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 한마디
-'보리피리'로 유명한 한하운님의 시입니다.-
간밤에 얼어서
손가락이 한 마디
머리를 긁다가 땅 위에 떨어진다.
이 뼈 한 마디 살 한 점
옷깃을 찢어서 아깝게 싼다.
하얀 붕대로 덧싸서 주머니에 넣어둔다.
날이 따스해지면
남산 어느 양지터를 가려서
깊이 깊이 땅 파고 묻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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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살이 되던 해 겨울 아침에 눈 뜨자마자 이 시집을 처음 읽었더랬어요.
한 편만 읽어야지, 했는데 쏟아지는 눈물에 차마 책을 덮을 수가 없었지요.
시인의 아팠던 마음이 구구절절 전해져 한 숨도 쉬지 않은 채 읽어내었습니다.
한하운 시인은 문둥이였어요.
14살 때 "나병"임이 판명돼 57세가 되어 돌아가시던 그 해까지 평생을 문둥이 인생으로 사셨지요.
뺨이 문드러지고 손가락,발가락이 뚝뚝 떨어져 나가고 손목만 뭉퉁이 남았다고 했어요.
위 시가 실려있는 '보리피리'란 시집에서 한하운님은 자신은 사람이 아니라고 했어요. 그렇지만 문둥이도 아니라고 했어요. 다만 버섯이라고, 사람 사이에서 살아가는 버섯이라고 했어요.
사람들이 저를 온전히 보아주지 않아 사람들 틈바구니에선 신호등도 맘대로 건너지 못한다고, 성한 사람들이 먼저 앞다투어 건너 버려 항상 혼자 뒤에 서 있다고, 그 들 틈에 섞여 함께 건너가고 싶다고도 고백했어요.
몸이 멀쩡히 성한 사람들은 몸이 불편하거나 아픈 사람들 앞에선 위세를 떠는 나쁜 마음이 있는게 아닌가 싶어요.
장애인이나 투병인들이 아프고 싶어서 아픈게 아닌데, 몸이 성한 사람들은 죄를 저지르고 싶어 저지른 사람들에게 대하듯 잔뜩 찌푸린 표정으로 "왜 그렇게 되었느냐?"는 투의 질문만 해대니 이 땅에선 온전한 몸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살지도 말아야겠어요.
몸이 불편한 이들에게 "왜 그렇게 되었느냐?"고 물어선 안되지요.
그건 나쁜 짓을 한 이들에게나 "왜 그런 짓을 했느냐?"고 물을 때나 쓸 말이지요.
그건 우리에게 "왜 그렇게 생겼냐?"고 묻는 것과 같아요.
"도와주겠다"고 말해야지요. "그래도 상관없다"고 말해야지요.
아니, 아예 아무말도 말아야지요. 아무말도 생각나지 말아야 하지요.
그래서 그들이 우리에게서 외롭지 않게 해야 하고, 우리에게서 쓸쓸하게 하지 말아야 하고, 우리에게서 "죄인"이 된 듯이 고개숙이지 않게 해야겠어요.
그리고 오히려 성한 사람들의 마음의 장애나 위세 부리는 병에 "왜 그렇게 되었느냐!"고 손가락질 해야겠어요.
정말요.
꼬마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