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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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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널 보낼 수 없다.


BY 통통감자 2000-11-07

> 진이는요?
....
> 방금 머리 컷트하러 갔어요.
.....

그 길던 머리칼이 이젠 잘려나가는가 보구나.
검고 윤기나던 네 머리칼을 얼마나 부러워 했는데, 이렇게 허망하게 잘라내야 하는거니?

요즘와서 부쩍 예뻐진다고, 피부가 뽀얀해 진다고, 비결이 뭐냐고 웃었는데,...
감기가 오래간다고 감기 때문에 모처럼 링거도 맞았다고, 호강했다며 그렇게 웃었는데,...
여기저기 멍이 들어서 맞고사는 여편네 같다며 또 그렇게 웃었는데,...

이게 무슨 일이다니?
네 나이 이제 서른하고 셋.
세 살, 네 살 어린 딸아이를 두고, 지금 너 뭐하고 있는 거니?
두 팔 다들고 잔다고, 만세하고 잔다고 예린이라는 이쁜 이름 놔두고 "만세"라 불렀잖니?
앞 뒤 꼭지 짱구라고 수빈이란 이쁜 이름 놔두고 "따꾸"라 불렀잖니?
"만세"랑 "따꾸"는 엄마 껌이라고 그렇게 안잊히는 두 딸을 놔두고 너 거기서 뭐하는 거니?

진아~
이러지마. 이러면 안돼.
이제사 고생 다 끝나고 새끼교수 딱지 않은 재관씨는 어떡하고, 지금 너 병실에서 뭐하고 있는거니?

불과 일주일전까지 이사가야 한다며 걱정해대던 네가 백혈병이라니, 난 믿을 수 없다.
그럴리 없다.
이건 뭔가 잘못된 일이야.
이건 소설속에나 드라마속에나 있는 일이지, 결코 네게 일어나서는 안되는 일인 것을...
예방 접종조차도 무서워서 맨날 숨어다녔던 네가 온 몸에 바늘투성이가 되서 병실안에 있다니...

넌 내게 살같은 친구인 것을...
사춘기를 함께 보냈고, 연애와 결혼 그리고 아이들까지 함께 지켜봐왔잖니.
난 너의 한 부분이요, 넌 나의 한 부분이었잖니.
내 피를 줄 수만 있다면, 내 골수를 줄 수만 있다면 난 아끼지 않고 주고 싶다.
왜 내 피는 안된다는 건지...

그냥 널 그렇게 바라만 보고 있다는게 너무나 고통스럽다.
애써 담담한 네 목소리를 들으며, 덜덜 떨고있는 내게 오히려 농담을 하는 니 모습이 더 날 슬프게 한다.

곁에 있어주고 싶다.
옆에서 손 꼭 잡고, 등이라도 다독여 주고 싶다.
얼싸안고 함께 통곡하고 싶다.
하지만, 그래서 난 네 병실을 오늘도 가지 못한다.
약한 내 모습에 네 의지가 약해질까봐 갈 수가 없구나.
보고 싶다. 진아.

너 이렇게 가면 난 용서하지 않을거야.
너 이렇게 무책임한 사람이 아니잖아.
<어떻게든 살려내야지요.>
그래. 넌 어떻게든 살아나야 해.
재관씨가 널 놓아주지 않을거고, 내가 발목이라도 붙잡고 못가게 할거니까.
넌 어떻게는 살아줘야 해.

호호할머니가 되어서까지 지긋지긋하게 붙어다니며 늙어가야 한다.
난 주름진 네 모습이 보고 싶다.
백발을 함께 염색하며, 멋쟁이 할머니가 되어서 손주녀석 자랑하며 그렇게 다니고 싶다.
우리 늙으면 함께 온천다니기로 했잖아.
집안에 영감들은 내팽개치고, 우리끼리 재미나게 놀러다니기로 했잖아.

진아~
네가 퇴원하는 날, 예쁜 단발머리 가발하나 사들고 들어갈게.
거기에다 채양있는 벙거지 모자를 바쳐쓰면 여전히 예쁜 네 모습이 될거야.
제발 지금의 힘겨움을 이겨내야 한다.

며칠 후에나 내 마음이 정리되면 널 보러 갈게.
비록 유리창 너머로 밖에 볼 수 없겠지만, 내 널 위해 함박웃음을 지으며 들어갈거다.
진아.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