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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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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남자와 그* 세월을~ (1)


BY 넘실이 2001-02-15

1991년 3월 1일 아침.

내일이면 국민학교 5학년이 되는 아들 놈의 새학기가 바로 내일이구나... 재주가 없어서 달랑 하나 낳은 아들 놈이 생후 1개월 후부터 입
원을 반복하여 과연 사람 노릇이나 제대로 할까 시어머님, 친정어머님
이 걱정을 많이도 하셨는데... 이제 제법 시금시금한 남자 냄새가 나
려고 한다.

"동식아~ 아빠더러 어디 놀러가자고 하자~"
그런데 남편은 별로 나갈 마음이 없는 모양이다. 영 민기적거리기만
하고 가타부타 말이 없다. 특별히 집중하여 보는 것 같지도 않은데 시
선은 T.V에 고정시킨 채...

있는 반찬으로 대충 점심을 차려 먹고 시큰둥하여진 마음으로 나도 남
편 옆에 눌러 앉았다. 약간 부르퉁해진 입을 쑥 내밀고는 실눈으로 얼
굴을 돌려 남편을 한 번 째려보고는 나도 시선을 T.V에 고정시켰다.

"여보, 나 내일 통역학원에 다시 등록을 해서 일어, 영어 공부를 다시 시작하여 볼까봐~"
"왜?"
"왜라니, 다시 한 번 통역대학원 시험에 응시해 보아야지~. 이제 시험 방향을 대충 알았으니 올 해 한 해 더 애쓰면 될지도 몰라~ "
"그런데, 당신 내일부터 사무실에 출근해야 하는데~~~"

아닌 밤중에 홍두깨도 유분수지 갑자기 왠 사무실 출근이람. 어디 가서 면접보고 온 회사도 없고만... 그리고 지금 다시 직장에 나갈 궁리를 한 적도 없고, 나의 직장생활에 대해 이야기 해 본적도 없건만, 최근에는...

"무슨 사무실?"
"응~, 회사와 같은 빌딩에 내 사무실을 하나 차렸거든~"
"당신 사무실?"
"응~"
"어쩜 나한테는 한마디 상의도 없이 어떻게 사무실을 차릴 수가 있어?"

이 당혹감, 배신감, 불안감...가슴이 콩닥콩닥 뛴다.

"사무실만 얻어 놓은 거야?"
"아니, 사무실 집기까지 다 들여 놓았어~"
"돈이 어디 있어서? 사무실 임대 보증금도 만만치가 않을 터인데?"
"아니, 사무실을 새로 얻은 것은 아니고, 학교 후배 중에 아버지 사업을 물려 받아 돌 채석작업을 하는 녀석이 있는데, 그 녀석 사무실의 반을 쓰고 임대료만 반씩 내기로 했어~"
"그럼, 당신 직장도 사표 쓴거야?"
"아니, 우선은 둘을 병행하려고 하니까 당신이 나와서 좀 봐줘~ 아무래도 일본, 중국과 거래를 하여야 할 것 같으니까 당신 외국어 실력도 좀 발휘해 주어야 할 것 같고~"

속이 와글거린다.
그래도 아직 직장을 그만 둔 것은 아니라니 그나마 다행이다 싶기는 한데 드디어 일을 저지르고 말았구나, 언젠가 이런 날이 오리라 어렴풋이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기습적으로 사람을 꼼짝 못하게 만들어 놓으니 괘씸하기 이를 데가 없다.

3월 초순이라 아직 쌀쌀한 날씨에 같이 발을 덥고 있던 이불을 걷어내고 벌떡 일어나 부엌으로 간다. 커피라도 마셔야지... 미뤄 놓았던 설거지를 우당탕! 싹싹! 씻어댄다. 애꿎은 그릇에 화풀이라도 하는 듯...

결혼 후 직장을 다니면서도 한 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무엇인가를 쑤시고 다니더니 그 끝이 바로 오늘인 모양이구나... 강한 개성과 고집에도 불구하고 남편에게 만큼은 언제나 지고 들어가는 나였지만 또 이렇게 말려들고 마는거구나...

씽크 대 위의 수도꼭지의 물은 거침없이 촬~ 촬~ 흘러내린다.
허리에 힘을 주고 심호흡을 한다.
어짜피 이렇게 된 일, 사업이라도 잘 되어야 할 터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