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물고기 우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734

깨끗한 몸- 후편.....김 원일 작


BY 토마토 2001-02-09

18

어머니의 때밀이는 살갗이 발갛게 부풀어 오르고
붉은 실핏줄이 비칠 때 까지 계속 되더니,
그 고문을 당하는 입장에서는 절로 신음이 터지게 마련이었다.
울음을 비죽거리거나 비명을 지르면 어머니는 어김 없이
내 팔과 허벅지를 꼬집었다.
그래서 나는 어머니가 이렇게 까지 때를 씻기는데
무엇인가 맺혀있을 당신의 원한을 엉뚱하게도
자식에게 풀고 있는게 아닐까하는 의구심마저 들게했다.

중략

어머니는 귀 하나를 씻길 때도 삼베수건을
집게 손가락에 돌돌 말아 귓바퀴의 미로를 몇 차례나 닦아내었고
귓구멍은 손가락을 돌려가며 송곳으로 파듯 쑤셔 대었다.
그래서 한 쪽 귀를 청소하는 데도 일분이 넘는 시간을 잡아 먹었다.

나는 터지려는 비명과 울음을 어금니로 질금질금 깨물며
어머니의 때밀이를 참아내었다.
적게 잡아도 사십분은 넘이 걸렸을 그 때밀이가
나에게는 한 시간도 넘게 지루했다.
어머니의 손길이 가슴팍에서 이제 배쪽으로 넘어가려니하고
졸갑증을 내면 그 손은 다시 가슴팍을 세번째 되풀이하여
밀어대곤 했다.
무르팍과 팔꿈치 처럼 살갗의 주름이 많고 때를 잘 타는 부분은
속새로 나무결을 곱게 다듬듯 삼베수건을 제자리에서
돌려가며 문질러대었다.
그렇게 털 뽑은 닭처럼 살갗에 피멍이 들도록 때를 씻긴 뒤에는
어머니도 기진해져, 탕속에 들어가라는 허락이 떨어졌다.
그제서야 나는 마치 지옥의 굴이라도 빠져나온듯
큰 숨을 내쉬었다.
뜨거운 물이 살갗에 닿으면 더 쓰라릴 것 같았으나
어머니가 또 붙잡고 미진한 부분을 씻길까보아,
한편 알몸을 감추기 위해서 얼른 탕 속으로 들어가 몸을 감추었다.

19


탕안에 있는 여자들을 보기가 민망하여 벽쪽으로 몸을 돌렸다.
불에 달구는 듯 온몸이 뜨겁고 쓰라렸다.
<널치>가 나도록 나를 씻겨놓은 어머니는 이제 당신의 몸을
씻기 시작했다. 그 시간의 소용됨이란 몸의 체격과 비례하므로
내 몸의 두 배는 실히 넘음직한 어머니는 한 시간 넘이
공력을 쓰게 마련이었다.
이미 술이 할머니는 나가버리고 없었으므로 어머니는
그 자리를 차지하고 앉은 옆 아주머니와 말을 터 서로 등의
때를 품앗이로 밀어 주었고, 대야에 담아온 내 내복까지 죄 빨았다.
빨랫감은 비단 어머니만 가져온 게 아니었다.
목욕값의 밑천을 뽑겠다고 다른 여자들도 한 통씩 빨랫감을
가지고 와서 더운 물에 흥청망청 빨래를 하고 있었다.
옷을 입은 중씰한 여자가 들어와 물을 아껴 써라,
빨래를 그렇게 많이 해서야 되겠느냐는 잔 소리를 했지만
미안쩍어 하는 여자는 없었다. 돈을 내고 들어왔는데
무슨 말인가 하듯 그 여자를 곱지 않은 눈길로 힐끗거렸다.
어머니가 당신의 몸을 씻고 있을 동안 내게는 지루한 시간이었지만
어머니 손에서 놓여난 기분을 즐기며 목욕탕 안을 두루 구경하는
짬을 가질 수 있었다.
그 동안 사람이 조금 빠져나가버려 목욕탕 안이 들어올 때 만큼
붐비지는 않았다. 이제는 나와 비슷한 또래의 계집아이를 보아도
철면피가 되어 무덤덤히 바라보고는 했다.


