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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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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부림스<15>-니 팔 니가 흔들고 내 팔 내가 흔들자.


BY eheng 2001-03-26


우리 몸부림스에겐 대모 같은 큰 성님이 있다.
큰 보살 같고, 맏형 같고, 아량이 웬만한 도랑 정도는 뒤 덮을 만한 뒷심 좋은 성님이 있다. 우리의 봉이며 해결사며 때때로 인생의 상담자이며, 우리가 갈 길 먼저 가주고 먼저 매 맞는 우리의 왕 몸부림스인 것이다. 그녀의 별칭은 떴다! 옴여사!
경옥이 아무리 교태를 부리며 춤을 춰도, 영선이 아무리 주둥이 나물나물 놀리며 만담을 한다 해도 성님만큼 짜릿할까? 성님만큼 절절할까? 한 시간만 같이 있으면 거의 까무러치거나 죽음이다. 너무 웃다가 호흡이 안 되거나, 너무 놀라 심장마비다.
큰 성님은 그 자체로 예술이다. 물론 미대를 나온 정통 예술인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림을 그린 건 실수였다. 카수가 되어야 했을 것이다. 하춘화의 눈 웃음, 문주란의 음색에 음량은 김경호다. 그럼, 유희는? 유진 박이다. 성님의 전공은 브루스도, 발라드도 아니요, 락 인 것이다.
그렇다. 성님은 락커인 것이다.
마흔이 훨훨 넘어서도 파마 머리 길게 기르고 다니는 유일한 이유는 헤드뱅을 하기 위한 것! 찢어진 청바지도 불사하고, 두 줄짜리 개 목걸이도 여러 개 있다. 또, 있다. 까만 가죽 바지도 있다. 이건 락커의 필수품이다. 이마를 거의 다 덮는 넓은 헤어 밴드도 있다. 우린 보통 그것을 화장을 지울 때나 세수할 때 훌러덩 용으로 사용한다. 사람마다 그 사용하는 용도가 일정친 않다. 그 머리띠 우리 할머니는 두 번 돌려 무릎에 두르거나 목에 맨다. 겨울에 무릎과 목에 바람 숭숭 든다며... 어찌 됐건, 노래 부를 때 그 긴 머리 뒤흔들지 않으면 심란하고 답답하여 화병 걸린다며 저리도 길게 기르는 것이다. 생으로 기르기엔 숱이 너무 적다고 꼬슬려 기른다. 뒤에서 보면 20대 날라리 아가씨, 앞에서 보면 그대로 엽기다.
그녀에겐 그녀만의 패션이 있다.
머리에 달린 빤짝이 찝게 핀 한두 개가 아니다. 하루는 심심하던 차 세어 보니 아홉 개 달았더라. 이젠 머리 숱도 없는데 아무리 작은 핀이라곤 하지만 너무하다 싶게 많이 달았다. 여자 나이 마흔을 넘어가고 이제 쉰을 바라보면 유달리 즐기는 패션이 빤짝이다. 머리 핀도 핀이려니와 옷에도 반짝이는 브로치 꼭 단다. 시계는 안차도 길 가다 물어보면 되지만 브로치 안 달면 불안하다, 답답해서 브래지어는 생략해도 브로치 안달면 생명줄 떼어 놓는 기분이다. 야리 꾸리 알록달록 아슴프레한 블라우스, 어디엔가 꼭 반짝이 구슬 달렸다. 재킷에도, 니트에도, 바지에도, 구두에도, 반짝이 없는 것은 눈에 차지 않는다. 성에 차지 않는다. 썬 글라스에도 반짝이 구슬 달아야 쓴다. 시계와 반지도 누런 색 번쩍이는 황금이 좋다. 왕따시만한 알 반지도 필수며, 온갖 잡동사니 몽땅 들어가는 커다란 핸드백도 필수다.
