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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부림스<14>-밥은 아무나 하나!


BY eheng 2001-03-23


시인 이상이 그랬던가? 육신이 흐느적 흐느적 하도록 피곤했을 때만이 정신이 은화처럼 맑다고.
맞다. 늘 상 흐리멍덩하다가도 이 때만 되면 명료하고 구름 한 점 없는 이 놈의 정신이 문제다. 육신은 뒤틀리며 물먹은 솜처럼 자지러 드는데도 이 시간만 되면 어김없이 반짝이는 머릿속.
비실비실 걸어간다. 비척비척 기어간다. 꼬기작 꾀죄죄한 행주치마 자동으로 둘러맨다.
몸부림스 밥할 시간이 돌아온 것이다!
하루 정도는 잊어버리고 지나쳐도 되련만, 다른 건 다 잊어도 밥 먹는 다는 사실 하나만은 결코 잊을 수가 없다. 우리 몸부림스, 목구녕이 포도청이고, 오로지 먹기 위해 살며, 밥심으로 살기 때문이다.
부엌의 작은 창문으로, 아파트 살벌한 풍경 너머로 오늘의 태양이 저문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또 떠오르겠지만... 지는 해 바라보면 가슴이 무너져 내린다. 석양빛에 가슴이 피바다가 된다.
어둑해진 부엌에 들어서면 여인의 가슴은 방망이 친다. 오직 후회와 자괴감만이 엄습할 뿐이다. 부엌의 싱크대엔 아침부터 쌓인 산더미 같은 설거지감,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 지 난감하다. 하나만 건드리면 사상누각이라. 아파트 한 동이 그대로 무너져 내릴 판이다. 그 뿐인가. 저녁거리로는 대체 무얼 한다는 것일까? 암담하기 짝이 없다.
그도 그럴 것이다. 하루에도 세 번씩, 수 십년을 해 먹은 밥. 이젠 신물이 난다. 이골이 난다. 반복되는 작업에 권태증이 난다. 아무리 분업화된 산업사회라곤 하지만 하루도 빠짐없이 세끼를 밥을 하면 그것이 도대체 어떤 형태의 분업이란 말인가? 노동법을 찾아봐야 할 일이다.
밀린 설거지 하며 나오는 한숨과 콧바람으로 냄비의 물기 단숨에 마른다. 비틀어 짠 행주까지 바싹 마른다.
심호흡으로 마음을 다스려도 본다. 복식 호흡, 단전 호흡, 알고 있는 호흡법은 다 써도 진정이 안 된다. 아직도 쌓아야 할 미연의 내공이 필요한 것인가?
답답한 마음에 창문을 화들짝 열어 젖히면 시원한 바람대신 뿌연 황사먼지 훅훅 분다. 좁은 부엌 서성이다 제 발 제가 밟는다. 식탁 의자에 걸려 넘어지고 꼬꾸라진다. 홧김에 냅다 뒷 베란다로 나간다. 베란다에는 없는 것이 없다. 어느 공사판을 방불케 한다. 뭐든지 다 있다. 구겨진 옷걸이, 먹고 버린 케이크 박스, 각각의 스트로폼, 계란판, 신문지에 온갖 잡지, 휴지 속대와 지라시... 어머니가 들려보낸 된장 고추장까지. 만물상이건만 찾는 건 나오지 않는다. 군시렁거리며 한참을 뒤지니 아! 있구나. 지난번 마시고 남겼던 맥주 한 병!
부엌에 가지고 들어와서 빈 속에 마신다. 쏴르르~ 밀려오는 인생의 찐한 맛! 진정 그 맛을 아는가? 빈 속에 마시는 맥주 한 병. 고추장 팍팍 찍어 먹은 짜디 짠 멸치와 시디 신 김치는 삶의 온갖 맛을 다 느끼게 한다. 인생의 쓴 맛과 짠 맛을 동시에 느낀다.
취기가 오르면 만사가 낙관스럽다. 내 배 부르니 아쉬울 게 없다.
시집 와 이날 이때까지 이 시간이 되면 무슨 중독에 걸린 마네킹 모양 아무 생각도 없이 저벅저벅 부엌을 향해 가던 발걸음. 우린 언제부터 부엌데기 신세가 되었나? 집에서 밥하고, 시댁 가서 밥하고, 친정 가서 밥하고, 학교 가서 밥 푸고, 오랜만에 산에 가면 거기서도 밥하고, 기분 낸다고 콘도 놀러 가면 거기서도 장 봐서 밥하고, 밥해 먹고 치우는 기계처럼 살았다. 밥데기 신세다. 솥뚜껑 운전사다.
자면서도 내일 아침 뭘 해 먹지? 아침 설거지 하며 점심은 뭐하지? 점심 먹으며 저녁 찬거리 걱정으로 하루 해가 진다.
그 많은 밥, 누가 다 먹었을까?
누가 그러더라. 인간의 진정한 독립은 자신의 먹거리를 스스로 해결하는 데서 시작한다고. 옳타! 스스로 제 입구녕 못 채우는 인간은 지진아며, 미성숙한 인간이며, 영원한 거머리다. 뭐, 밥은 아무나 하나?
그래, 밥은 뭐 아무나 하나? 술김에 정신을 차리고 냉장고를 연다. 썰렁하다. 김치 냄새에 얼른 문을 닫는다.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냉장고를 연다. 말라빠진 콩나물 반 봉지, 뒤틀어진 무 반 개... 다시 심호흡 하고 냉동실을 연다. 얻어 온 떡들이 봉지봉지 땡땡 얼려져 있다. 혹시 고깃 덩어리 없나 뒤척이다가 꽁꽁 언 떡덩이 떨어져 발등을 내리 찍는다. 으악! 냉장고 문 부셔져라 닫는다. 냉장고 한 번 열 때마다 성질 더러워진다. 인간성 저버린다.
진짜 눈물 쏙 난다. 부상당한 채, 비틀거리며 쩔룩거리며 밥을 한다. 처절한 자기와의 싸움이며, 생명에 대한 경외감이다. 경건하게 밥을 한다.
팔 걷어 부치고, 도마질을 한다. 퉁탕 퉁탕 지글지글 보그르...
그 소리에 맞춰 딸국질이 시작된다. 뜰꾹 뜰꾹... 숨이 멎어라 참아도 계속되는 끈질긴 딱굴질. 아까 마신 맥주가 사단이다. 물을 서너 잔 배가 터져라 마시고서야 겨우 멎는다. 물 배 불러 이젠 숨 쉬기도 힘들다. 헉헉대며 밥 상을 차린다.
이렇게 마지막 한 방울의 힘까지 쥐어짜며, 사력을 다해 밥을 한다.

