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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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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치지 못하는 편지 1>


BY 금빛 누리 2001-06-20

주홍색 주름 종이를 1.5cm 넓이로 길게 잘라 철사끝에
접착풀을 살짝 묻힌다음 도르르 감아 가운데를 손가락으로 적당히 눌러
오목하게 들어가게 한 다음 아랫 부분을 가느다란 철사로 묶어 고정 시키고
초록색 테프로 아랫 부분과 줄기를 감아주고 잎을 붙입니다.
그런 다음 꽃의 가장자리를 둥글여가며 엄지 손가락으로 적당히 눌러주면
작고 예쁜 한 송이 꽃이 만들어 지지요.
그래요. 나는 매일 이렇게 몇 송이의 종이꽃을 만들지요.
오늘도 햇살이 참 넉넉한 거실에서 다섯송이째의 종이꽃을 만들다
문득 이 또한 부질없음에 그만 손을 놓아 버렸지요.
종이꽃은 결코 진짜꽃이 될 수 없습니다.살아 숨쉬지 못하고 향기도 없는
하나의 정물, 단지 외로운 정물일 따름 입니다.처음의 그 선명하던 주홍빛은
날이 갈 수록 퇴색해져서 본래의 빛깔을 알아보기 어렵게 희끄므래해질 것입니다.
그러면 나는 미련없이 쓰레기통에 던져 넣겠지요.
그래,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입니다.아직은 좀더 꼿아두어도 되지않을까하는
약간의 망설임 끝에 말입니다.차 한잔을 마시기위해 찻물을 가스불 위에 올려 놓고
하릴없이 주방을 서성거리다 나는 당신에게 편지를 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누구에게라도 참 오랫 동안 편지를 쓰지 않았습니다.
전화라는 문명의 이기는 우리를 편지로 부터 단절 시켰습니다.
그러나 나는 당신께 편지를 쓰려 합니다.나는 당신의 전화번호를 모릅니다.
설혹 전화번호를 알고있다해도 결코 전화를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전화로 이야기하는것과 편지 쓰기는 다릅니다.
편지는 ?㎢鳴?찢어 버리거나 부치지 않을 수도 있으니요.
찻물이 숭숭 소리내며 맹렬하게 끓어 오릅니다. 우선 커피 한 잔을 마셔야겠습니다.
아주 진하게,진저리나도록 진하게 타서 가슴 저리게 마시렵니다.

오늘처럼 햇살이 넉넉하고 따습게 넓직한 마당 가득 찰랑거리는 늦은 봄.
오빠와 나는 중학교 2학년짜리 남자애와 초등학교 4학년짜리 여자애로 만났습니다.
"이제부터 너희들은 남매다. 사이좋게 지내야한다. 알겠지?"
의부의 말에 얼굴에 여드름꽃이 만발한 오빠는 뒷통수를 긁적이며 멋적게
씨익 웃었습니다.나는 애써 새침한 표정을 지었지만 속으로 배시시
웃음을 깨물었습니다. 왜냐면 오빠의 웃음이 아주 마음에 들었거든요.
오빠와 나는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남매로 5년을 한 지붕 밑에서 살았습니다.
어머니의 재혼은 그리 평탄치 못했습니다.의부는 음주벽이 있었고
취해 귀가한 날이면 어김없이 어머니에게 폭언과 손찌검을 했습니다.
부부 싸움으로 집안이 시끄러운 밤이면 의부에게 &#51922;겨난 오빠와 나는
마당 한구석에 나란히 쪼그리고 앉아 아득한 밤 하늘에 눈물 방울로 맺혀있는
별을 헤었습니다.집안에서 들려오는 고함 소리에 겁먹은 내가 훌쩍거리면
오빠는 내 등을 토닥여주며 아주 어른스레 말했지요.
"울지마.어른들은 원래 저렇게 싸우면서 사는거야."
"어른이되면 아빠 엄마처럼 싸워야해? 오빠와 나두? 난 그럼 어른 안될거야!."
"걱정마.우린 안싸울거야.우린 아주 사이좋게 살거야.그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어른이 되어도 오빠랑은 절대로 싸우지 않고 살리라
다짐했습니다.재혼 3년만에 의부는 위암 말기 판정을 받았고 2년여의 투병 끝에
사망했습니다.
"첫 서방복 없는년이 두번째 서방복두 없다더만...."
어머니는 유산을 처분하여 오빠 몫을 떼어주고 호적을 정리 했습니다.
" 엄마, 오빠랑 같이 살면 안돼?"
" 내가 왜 생판 남인 그녀석까지 델구 살아야하니? 즈그 고모가
댈구 있기루했다."

편지가 너무 길어 지는군요.그러나 조금만 더 읽어 주십시요.
오빠의 죽음은 사고사로 처리되었습니다. 심야에 비 내리는 고속도로를
달리다 중앙 분리대를 들여받아 현장에서 숨졌습니다.
내가 오빠의 사망 소식을 들은것은 장례가 치루어진지 며칠이 지난후였습니다.
첫 아이를 임신해 만삭에 가까운 무거운 몸으로 오빠의 고모를 만났을 때
그분은 군데군데 희미하게 핏자국이 베인 한장의 사진을 내밀었습니다.
" 그놈이 죽는 순간에도 손에서 놓지 않았던 사진이다."
넝쿨 장미가 줄기줄기 뻗은 담장을 배경으로 까까머리 오빠와 단발머리의 여자애가
햇살이 눈부셔 가느다란 실눈으로 웃고 있었습니다.
어른이 되어도 싸우지 않고 살자고 약속했던 오빠와 내가 조금은 멋쩍고
수줍은듯 웃고 있었습니다.
아, 이야기가 너무 앞으로 나갔군요.좀더 차분하게 쓰지 못함을 이해하십시요.
오빠의 고모네집은 이 도시에서 시외 버스로 한 시간 거리의 읍 소재지였습니다.
어느 토요일 수업을 마치고 교문을 나서는데 뜻밖에도 교복 차림의 오빠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지요.
" 너 만나려고 조퇴하구 왔어."
오빠는 멋적은듯 또 그렇게 씨익 웃었습니다.
오빠가 해병대에 자원 입대 할 때까지 나는 늘 내 주위에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그의 존재를 의식했습니다.
약속으로, 때로는 우연으로( 그러나 결코 우연이 아니었음을 오빠의 죽음후에야
깨달았습니다.)우리는 만났습니다.분식집에서 찐빵이나 라면을 먹으며
친구 이야기, 학교 이야기로 조잘거리는 나를 오빠는그저 씽긋이 웃음 띈 얼굴로
바라보았습니다.가끔 나는 나를 바라보는 오빠의 두눈에 어떤 아련함이
어리는것을 보았지요.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슬픔 같기도 햇습니다.
오늘은 이만 쓰렵니다.눈에 자꾸 무언가 고이는군요.
이것이 눈물이라고 말하진 않겠습니다.참! 내가 이 편지를 당신께 부칠것인지,
부친다면 언제 부칠것인지 모르겠습니다.아니,어쩌면 영영 부치지 않을지도
모르겠어요. 왜냐면 나는 당신 주소를 모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