그 백에 뭐 들었는지 궁금하다. 없을 때 살짝 들쳐 보면 한 세상이 있더라.
알사탕과 야구르트,(폐경기가 되면 갑자기 목이 탄단다. 침도 안 넘어가게 입이 마른단다.) 빨대 한 묶음,(그냥 마시면 빨간 루주 지워지니고 체면을 유지하기 위해) 커다란 손수건과(시도 때도 없이 눈물과 콧물이 나오니깐.) 물병, 앙꼬 빵(갑자기 배 고프면 힘이 쪽 빠지니까), 무지막지한 화장품 지갑에(여행가도 될 만큼), 여벌의 살색 스타킹과 덧버선, 손톱 깍이 세트와 커다란 손거울,(집에선 하루 종일 거울 한 번 안 보면서...) 전화번호부(재산 목록 1호, 결코 한 개의 전화도 못 외운다.) 작은 성경책(아주 간혹은 시집) 묵직한 동전 지갑, 치약과 칫솔, 면봉과 이쑤시개, (아침에 들어 온 미처 읽지 못한) 지라시, 크리넥스... 별별 살림살이 다 있다. 사과궤짝 업어 놓고 주욱 진열하면 만물상도 될성싶다. 그 옛날 동동구리무 팔러 다니던 보따리 장수를 능가한다.
그래도 남은 건 단 하나 줏대 뿐! 결코 남의 말에 흔들리지 않는다.
한 겨울엔 오리 털 파카에 쓰레빠짝 신고 다닐지언정, 한 여름에 겨울에 신던 부츠 그대로 신고 다닐지언정, 아무도 안 신는 살색 불투명 스타킹 제발 신지 말라 해도, 발 목까지 오는 스타킹 신지 말라해도 다 제 개성이며 멋이다.
큰 성님은 남의 눈치 절대 안 본다. 왜???
그녀의 좌우명은 지 팔 지가 흔든다 이기 때문이다. 이기 무신 말인고?
다 알 것이다. 조금씩은 찔릴 것이다.
왜 지 팔 지가 안 흔들고 남의 팔 흔드느라 야단들인가?
남편 팔 흔들다가 지레 지치고, 자식 놈 팔 대신 흔들어 주다가 만신창이 된다. 친구 팔 흔들다가 거지 발싸개 된다. 남편의 성공이 곧 자신의 성공인양 의기양양해 하며 살다가 보면 어느덧 깨닫는다. 너는 나의 영원한 적수임을, 영원한 동반자인 동시에 영원한 경쟁자임을!!!
자식 놈들 성공이 나의 행복인양, 대리 만족과 보상 심리로 살다 보면 어느날 퍼뜩 깬다. 자식이 웬수인 것을, 품 안의 자식인 것을!!!
결코, 결단코, 그 누구도 내 자신을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을!!! 몸부림 치다 보면 깨닫는다.
큰 성님에겐 소박한 바람이 하나 있다. 노는 판과는 다르게 그 꿈은 소박하다. 자기 손으로 돈 벌어 남편 앞에서 뽄때 있게 써 보는 것. 그 날을 칼날을 갈며 기다린다. 언젠가 너의 등에 비수를 꼽으리라며... 오늘도 쐬주잔 기울이며, 돼지 껍데기 구워 먹으며 칼날을 갈고 있다.
큰 성님은 너무나 참고만 살다가 저 나이 되서야 한을 품었다. 여자의 한은 그래서 오뉴월 서릿발처럼 매서운 것이다. 장미의 전쟁처럼, 적과의 동침처럼 그렇게 잔혹하고 처절한 것이다.
그렇게 살지 않으려면 우린 지금부터 흔들자. 몸부림을 치자. 자기 팔 자기가 흔들며 살자. 제 몸으로 몸부림치는 길이 자신 있게 사는 지름길인 것이다. 매일 매일 확인하자. 내 몸이 살아 있음을, 그래서 내 스스로 내 몸을 흔들며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이렇게 흔들 수 있음에 감동하자. 자기 몸 자기가 흔드는 것만이 살 길인 것이다.

이제부턴 니 팔 니가 흔들고, 내 팔 내가 흔들자!!!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