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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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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누이


BY 솔바람 2001-01-29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고 하던가, '시'자만 붙으면 다 무섭다던가.....

내겐 시누이가 두 사람 있다.
큰 시누이는 결혼해서 서울에 사시니까 가끔 뵙게 되고, 손위라 늘 따뜻이 대해 주시니까 그저 언니 같은 느낌으로 늘 다가오시는 분이다. 천성이 고우셔서 손아래 올케를 늘 이쁘게 여겨주고, 옷도 자주 사주고, 좋은 건 먼저 챙겨주신다.

작은 시누이는 시집갈 때까지 1년 채 안되게 함께 살았다.
구김 없고 솔직하고 집안살림을 다 꾸려 가면서도 막내티가 나는 시누이에게 나는 스스럼없이 정이 들었고, 그녀가 시집가는 날은 뜨거워지는 눈시울을 주체할 수 없었다.
엄마 없는 그녀에게 친정엄마를 대신해야겠다는 마음이 들면서....

그러나 돌이켜 보니 그녀에게 내가 위안을 주었던 경험보다 그녀가 내게 위로가 되었던 적이 훨씬 많았다.
가까이 살며 착한 시누이는 내게 여동생도 되고 친구도 되어, 시집살이에 대한 하소연을 할 수 있는 창구였고, 따뜻한 메아리가 되어 주었다.

가까이 사는 덕에 토요일, 일요일에 심심해지면 찾아가고 찾아오고, 무던한 시뉘남편까지 편하게 함께 어울려 두 집 가족 모두는 우리 고물차에 옹송거려 타고, 야외에도 곧 잘 놀러 다녔다.
누가 시누이인지 올케인지 늘상 어울려 다니는 우리를 보고 아는 이들은 모두 인사들을 했었다. 시뉘올케가 어찌 그리 친하느냐고....

시아버님을 모시는 7년 반 동안 시누이들은 내게 큰 안식처였다.
내가 힘들어하는 일은 시누이들이 대신 나서서 해결해 주었고, 내 불만은 이리저리 대리분출 시켜주어서 난 착하지 못하면서 좋은 며느리가 될 수 있었다.

더욱이 작은 시누이는 감초였고 윤활유였다.
그녀 덕분에 우리 가족들은 더욱 돈독해졌고 화목해졌다.
모든 가족이 그녀를 사랑했다.
내가 오히려 그녀에게 욕심스럽게 굴었고, 그녀는 곧잘 모든 걸 다 양보해줬다.
나는 모든 진심을 그녀에게 얘기할 수 있었고, 그녀는 내게 친정 동생보다 더 편했다.

시아버님이 돌아가셨을 때 그녀는 목놓아 울었다.
효도도 못하고 따뜻하게 못 해드렸다고 뒹굴며 통곡했다.
그런 그녀의 뒤에 서서 나는 나 때문이었다고 자책하며 가슴 아파할 수밖에 없었다.
매사에 올케 편에 서다보니 아버지께 남은 회한이 컸을 것이다.

그렇게 시아버님이 돌아가시고 난 뒤, 난 뒤늦은 공부를 하겠노라고 공표했다.
살림하고, 아이돌보고 어른모시고 사는 일밖에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축쳐져가는 아줌마에게 날개를 달아 주어야겠다고 결심했다.
출석수업, 시험, 그 외 모든 행사 때마다 우리 집 아이들은 고모네로 몰려가 쿵광거리며 자유와 해방을 즐기기 시작했고, 즐거웠던 주말이나 휴가 행사도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뒤늦게 시작한 공부는 옛날의 그 왕성하던 때로부터 많은 시간이 흘렀음을 서서히 증명해 보이기 시작했고, 책과의 씨름시간과 성적은 결코 정비례 해주지 않았다.
회의와 자포자기 속에서 나는 점점 자신도 모르게 이기적이 되어갔고, 결코 내 시간을 빼앗길 수 없다고 냉정하게 마음을 잠그고 들어앉아 버렸다.
그렇게 한 해가 지나고, 시누이는 뭐 부탁할 게 있거나 놀러왔을 때도 슬금슬금 내 눈치를 보게 되고 말았다. 얼마나 서운했었을까......

한 학년을 마무리하고 나서야 난 조금쯤 시누이를 생각하게 되었고, 이젠 요령이 생겼으니 옛날처럼 잘 어울리면서도 공부도 할 수 있겠지 하고 조금은 느긋해졌다.
그런데 새 학기와 함께 온 봄소식에 시누이 남편의 서울 전근소식이 전해졌고, 그녀는 서울로 이사를 하게 되고 말았다.

그녀가 서울로 떠난 지 이제 겨우 한 달, 그녀의 빈자리는 너무 크고 썰렁하다.
멀리 있는 내 친정의 자리와 따뜻한 시집의 자리를 함께 포용했던 천진하고 착한 그녀의 의미를 나는 이제서야 점점 더 깊이 깨닫고 있는 중이다.

나의 시누이!
단 한번도 잘해주거나 값진 선물을 주어본적이 없지만, 내가 그녀를 얼마나 의지하고 사랑했었는지를 뒤늦게 깨닫는 마음이 저려온다.

누구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란 얼마나 큰 은혜인 걸까. 누구에겐가 꼭 있어야 될 사람이라면 그는 분명 헛되이 살지 않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똑똑해서도, 공부를 많이 해서도, 넉넉한 살림을 가져서도 아닌 그저 마음 한자리가 넓은, 그래서 모두에게 편안함을 줄 수 있었던 나의 시누이. 그새 난 그녀가 그립다.
언제나 마음 놓고 함께 어울릴 수 있고, 함께 있으면 마음 푸근하던 그녀가 더욱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되돌아보아 보여지는 내 삶!
나도 나의 올케들에게 또는 다른 누구에겐가 그렇게 꼭 필요한 사람이었을까?....
시누이에게 깊은 감사와 사랑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