20


네가 학교에서 소문을 낸다면 나도 소문을 내리라는
알량한 뱃심으로 바라볼 양이면 저쪽에서 오히려 시선을 피해 버렸다.
아무리 설 밑이라지만 목욕탕에라도 들어올 만한 읍내 사람들은
그래도 생활 정도가 나은 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여자들은 몸꼴이 말이 아니었다.
내 나이 아래의 계집애들은 그렇다치더라도
어른들마저 팔과 다리는 보습의 성에 처럼 홀쪽 말라
꺼칠했고 어깨뼈가 윷가락 같게 드러나 있었다.
밋밋한 가슴팍에 젖은 축 늘어져 달려 있었고,
갈비뼈는 숭숭한데 필요없게 퍼져내린 긁은 허리통에
엉덩판만은 널찍이 자리잡고 있었다.
주름살로 늘어진 쭈글쭈글한 배 아래 거웃사이를 열심히 씻고 있는
아낙네를 보자 추하다는 생각마져 들었다.
특히 허리가 꼬부장한 늙은이들의 몸이란 좁장한 등판까지
겹주름이 져있어 그 긴세월의 살아냄이 나무의 나이테 처럼
결과적으로 주름살을 만드는 과정으로 이어졌다.

<제 5부>

"인제 나오너라. 비누칠을 하고 가야제."
멍해져 있는 나의 귀에 어머니의 말소리가 들렸다.
빨랫비누 칠한 수건으로 몸을 닦아줄 때도 어머니는 여느 사람의
경우와 달랐다.물론 비누칠을 할 때만은 삼베수건을
사용하지 않았다. 비누칠은 두루미알처럼 뭉쳤던
무명수건에다 했던 것이다.
어머니는 불끈 짠 수건을 엄지를 뺀 네 개 손가락에다
친친 감고서는 비누를 아끼려고 손가락 바닥이 닿는 면에만
비누칠을 했다.
그렇게 하여 우선 이마부터 문지르기 시작하는 것이다.
어머니가 방바닥에 걸레질을 할 때는 뽀드득 소리가 날 만큼
힘을 주어 문질렀는데, 한 손으로 코로, 코 밑으로
뺨으로 숨쉴 짬도 주지 않고 힘을 주어 문질러대면 내 얼굴판이
절로 뒤틀려졌다.
내가 숨쉴 짬은 어머니가 수건에다 비누 칠을 할 때 뿐이었다.


21


귀를 씻어 줄 때는 역시 집게 손가락에다 붕대 감듯 수건을
말아 귓바퀴의 미로에 빠뜨리는 구석이라도 있을세라 홈마다
후벼팠다.어머니가 그렇게 한참 귀를 문질러대면 열이 날 수 밖에
없어 귓바퀴가 화끈거리고 얼얼할 정도 였다.
특히 비누칠한 수건으로 팔을 씻어줄 때는 수건으로
내 팔을 감싸 당신의 손아귀에 채워 뼈를 추려낼 듯이
밀어대어 어머니의 아귀힘이 얼마나 센지 뼈가 아렸다.
비누칠을 하여 빡빡 머리를 감겨 줄 때도 세 차례나 되풀이 했고
손톱으로 바닥을 사정없이 박박 긁었다.
손톱을 길게 기르고 다니는 여자 꼴은 천하에 못봐낸다는
당신의 버릇말처럼 어머니의 손톱이 몽그라졌기에 망정이지
손톱이 길었다면 내 머리통은 줄줄이 피를 흘렸을 터였다.
포경이어던 내 자지를 홀랑 까서 비누수건으로 여러 번 씻어내고
사람몸 중에서 가장 깨끗하게 간수해야 할 부분이라며
목욕탕 벽에 붙은 수도마개를 틀어 맑은 찬물을 받아와
씻기고 또 씻겨줄 때, 항문쪽으로 뻗친 오줌줄기까지
쌔끔쌔끔해지고 자지끝이 끊어져라 쓰리게 아프던 기억은
지금 되돌아보아도 찬물을 끼 얹듯 으스스해진다.
"이러다 차늦겠다. 니 옷도 깁어 놓고 가야할 낀데."
비누칠을 마친 어머니가 이 말을 했을 때 짧은 겨울 해가 설핏
기울어져 문종이를 바른 유리창에 그늘이 드리워졌을 때였다.
목욕탕안은 사람이 절반으로 줄어들어벼렸고, 욕조속의 더운 물도
더 공급되지 않아 내가 그 속에 들어 앉더라도
어깨를 채 못가릴 정도였다.
목욕탕 안에서 더운 물이 나오는 수도 꼭지는 욕조안으로
쏟아붓게 되어 있는 것 하나뿐이었다.
"몸을 헹궈야 할 낀데."하며 앉음 걸음으로 걸어가
욕조 속으로 쏟아지게 되어있는 수도마개를 틀었으나
이미 물이 끊어져있었다.
어머니가 더운 물을 달라고 몇 차례 고함을 지르고
손뼉까지 쳤으나 바깥에서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자리로 돌아온 어머니는 욕조 안의 물을 들여다보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보아도 그 물은 더러웠다. 물속에 엉겨다니는 때가
장구벌레처럼 눈에 들어왔다."이 더러븐 물로 우째 헹구제"
하던 어머니가 무슨 결심을 한 모양이었다.
벽에 붙은 수도마개를 틀어 함석대야에 찬물을 받았다.
비누칠을 했던 수건을 대야의 물이 깨끗해질 때까지 여러 차례
빨았다.

