추장스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오빠는 군복무 시절 상관의 알선으로 도청 소재지의 중소 기업에 일자리를 구했지요.
오빠는 주말마다 나를 만나러 왔지만 나는 사랑하는 그 남자와의 행복한 시간을
위하여 매정하게 오빠를 돌려 보냈습니다.
오빠와 함께하는 시간보다도 그 남자와 함께하는 시간이 나에겐 훨씬 더
소중했고 행복했으니요.

어느새 해가 설핏하니 기울었군요.이제 이 편지를 마무리해야겠습니다.
그리고 한잔의 커피를 진하게 타서 마시고 저녘 찬거리를 사러 슈퍼에 가야겠어요.
내가 그 남자와 결혼한다고 했을 때 오빠는 아주 담담한 얼굴이었습니다.
" 그래....." 알겠다는듯 두어번 고개를 끄덕이곤 더 이상 아무말없이
오빠는 돌아서 갔습니다.그것이 오빠의 마지막 모습 이었습니다.
나는 결혼했고 신혼의 달콤함에 젖어 오빠를 잊었지요.
오빠도 예전처럼 나를 찾아오거나 소식을 전해오지 않았습니다
주위 사람들을 통해 오빠의 소식을 더러 듣기도 했지만 오빠를 만나러
도청 소재지까지의 먼길을 갈 생각은 없었습니다.
나는 오빠가 왜 죽는 그 순간에 우리의 어릴적 사진을 손에 쥐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오빠의 죽음은 분명 빗길 과속으로인한 사고사인데요.
모르겠습니다 오빠는 나를 누이로서가 아니라 이성으로서 사랑했던걸까요?
나는 이제 두 아이의 엄마입니다 큰애는 올해 중학교에 들어갔지요.
아이들을 이 만큼 키워놓고보니 참 한가해져서 심심풀이로 종이꽃 만들기를
시작했는데요 이상하게도 종이꽃을 만들다보면 어렸을적 오빠가 꺽어다
주었던 들꽃이 떠오르는거예요.
이 편지 읽느라고 지루하셨지요? 답장은 해주시지 않아도 좋습니다.
다만 이 편지를 읽어주는것만으로도 나는 당신께 감사하니까요.
안녕히 게십시요. 당신의 하루하루가 늘 편안하고 행복하길 바랍니다.

< 나는 편지지를 반뜻하게 접어 봉투에 넣었다.그리고 도박또박 겉봉에 주소를 썼다.

00시 00동 146번지 00 아파트 106동 701호 이 명애귀하.
----- 내 이름은 이명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