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이산화탄소 포집 공장 메머드 가동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630

50년대 우리들 국민학교시절..


BY jerone나나 2001-05-15

우리들 국민학교 시절에는

학교종이 땡땡쳤다
두 번 치고 한번 쉬고 한번 치면 수업시작 시간인가..? 잊어묵었다
세 번 치고 한번 쉬고 한번 치면 수업마친 시간인가.. 암튼 그랬다
땡땡 땡은 수업시작이고 땡땡땡 땡은 수업마치는 시간이다
교무실 앞에 종을 매달아놓고 추에다 끈을 길게 늘여 줄을 잡아당기면 땡소리가 났다
언젠가 장난으로 줄을 잡아댕겨본적도있다

'학교종이 땡땡땡 어서 모이자~' 노래를 불렀다
전교생 조회시간에는 국민의례를 했고 애국가를 불렀다
그때는 운동장으로 풍금을 날라 내오고 들여갔다

음악시간에는 학교당 한 대밖에 없는 풍금을 덩치큰 아이들 서넛이 옮기러 다녔다
이교실 저교실로.. 쉬는시간에 아이들이 들고 날랐다
그래도 선생님이 심부름시키면 정말 기분좋았다
선생님은 화장실에 안가는줄 알았다. 뭐든지 다 아는줄 알았다.

미술시간에는 크레용으로 색칠을 하는데 그시절 무지개크래용은 색깔은 나지만 희미하게 난다. 그래서 아이들이 그린 그림마다 색깔이 희미하고 연했다. 크레파스란 색이 짙고 선명한 한단계높은 것이 있었지만 값이 비싸서 갖고 다니는 아이들은 특수층이였다

체육시간에는 운동장에 나가서 국민체조를 했다
운동회 때는 보물찾기. 덤블링을했고 동네유지들이 본부석에 앉아 관람을했다
장애물경기도 했다

지우개도 부잣집 아이들은 가져다녔지만
그냥 보통으로 사는 우리네는 손가락 끝에 침을 무쳐 잘못쓴 글자를 지웠다
요즘같이 좋은 종이로 공책을 만들었으면 침묻혀도 종이가 찢어지진 않겠지만
그때 우리공책은 요즘 신문지 갱지에 해당한다
침묻혀서 지우면 금방 찢어진다. 그래도 우리는 침묻혀 지우다 구멍 뚫어진 공책으로 공부를 했고, 잘못쓰지 않으려고 한자한자 또박또박 잘 써야만했다
학년이 바뀌어 공책을 새로 사야할때는 지난 공책을 찢어 실로 꿰어 공책을 새로 만들었다
몽당연필을 칼로 깍아썼다. 칼을 갖고 다니는 아이한테서 빌려서 깎는다
볼팬자루에다 몽당연필을 다듬어 끼워썼다. 연필 끝에 조그만 지우개가 붙어있는 것도 있지만 지우개 달린 연필은 비싸다
나무필통을 쓰는데 잘 깎은 연필심이 부셔지기 때문에 연필끝자락에 연필뚜껑을 씌우든지 신문지로 싸든지 필통 머릿부분에 솜이나 신문지를 말아서 끼워 다녔다

'불조심', '쥐잡기실시기간'이란 빨갛게 쓴 천조각을 명찰 위에 달고다녔다. 잊어먹고 안달고 가면 선생님한테 혼난다
파리잡기 숙제를 해가야할 때는 둥그렇고 큰 파리잡기 유리병 속에 빠져죽은 시체를 꺼내서 말려 성냥통에 담아가기도 했다
쥐꼬리 가져오기 숙제라도 내주는 날이면 형제 많은 우리집에는 쥐꼬리전쟁난다
하룻밤에 쥐를 어떻게 열마리 스므마리잡나..
아침에 학교갈때 쥐꼬리 내놓으라고 울고 땡깡이라도 부리는 날이면 언니들이 오징어다리를 물에 불려 아궁이에 넣어 잿더미를 묻혀주기도 했다

일년에 한두번 회충약을 나눠주고 회충이 몇마리 나왔나 세어가기도 숙제다
가끔 회충이 덜죽고 살아서 나오는데...크흐... 간질간질 꼬물꼬물 늦게나와 정말정말 회충도 고생 나도 고생이다.. 아직도 생각하면 간지럽다. 살아서 꼬물꼬물 기어 나오는 것 같다.