22


그리고는 대야에다 가득 물을 받아 내 옆으로 왔다.
"찬물로예?"
하고 물으며 나는 몸부터 떨었다.
"쪼매 찹더라도 참아라. 한겨울에 바깥에서 냉수마찰을
하는 사람도 있는데 사내 자슥이 이쯤도 못참아서야 되나.
일사후퇴 피란 내려온 사람들 이야기로는, 그 추운 한뎃바람을
맞으면서도 목에까지 잠기는 얼음물에 강을 건넜다 카더라."
말은 그렇게 했지만 어머니는 차마 대야의 찬물을
내 머리꼭지에서부터 좌르르 붓지는 않았다.
머리를 감기고는 찬물에 빤 수건으로 내 몸을 닦아내렸다.
온몸에 소름이 솟고 수건이 살갗을 스칠 때마다 따가웠으나,
나는 이제 목욕이 끝났다는 기쁨으로 참아내었다.
물에 뛰어들기 전의 준비 운동 처럼 내 몸을 얼추 식힌 어머니는
아니나다를까, 찬물을 새로 받아 내 몸에 좌르르 붓기 시작했다.
찬물이 튀자 내 옆에 앉아 있던 아낙네가 "그라다가 아아 감기
들겠심더."하고 말했으나, 당신 자식이나 감기조심 시키란듯
어머니는 대꾸도 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저녁차 편에 바삐 떠나자면
나에게 매질로 당조짐할 시간이 없겠거니, 하는 기쁨으로
나는 턱까지 덜덜 떨며 그 찬물 세례를 이겨내었다.
"밖에서 기다리거라. 내 얼른 비누질하고 나가꾸마."
비틀어짠 수건으로 내 몸에 묻은 물기를 샅샅이 닦아 준 뒤
어머니가 말했다.
드디어 나는 어머니로 부터 해방이 된 셈이었다.
샅을 가려야 한다는 염치를 차릴 겨를도 없이 나는
불알을 덜렁이며 목욕탕을 빠져나왔다.
눈여겨 보아 두었던 23번 장을 열고 바지를 입기 시작했다.
탕 안에 있을 때 보다 밖으로 나오니 추위가 한결 심하여
와들와들 떨며 옷을 입었다.
이제 여자 탈의장에서 어머니를 기다려야 할 필요가 없었다.
고무신을 챙겨 신고 나는 재빨리 목욕탕을 나섰다.
한길로 나오니 어느덧 해는 중앙산 쪽으로 설핏 기울어져 있었다.
바람이 스산하게 불어 흙먼지가 날리는 속에 설 쇨 장을 보고
돌아가는 먼 마을 사람들이 목욕탕 앞길을 메워 지나가고 있었다.
설빔의 자기 몫으로 먹고무신이라도 한 켤레 샀는지
부모에 떨어질 세라 앙감질걸음을 바삐 놀려 따라붙는
아이들도 있었다.
나도 몸이 날아갈 듯 개운하여 청노루마냥 바람을 가르며
어디로든 내닫고 싶었다.
그러나 그 많은 때와 더불어 기운조차 다 빠져나간 듯 몸이 나른했고
배가 고팠다.
울산댁 주막으로 달려가 국밥이라도 한 그릇 얻어 먹을까했으나
밖에서 기다리라던 어머니의 말을 생각하고
남탕에서 나오기라도 했다는듯 남탕 앞 바람막이가 된 문간에
서 있었다.