“밥 먹어라.”
“와~ 밥이다.”
식구들이 우르르 달려온다.
차려 놓은 밥상을 보고 모두들 눈이 휘둥그레 진다.
“이게 뭐야?”
“밥이다.”
“또?...... 계란 밥?”
“그냥 묵어라. 광우병에 구제역에 안전한 기 한나 없다.”
“......”
남편과 아이들은 일주일 째 맨 밥에 달걀 후라이를 얹어서 참기름 뚝 떨궈 넣고 간장 한술 넣어 척척 비벼먹는 달걀 비빔밥이다. 묵은 김치랑 먹으면 꿀같이 달다. 영양도 만점이다.
“그냥 먹자.”
작은 아이가 포기한 듯 말한다.
“그래, 자꾸 먹으니 웬지 또 먹을 수 있다.”
큰 아이도 마지 못해 비비기 시작한다.
문제는 저 영감탱이, 웬수 같은 남자다. 이 세상 모든 여자의 고통은 98% 남자한테서 온다고 한다. 그럼, 2%는? 아버지라고 한다. 우리 몸부림스의 문제는 그래서 100% 남자들에게서 온다.
"난 안 먹는다. 라면 끼리라.”
“불허다.”
당당히 맞선다. 아내의 오랜 절망과 고뇌 끝에 오는 이 정성을 외면하고 라면이라니? 라면발 같이 꼬부라진 삐딱한 태도 허락할 수 없다. 뒤 돌아서는 웬수.
“달걀밥의 새로운 버전이다. 간장이 아니라 고추장 넣고 비볐다.”
“뭐시라? 고추장?”
자신의 기만적 행동을 무시하고 되돌아서 온다. 그리고 한 그릇으로 모자라 한 그릇 더 비벼 먹는다. 아이들도 이구동성, 외친다.
“내일은 우리도 고추장으로 비빌끼라요.”
그래, 그려려므나...
이렇게 오늘도 우리의 밥상 공동체는 생명의 존귀함을 체험한다.

온 도시가 밤을 맞는다. 아파트의 불빛이 하나 둘씩 꺼지고 소요하던 도시의 하루도 막을 내린다. 또 하루가 저물어간다.
오늘 난 무엇을 하였는가?
누가 묻는다면 난 당당히 말하리라. 삼시 세끼 밥을 하였노라고.
에너지의 원천인 밥, 한 끼만 안 먹어도 어지러운 밥, 자기 아닌 이물질이 내 몸으로 들어와 내 몸의 피와 살이 되는 이 신비한 자기화 현상에 일익을 했노라고. 생명을 살리는 밥을 하였노라고. 달고 기름진 맛난 음식도 세상엔 즐비하지만 거칠고 소박한 밥 한 그릇과 김치 한 보시기. 콩나물국과 김치찌개, 두부 조림 한 접시, 보글보글 끓는 된장찌개... 그 거친 음식들이 생명의 자양분이 된다는 사실은 언제나 감격스럽다. 그 음식을 만드는 손이 아름답다.
이젠 누가 찬이 변변찮다고 투정을 하면, 맨 날 같은 것만 올린다고 나무라면, 하루 종일 집에서 뭐하고 빈둥댔냐고 물으면 우라지게 째려보고 옹골차게 말하자.

밥은 아무나 하나!!!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