비우산도 한집에 한두개 있으면 다행이다
비오는 날은 비닐종이를 두르든지 시멘트부대를 쓰고 다니는 사람도 있었다
난 그냥 집에서 우산차지 못하면 비를 쫄딱 맞고 다녔다
온몸이 다 젖으면 물이 줄줄 흘러서 그렇지 더 이상 젖고자시고 할것도 없었다

책가방이 어디있어 부잣집 아이들이나 하는 소리지
보자기에 책몇권 둘둘 말아 끝부분에 옷핀을 꽂아 허리에 질끈 동여매고 다녔다
남자는 허리에 매고 여자는 한쪽 끝은 어깨, 한쪽은 허리에 걸쳐서 매고다녔다
가끔 천조각으로 가방을 만들어 축축 늘어지는 책가방에 책을 넣고 다녔지만 너무 빨리 떨어진다

가정환경 조사할 때 선생님이 그 집의 문화적 수준을 물어본다
'집에 신문 보는사람~' 하면 신문보는 집 아이들이 손을 든다
한 반에 다섯명도 안된다. 부모님들이 글자를 알아야 신문을 보는것이지..
'집에 라디오 있는사람~' 정말로 희귀했다 몇안된다
'집에 시계있는 사람~' 요것도 문화수준에 속한다
아버지가 글을 아는사람, 학교를 다닌사람, 언니나 오빠가 중학교를 다니는 사람.. 이런 것 모두 그집의 문화수준을 가늠하는 척도였다

방학숙제는 곤충채집. 식물채집을 했다.
여름방학때 곤충채집한다고 나비잡고 매미잡고 잠자리, 매뚜기잡으러 다녔다
애벌래를 잡아 채집통에 핀으로 끼워놓으면 매미가 까나와버리기도 했다
방아깨비 잡아서 '방아찧자 콩닥` 하며 놀고
아이들하고는 실뜨기, 고무줄놀이, 재기차기, 딱지먹기, 푸른하늘 은하수하며 놀았다
옛날이야기는 꼭 할머니한테서 듣고 겨울에는 화롯불에 고구마 구웠다

라디오 연속극을 즐겨들었다. 동네사람들이 라디오 연속극 들으려 우리집에 놀러오기도 했다. 재방송까지 다 듣고 라디오연속극을 외웠다.
학교는 10리씩 걸어다녔다

소풍때는 삶은계란이 간식이고 고구마를 쪄오는 아이들도 있었다
눈깔사탕이 최고의 과자였다. 허기진 배의 에너지원이기도 했다

가슴에는 손수건을 달고 침,코를 닦았다
손수건이 없는 아이도 있었던지 손목보다 길게 늘어져 언제나 몇번씩 접어 입던
윗저고리 소매 끝에는 언제나 뻣뻣하게 번쩍번쩍 빛을 내는 아이도 있었다
그 소매팔뚝으로 코를 훔쳐닦았기 때문이였다

호롱불에 공부했다. 콧구멍이 새까매지는 건 기본이고 가끔 졸다가 앞머리도 태워먹는다
책상은 부잣집에 한집에 하나쯤 있었고 차례가 돌아오지 않으면 밥상을 갖다놓고 쓰던지 주로 가슴에 베개 괴고 엎드려서 숙제를했다
동화책 같은건 모른다. 교과서가 동화책이고 볼꺼리고 유일한 글자인 것이였다. 갖고 놀게없어서 교과서를 달달 외웠다. 교과서는 언니 오빠들이 쓰던거 2년씩 뒀다 물려받아 썼다. 언제나 새것은 없다. 책도 공책도 너덜너덜했다.

봄에는 학교에서 단체로 모내기 일손돕기를 다녔고, 겨울에는 보리밟기를 다녔다. 겨울땔감으로 솔방울을 줏으려 산에다녔다. 물론 학교수업시간을 할애해서 단체로 갔다.
솔방울 마매탄[갈탄]을 때는 교실난로에 도시락을 켜켜로 쌓아놓고 구웠다. 보온도시락 같은건 구경도 못했다.