23


어머니는 저녁 통근차 편에 삼랑진으로 올라갈 터였다.
마산에서 출발하여 삼랑진으로 돌아 종착점 부산까지 가는
통근열차가 이곳을 거치기는 오후 다섯시 전후였다.
가운해를 가늠하자 세시반은 되었을 것 같았다.
나는 그 자리에 쪼그리고 앉아 귀가길을 재촉하는
장꾼들을 구경했다. 저 중부전선 에는 전쟁이 계속되고 있었지만
닥쳐 올 설은 역시 설이었으므로 장꾼들은 장 본 물건을
머리에 이고 손에 들고 바삐 걸었다.
장꾼들은 활달히 걸음을 떼놓으며 장시세에 대하여,
군에 간 자식에 대하여
옆엣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며 내 앞을 지나쳤다.
이십분이 지났을까, 어머니가 함석대야를 옆구리에 끼고
여탕문을 나섰다.
"길남아, 길남이 어디있노?"
어머니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나는 불렀다.
"여??심더"하고 대답하며 나는 어머니 곁으로 다가갔다.
쪼그리고 앉아 있었던 탓인지 양말도 신지 않은 발가락이
아리다못해 쥐까지나서 나는 절뚝걸음을 걸었다.
"와 그라노?"
"쥐가 났나봅니더."
"목깐하이까 깨분하제?"
꽃물을 들인 듯 활짝 핀 붉은 얼굴에 따뜻한 웃음을 보이며
어머니가 나에게 물었다.
정다운 목소리였다.
"예, ?틤槿爛求?"
나는 정말 새처럼 몸이 가벼웠고 날아갈 듯 개운했다.
"가자, 어서 가야제. 내복도 안 입어 춥겠다."
어머니가 내 손을 잡고 장터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어머니의 큰 손을 통하여 따뜻한 느낌이 내 손으로 전해왔다.
어머니가 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 목소리가 그 어느때보다 엄숙했으나 물기를 머금어 그런지
간곡한 호소를 담고 있었다.
"더러운 세월을 만나 애비 없는 설움으로 니가 비록
남의 집에 얹혀 얻어묵고 있지마는 씻은 몸 처럼 마음도
깨끗해야 하니라. 깨끗한 마음으로......길남아,
뒷날 우리 식구가 이 고생하고 살았을 때를
웃으며 이야기 할라카모
니가 우째하며 살아야 되는 줄을 알고 있제?"
나는 대답을 않고 묵묵히 걸었다. 나는 어머니가 할 다음 말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 말씀에 보답할 자신감이 없었으므로 푹 꺾은 고개가
들려지지 않았다. 그래서 겨드랑이에서 돋아난 빳빳한 날개가
갑자기 소금에 절인 푸새처럼 힘없이 축축 쳐져 내림을 느꼈다.
엄니가 걸음을 멈추더니 말했다.
"우짜든동 열심히 공부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는 길 밖에 없데이."(1987)

- 끝 -
. . . . . .


목욕을 엄청 오래했죠?
며칠이 걸려서 말이죠..
끝까지 길남이는 그래도 즈네 학교 계집아이를
만나게 되지는 않았네요.
이 글을 다 옮겨쓰고 나니..
저의 실수를 깨닫게 되네요.
재미있는 이야기가 아니고 가슴 아픈 이야기 인데....
저의 불찰 용서해주시길....
길남이와 어머니의 따스한 모성애가 느껴지죠?
우리들도 깨끗하게(?) 아이들을 키웁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