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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족관 습격사건


BY loulou72 2001-04-17

나의 덜렁댐이 또하나의 사건을 일으켰으니, 바로 수족관 습격사건’(일명 ‘열대어 떼살어사건')이다.
여차여차한 이유로 약 2개월간 시부모님과 함께 동거하게 되었다.
시아버님께서는 새집에 이사오시면서 수족관에 거금 50만원을 들이셔서 때깔도 고운 해수어 8마리를 넣으셨다.

한마리에 몇만원에서 십만원에 육박하는 녀석들도 있었으니, 조금은 부담스러웠지만, 고기밥을 넣어주면 달려드는 그녀석들 지켜본다는 기쁨으로 물고기먹이 주는 역할은 내가 자청했다.
그렇게 일주일정도는 잘 키워냈다.

그런데, 문제의 사건은 어젯밤에 일어났다.
수족관 뚜껑위에 둥그런 구멍이 있는데, 그 구멍에 희한하게도 물고기먹이통이 사이즈도 정확히 들어가는 것이였다. 신기해하며 먹이통을 빼려는 순간!
먹이통 뚜껑이 빠지면서 먹이통이 수족관의 맑은 물속으로 퐁당 빠진 것이 아닌가.
먹이통에서 빠져나온 수천알의 빨간 알갱이들은 삽시간에 수족관을 덥쳤고, 그 비싼 물고기들은 제 몸값도 잊은채 촐싹대면서 먹이를 마구마구 주어먹고 있었다.

아들녀석과 TV를 보고있던 남편을 다급히 불렀다.
“이리 와봐! 클났어! 어떡해~ 어떡해!!!”
황급히 달려온 남편은 먹이 때문에 뻘겋게 물든 수족관을 망연자실 바라보고만 있었다.

원래 해수어들의 먹이는 새끼손톱의 반만큼 하루에 2번씩 주어야 했다. 그런데 한달분도 훨씬 넘을 만한 분량의 먹이를 들이 부었으니…

나는 얼른 부엌으로 달려가 조리용 망을 가져와서 수족관을 휘젓기 시작했다. 얼마만큼의 먹이는 건져냈으나, 내가 휘저은 덕에 수족관은 한치앞을 볼수 없도록 뿌옇게 되어 버렸다.

더욱더 망연자실해진 우리 부부.
가엾은 울아들은 문제의 물고기 먹이통을 연신 흔들어대다가 속이 바싹바싹 타버린 엄마에게 쥐어박힌 머리를 만지며 울고말았다.

불행중 다행히도 시부모님께서는 외출중이셨다.
남편은 우선 수족관 전등을 끄고 기다리고있다보면 내일 아침에는 가라앉을 거라고 날 위로해주었다.

시부모님께서 귀가하실때까지의 몇시간은 정말 불안 초조함의 그 자체였다.

드디어 시부모님께서 귀가하셨다.
시아버님께서는 불꺼진 수족관을 자세히 보시고는.,
"물고기들이 모두 자는구나. 얘네들도 잘 때 자야지.”하셨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난 남편에게 세상에서 가장 비장한,그리고 비겁한 제안을 했다.
"있잖아. 수족관 저렇게 된거, 아버님께 오빠(남편)가 했다고 해라. 응? 제발~~ 설마 아들인데, 그런 짓을 했다고 아들을 때리기야 하시겠어?”
의외로 남편은 쉽게 그러겠노라고 대답을 해주었고, 난 조금은 안심된 맘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그 다음날 아침.
난 눈을 뜨자마자 수족관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어제보다 한층 뿌옇게 되어있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물고기들은 편안하게(?) 수족관 바닥에 누워 있었다…
남편을 흔들어 깨우면서 “오빠, 일어나봐. 수족관이… 물고기들이…”
후다닥 수족관으로 달려가 자세히 살펴보던 남편은 내게 물고기들의 사망사실을 알려주었고, 사망시점은 오늘 새벽정도일 거라고 친절하게 덧붙여주었다.
그렇게 수족관앞에서 웅성이다가, 아버님의 인기척에 놀라 얼른 방으로 들어와 자는척했고, 평소에 그러하듯이 아버님께서는 신문을 꺼내오시며 수족관 불을 켜셨다.
'툭툭! 탕탕!’
수족관 유리면을 치시는 소리가 들렸고, 점점 초조함으로 옥죄어오던 나는 남편을 뒷발질로 치면서 얼른 나가서 사실(비록 우리사이에서 꾸며진 얘기였지만..)을 말씀드리라고 했다.
착한 우리남편은 머리를 긁적이며 아버님께 어제밤에 자기가 먹이를 과다투여해서 물고기들이 모두 죽은 것 같다는 말씀을 드렸다.

한층 무거워진 아침식사시간이 이어졌다.
‘니가 그럴 줄 알았다. 저런걸 아들이라고…’는 아버님의 면박과
‘그러게 좀 조심하지 그랬니.’하시는 조금은 자애로운 어머님의 면박이 10분여 남편을 향해 지속되었다.
하지만 나는 안다. 부모님의 그러한 면박보다도 더욱 남편의 맘에 상처를 준 것은 아내인 나였음을…

“그러게, 물고기밥은 내가 준다고 했잖아. 내가 꼭 티스푼으로 물고기밥을 주라고 했는데, 왜그랬어.”

그런말을 능청스레 남편에게 했던 나도 정말 괴로웠다. 나도 누구 못지않게 정직하고 솔직한 사람인데...

부모님의 눈총과 면박의 화살이 지나가고 출근준비로 바빠질 때 남편은 나를 향해 ‘씨익’ 웃음을 지어보이며, 무사히 사건의 종말되었음을 자축했다.

사건종결후 3시간만에 수족관아저씨들을 불러서 해수어들의 사체를 건져내고 물을 갈았다.
해수어생존에 적당한 물이되면 며칠후에 전에있던 것과 똑같은 8마리의 해수어들을 넣을 것이다.

이젠 돈이 문제다. 으~ 아까운 50만원..
이럴 줄 알았으면 아버님께서 금붕어와 해수어를 놓고 고민할 때 금붕어를 권할 것을..
그때는 내돈 안들어간다고 예쁘지만 비싼 해수어를 고집했었는데…

조금전에 신랑한테 전화를 했다.
오늘 아침에 나의 행했던 말을 사과하고 수족관의 현상황을 보고할 겸.
이해심 많은 신랑은 이런말로 나를 감동하게 해주었다.
“괜찮아. 범죄라는 게 그런거 아닌가? 완벽하게 해야하거든. 그리고 넌 끝까지 버텨야해. 이러다 들키면 정말 나쁜 사람된다,너..”

어떠한 일이 있어도 ‘수족관 습격사건’은 비밀에 부쳐져야한다.
쭈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