우리동네 대중목욕탕이 처음 생겨서 설날 전에 한번씩 목욕하러갔다
몸을 잠그는 탕은 하나인데 물통 위에만 벽돌로 칸을 막고 남탕, 여탕을 구분했다
물위로 때가 둥둥 떠다니면 매미채 같은걸로 때를 걷어냈다

여름에는 개울에서 목욕했다. 언니들이 빨래를 모아 머리에 이고 빨래하러 가면 도랑에 따라다니며 목간도하고 돌맹이들어 가재도 잡고. 오다가다 참외밭 지날 때 남의집 참외도 따먹고.. 복숭아밭 지날때는 복숭아도 따먹으면서 다녔다
여름밤에 개울에 가면 온동네사람 다와서 목간한다. 저쪽 위에는 남자들이 목간하고 아랫쪽에는 여자들이 목간한다. 혹시 탕을 잘못찾아들까해 남자들은 연신 험~! 험! 하며 헛기침 을하고 여자들은 수다떠느라 호호까르르해서 남탕여탕을 잘못 들어가는 일은 없다

여름에는 학교에서 집에 오는 길에 두 번쯤 개울에 들어가 멱을 감고온다
도시락을 안싸오는 아이들이 많았다
학교에서 배급우유를 줬고 강냉이죽을 줬다
우리집은 좀 잘사는 축에 들어 우유나 강냉이죽을 한번도 못 얻어먹었다
그 시절에 강냉이죽이 왜 그렇게 먹고싶었던지 지금도 제과점에 가면 옥수수빵만 산다
나는 도시락싸서 학교가서 찐쌀 가져오는 아이들이랑 바꿔먹고는 했다
찐쌀이라고 아이들이 한주먹씩 조그만 주머니에 담아왔는데 간식이며 주식이였다
노란색갈의 쌀인데 먹으면 씹는 맛이 고소하고 뒷맛이 좋다.

검정고무신을 사철 내내 신고다녔다
양말은 한 켤레로 일주일 내내 신고다녔다. 갈아 신을게 없어서 빨기도 전에 뒤꿈치에 구멍이 나기가 일쑤다. 언니들이 전기다마를 넣고 기워줘서 양발보다 더 두꺼운 천을 대고 기운양말을 신었다.
손등 발등이 새까맣고 겨울에는 툭툭 터져 피가 줄줄 흐르기도했다
피는 나오자마자 까맣게 변해 손등에 발등에는 까맣게 응고된 핏자국을 달고다녔다

재래식화장실에는 항아리가 묻혀있고 널빤지를 놓아 발을 올리고 끙아를 했다
항아리속 내용물 위에는 어김없이 하얗게 꿈틀거리는 짐승들이 바글바글 기어다녔다
가득찬 뒷간의 항아리는 농사짖는집 거름으로 쓰니 인기 캡이다. 식구많은 집 항아리는 로비를 해서 미리 예약해놓고 퍼간다
항아리가 넓어 가끔 똥통에 빠지는 아이도 있었다
'에헤~~ 누~구누구는~ 똥똑깐에~~ 빠졌대~요~~' 하고 놀려먹었다
뒤닦는 종이는 시멘트푸대를 손바닥만하게 잘라서 매달아놓는다. 끙아를 하는동안 시멘트푸대 뻣뻣한 종이를 양손으로 비벼 구기는 작업을 해야한다. 보들보들할 때까지..신문지를 매달아 놓은 집은 잘사는 집이다, 신문을 정기 구독하는 집이라 볼수 있으니..
일력(날마다 찢는 달력)을 가끔 화장지 대신으로 쓰는집이 있었는데 부잣집이다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가는 아이들이 적었다
공부를 아무리 잘해도 집안환경이 안따라주면 중학교 학비와 통학비같은거 못대줘서 못갔다
여자들은 웬만해선 중학교에 안보낸다. 가스나덜 집에서 농사나 돕고 부엌일이나 하고 그러다 시집이나 잘가면 된다했다.. 흑흑..
우리는 이렇게 살았다

우리보다 더 나이든 어른들은 우리보고 죤시절이라했다..

요즘이야말로 세상 좋~~타~!


*50대아줌마 '나나'신고합니다
jerone.com.ne.kr '나나의집' 홈페이지를 운영합니다 놀러오세요
아줌마들의 소리를 올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