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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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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대목에서나 잘 우는 여자


BY 후리랜서 2000-12-06

나는 못 말리게 눈물이 많은 여자이다.
해가 떠도 울고,달이 떠도 울고,
기뻐도 울고,슬퍼도 울고...
아주 먼 옛날에 '눈물의 여왕'이라는 타이틀이
붙은 영화배우도 있었지만,암튼 나도 눈물에 관한 한
여왕이라는 칭호가 어색하지 않을 정도이다.
중학교때도 같은 반 친구와 사이가 틀어져 마음이
상했었던 적이 있었다.
나는 눈물이 많은만큼 적대감정 또한 누구보다도
못 견디는 사람인지라, 수업시간에 막무가내로 찔찔
눈물을 보이고야 말았다.
방과 후에 "너 막내니?"하고 선생님께서 관심을 보이신 걸
보면 다들 '우는 사람은 약하다'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것 같았다.

몇해 전,목순옥여사(작고한 천상병 시인의 아내)의
'날개 없는 새 짝이 되어'라는 책을 읽을때 이다.
아마도 책을 읽으면서 그렇게 많은 눈물을 쏟아내기는
처음이자 마지막이리라.
아이같이 천진난만한 남편을 보필하며 살아온 시간에
대한 기록이었는데, '천사'가 따로 없었다.
남편도 천사,아내도 천사...
그래서 '소풍'이라는 유명한 시를 쓸수가 있었나 보았다.
크리넥스 한 통(내가 울기 시작하면 남편은 휴지통부터
대령할 정도로 세련되었다,눈물에 관한 한)을 다 써 버릴
정도로 눈물샘이 터진 듯 하염없이 울어 제꼈다.

그리고 얼마 후, 내가 살던 지하에 세를 얻으러 온 여자가
있었다.
이상하게 부엌이 딸린 방 한칸의 지하방은 결혼 하기전,
동거하는 남녀가 꼭 세를 들어 왔었다.
그 여자도 어떤 남자와 동행을 했는데 첫 대면인지라
그렇고 그런 사이겠지 싶었다.
방을 둘러보고 우리가 사는 1층에 와서 계약을 하는데
"언니, 그 사람들 결혼해 나간다고 하니까 무지 쌤이
나는거 있죠?"
오잉~~~
갑자기 머리가 띵해 왔다.
처음보는 나에게 넙죽'언니'라고 부르는거에도 놀랐고,
또 쌤이 난다고 말해 버리는(날 언제 봤다고) 그녀의
솔직함에 머리가 비잉 도는것 같았다.
그러면서 옆에 앉은 남자는 시동생이 될뻔한 사람이고,
자기는 그 남자의 형과 1년 정도 동거를 했었는데
교통사고를 당해서 남자는 죽고,같이 살던때의 추억이
어린 그 집에서는 도저히 혼자는 못 살겠어서 이사를
오는 거라고 했다.
그녀가 어떻게 계약을 끝내고 갔는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어떡허니? 어떡해? 불쌍해서 어떡해?" 하면서 집이 떠나가도록
통곡을 했다.
"야,이놈아 정신차려"
"넌 으째 사람이 그러냐?"
휴지로 내 눈물을 찍어내며 달래주던 남편은 끌끌 혀를 차며
안타까워했다.
"니 맘 잘 알어. 그래도 좀 진정해라."
"야, 방자 엄마야!"
나를 달랜답시구 버럭 소리를 질러대기까지 했다.

그리고 그녀가 이사를 왔다.
이틀 후인가,그녀가 급하게 부엌문을 두드렸다.
"언니! 하수구가 맥혔나봐.물이 안 빠지네?"
부리나케 내려가 보았다.
조그마한 부엌에 물이 안 빠지고 있었다.
고여있는 물을 보고 있자니 뭐에 얹힌듯 마음이 답답해 왔다.
"알았어.내 금방 사람 불러 고쳐줄께"
말은 그리 했지만 눈물이 또 솟구쳐 꽁지빠지게 도망나와
내집 마루에 들어서자마자 또 울어대기 시작했다.
아니 하필 그 여자가 이사 오구 하수구가 맥힐게 뭐람?
마음도 심란할텐데?
그 여자 앞에서 눈물을 보이면 안되겠기에 겨우 참고
내집에 들어서서 통곡을 해댔다.
울면서 남편과 함께 하자보수집을 찾아 헤메 다녔다.
단골이 있었지만 항상 늦장을 부리는 지라 그 집에다
맡기기가 싫었다.
촌각을 다퉈 막힌 하수구를 뚫어주고 싶었다.
무지 추운 겨울이어서 쌩쌩 부는 바람 속을 눈이 퉁퉁 부은채로
보수집을 찾아 다녔다.
겨우 찾아내 하수구를 뚫어 주었다.
체한 듯 얹혀있던 내 가슴도 뻥 뚤리는것 같았다.
"너 정말 못 말린다"
우는 나를 보고 남편이 항상 하는 말이다.
길에서도 잘 우는 여자라 남편은 혹시 '나쁜 놈'의 누명(?)을
쓰고 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또 아무데서나 잘 우는 여자라 '사연 많은 여자'로 보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런 오해를 받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항상 뒷전이고,
영화를 볼때나,음악을 들을때,
지하도에 있는 걸인을 볼때나,
가난해도 열심히 사는 사람들을 대할때,
항상 피터지게 싸우는 사람들을 볼때...
남의 시선도 아랑곳없는 내 눈물많은 '사연'은
아마도 죽을때까지 끝나지 않으려나 보다.
마치 내가 살아있단 증거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나 어른 맞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