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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시골 사람들은..


BY 심향 2001-05-15

바야흐로 봄은 가둬 논 저수지 수문을 타고 사방으로 퍼져 나간다.
이미 농번기는 시작이 됐고
장성한 자식은 도회지로 나가고 연로 하신 노인들이 구슬땀을 흘리며모내기에 한창이다.

몇해전인가, 아저씨가 술에 잔뜩 취해 어이없게도 논두렁에 빠져 숨진채 발견된
산모퉁이 사는 술집아줌마는 혼자서 손녀딸 키우며 살고,
부부금실 좋기로 소문난 우리 작은집은 작은 아버지께서 교통사고로 돌아가시자
작은 엄마가 혼기를 놓친 막내 삼촌과 쓸쓸하게 살아 가신다.
젊은 부부가 잠시 세 들어 사는 작은집 옆집은 언제 이사갈지 모르고,
다부룩이 딸들만 내리 낳다가 막내로 아들을 쑥 낳자 기세등등했던 옛날 이장님댁도 부부가 단촐하게 살아간다.
그리고 우리집에서 바라보이는 끝집은
할아버지 할머니 모시고 살아가는 대가족의 전형을 보는듯 하더니
노인분들 돌아가시자 문안 차 무시로 드나들던 일가 친척들 발길이 뚝 끊겨 적적해진지 오래 되었고.
떠벌이 수다쟁이 아줌마도 교통사고로 남편을 잃자 금방 재혼할줄 알았더니 혼자서 억척스럽게 잘도 살아간다.
우리 동네를 길게 가로지르는 행길은 옛날 경부고속도로가 생기기 전에는
남북을 관통한 서울을 가는 국도였다.
동족끼리 총부리를 겨눈 6.25전쟁.
참혹한 격전지 였던 사석 잣고개는 무명 용사들의 영혼을 달래는 참전용사비가 세워져 오며 가며 추모의 념을 일깨운다.
요즈음 나라에서 고갯마루 어딘가에 매장되어 있을 국군장병의 유해 발굴작업이 한창이다.
그 치열했던 와중에,
할아버지가 납치되어 청상으로 살아오신 할머니들도 동네에 몇분 계시는데
우리집과 당내간인 할머니도 옆집에서 외유내강의 전형을 보여 주시며 오늘도 호미자루 들고 들판을 해메고 다니신다.

평일이면 잠잠했던 시골 동네도 일요일이면 도시로 나간 자식들이 일손 돕느라 모여 들고
삼삼오오 손을 잡고 논두렁 길을 헤집고 다니는 손자손녀의 시끌벅적한 소리들은 물 오른 들판에 한결 활기를 더해준다.
훗날 고향으로 돌아와 할아버지 뒤를 이어 농부의 길로 들어서는 아이도 개중에 몇은 분명히 있을 것이고.
한유했던 집집마다 할머니들은,
모처럼 복작거리는 손자들 등쌀에 정신이 없다고 손사래 치지만
만면에 번지는 희색은 검게 그을린 주름진 얼굴에 보기좋게 어우러지고 만다.
가난한 살림에 뼈 빠지게 농사지어 자식들 고등교육까지 시킨 동네 어르신들.
너희들만큼은 흙투성이 농삿군 되지말고 넓은데로 나가 깨끗하게 사람답게(?) 살아라.
모두 모두 내보내고 허허롭게 살아가고 계신다.

우리할머니도 그러셨다.
내가 시집온지 1년쯤 우리 어머님 미국으로 떠나시자.
셋째 삼촌과 농사를 지으시며 큰집을 지키고 계셨다.
종갓집 맏이인 남편은 시내에서 가계를 한다는 핑계로 어쩌다 한번씩 들여다보곤 했고
나는 제삿날이나 되야 애기 들쳐 업고 꺼덕꺼덕 기어 들어갔으니
우리 할머니 마음이 얼마나 허망했을까.
그렇게 몇 개월을 지나 농사짓던 삼촌도 취직이 되어 시골을 떠나고 할머니 혼자 남으셨다.
얼마든지 출.퇴근 할 수 있는거리,
남편과 상의하여 이삿짐 싸 가지고 시골로 들어가던날.
"혼자 살을란다. 나혼자 살을란다.
늙은이 걱정일랑 말고 너희들이나 편하게 살아라."
극구 말리시던 할머니의 두눈엔 눈물이 주르르 흘러 내리셨다.
내심을 깊이 숨기시고 강한 듯 꼿꼿한 듯
약한 모습은 보이지 않고 살아 가시는 시골 어르신들.
부모님 살아생전 부지런히 드나들어야
훗날 가슴치는 회한은 남지 않을런지..
당돌하게도 나는,
오래 전에 돌아가신 할머님을 떠올릴 때면
당신앞에 오로지 떳떳한 손주 며느리였음을 자부하며 살아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