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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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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에세이를 쓰는 이유


BY 칵테일 2000-12-08


중학교 시절.
학교 앞에 문방구가 두 군데가 있었다.

한 곳은 바로 학교앞에 위치한 자그마한 곳.
또 다른 한 곳은 찻길 쪽에 있는 작은 서점을 겸한 곳.

커다란 서점이 귀했던 시절이라 (서울 한복판까지
가야했다.) 작지만 그 서점을 겸한 문방구를 자주 갔다.

공책 한권을 사러가서도 나는 서가쪽을 기웃대며
서서 읽는 책 재미에 빠져있었다.

거기서 발견한 책 하나.
먼지를 가득쓰고 맨 구석진 곳에 마치 버려진 듯
꽂혀있던 수필책 한권.
박연구님의 [바보네 가게]라는 책이었다.

도대체 무슨 책인데 저렇게 초라하게 자리하고 있을까.
그냥 궁금한 마음으로 먼지를 털어내듯 뽑아들고
설렁설렁 넘기며 그 책을 대강 훑어보았다.

마침 문방구는 한가했고, 자주 서가쪽을 기웃대는 나를
주인도 편안하게 대해줬다.

책을 좋아하는 학생이구나시며, 언제든지 편하게 읽고
싶은 건 읽으라고 하셨다.

그래, 이리저리 마음껏 펼쳐보다가 나는 가슴 한 구석이
아릿하게 느껴옴을 알았다.

자신의 가족과 어쩌면 무능하게까지 보이는 자신의
진솔한 모습을 아무런 여과없이 담담하게 써내려간 글.

궁상스럽고 혹은 뭐 저렇게 초라한 이야기를 글이라고
썼을까.... 싶은 안타까움.

그렇지만 그 책을 내려놓지 못하고, 글을 쓴 이가 못내
가여워 눈물을 떨구며 그 글들을 읽어내려갔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나는 문방구 주인에게 조용히 다가갔다.
그리고는 어렵게 운을 떼었다.

제가 용돈을 모아올테니, 이 책을 팔지 마시고 꼭 저를
위해 남겨놓아달라고.
꼭 사러 오겠노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문방구 주인 아저씨는 그런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시며,
울어서 눈이 벌개진 나에게 그러셨다.

그냥 가져가라고.
그 책은 아마도 네가 임자인 것 같다고.
그러시면서 나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네게 그 책이 그렇게도 의미있다면, 그것은 이미
너의 것이라고.

그렇지만 나는 그 책을 절대로 거저 갈 수가 없었다.
그래야만 될 것 같았다.

오롯이 그 책을 나의 것으로 하기 위해, 나는 며칠을
모아 책값을 만들어 먼저 책을 내어준 고마운 그분께
가져다드렸다.

그래서..... 그 책은 나의 것이 되었다.

여름방학이 가까와오던 때였는데, 난 그 방학내내
그 책을 읽고 또 읽으며 수필이란 문학의 장르에
흠뻑 젖어들었다.

자신의 진솔한 이야기도 문학이 될 수 있다는 것은,
나에게 있어서 어쩌면 경이로움같은 것이 아니었나싶다.

시라든지, 소설이라든지... 뭔가 거창한 것을
이뤄내야만 그것이 문학일거라고 생각한 나에게 있어,
삶의 진솔함을 담담히 써내려가는 것도 이처럼 사람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것이 나에게는 커다란 발견이었다.

박연구님.
그 책에 나온 그 님의 생활은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궁상스럽고 지독히도 가난한 삶이 아니었나 싶다.

자기집으로 된 화장실 하나가 변변한게 없어, 아침마다
공중화장실에서 길게 줄을 서서 용변을 봐야 할 만큼
그의 생활이란 비참했다.
(지금 생각과 기준으로 볼때)

그렇지만 그와 아내를 비롯한 그의 가족은 그 척박한
삶속에서 아기자기한 삶의 향기를 품어내고 있었다.

그 어떤 고상한 삶과 풍요가 주는 향기로움과는 달리,
그들의 집요한 삶의 욕구와 분수를 알고 스스로 만족하며
사는 고매함을 나는 너무 일찍 읽어버렸다고나 할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 분의 진솔한 그 글 한편 한편이,
나에게 있어서는 마음 속의 절규를 털어내는 고달픈
신음소리처럼 내 마음에 메아리져왔다.

그 뒤로 나는 많은 분의 수필집을 보았다.
여류수필가는 물론이며, 특히나 고등학교때는
김형석교수님의 수필에 거의 심취하다시피 했었다.

지금 나는 에세이를 고집하며 통신상의 글을 거의 7년
이상 써오고 있다.

내 글을 읽고 단 한사람이라도 나의 진심을 알고,
다 보여지지 못한 내 마음을 읽어준다면.....

나는 그 옛날 내가 구석진 서가에 홀로서서 울며 읽었던,
그 느낌을 누가 나에게 단 한번이라도 느꼈다면.....

이제 더 이상 내가 무엇을 더 바랄것이며,
또한 무엇을 더 탐할것인가.

홈을 열고 나서 나는 더 더욱 물기오른 들풀처럼
거의 매일이다시피 글을 써오고 있다.

어느 순간 나의 한계를 느낄 날도 오겠지만,
나는...... 절망치 않으련다.

내가 하고픈 말, 내가 이 세상에 있다간 흔적이
바로 나의 한걸음, 나의 글 한줄임을 알기에.

나에게 커다란 그 무엇을 주어, 그 느낌을 이처럼
평생 간직하게 해주신 박연구님께 나는 진심으로
감사함을 느낀다.

한번도 직접 뵌 적 없지만, 그분이야 말로 진정
어쩌면 내 마음의 영원한 스승일터이므로.




칵테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