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 구름이라도 끼면 비가 오려나
혹여 파리가 꼬여 구데기라도 끓지 않을까
노심초사 하루에도 몇번씩 하늘을 올려다보곤 하는 하루 하루다.
오늘은 옥상에서 채반위에 빠알갛게 펼쳐진 곶감이 가을 하늘을 유감없이 받아들이고 있다.
어제까지 구름이 끼여 애간장을 끓게 하더니 오늘은 쾌청 그 자체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아들은 첫인사가 곶감부터 내노라고 야단이다. 조금만 참아라 그것도 햇빛을 받으면서 제자리를 찾고 있는 중이니.
그 아이 몫으로 오늘은 말랑말랑하고 먹기 좋은 것을 골라 네다섯개 냉장고에 집어 넣어 놓았다.
생각만해도 침이 꿀꺽 넘어가는 그 맛은 정말 일미이다.
오죽하면 옛날 속담에 호랑이가 잡아간다고 해도 그치지 않던 우는 아이를 곶감으로 달랬을까.
며칠전 이미 1년동안 제사 지낼 몫은 좋은 것으로 가려서 냉동실에 잘 보관해 놓았는데 그날 나는 얼마나 마음이 뿌듯했는지 경주이씨 집안으로 시집와서 처음으로 조상님께 며느리로 인정받은 느낌이 들었다.
해마다 힘들더라도 거르지 말고 준비해 놓기로 마음 먹었다.
아! 가을 나는 우리집 지붕 너머 빨갛게 익은 감나무와 그리고 그 우람한 참나무 사이사이로 구름 한점없는 쪽빛 하늘을 볼 때 가슴이 시리도록 가을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럴때면 텃밭에 털썩 주저 앉아 마냥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때로는 잡다한 일들이 너무 많아 시골 생활이 짜증이 날때도 있지만 순간 순간 넋을 빼앗고 마는 정경들이 도시 생활에 대한 나의 미련을 과감하게 밀쳐내곤 한다.
긴 장대 끄트머리에 빨간 양파 자루를 매달아 한개씩 한개씩 감을 따는 우리 신랑도 그때 만큼은 사랑하게 된다.
소쿠리에 가득히 담기는 감들.
고모네로,작은집으로,외갓집으로, 혜선이네로 자루에 담아 실려 보낸다.
우리가 시골에 살면서 누군가에게 가장 푸짐하게 줄수 있는것 그것은 오직 잘 익은 감뿐이다.
그러면서 감나무는 서서히 나목이 된다.
감나무는 다른 나무와 달리 첫서리만 맞으면 그 붉은 잎새가 금방 뚝뚝 떨어진다.
수북히 쌓인 낙엽만큼이나 가을이 깊어 가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전령사처럼....
빈 나뭇가지에 열매 마저 다 따고 나면 가을의 허허로움이 밀려오지만 높다란 가지 끝에 까치밥으로 서너개씩 남겨 놓은 감들을 바라보면 어느 결엔가 공허해진 마음이 풍요로워짐을 느낀다.
옛부터 우리 선조 들은 하찮은 생물의 양식까지도 헤아려 주는 여유로움이 있었다.
그것은 대대로 이어져 우리의 풍습이 되어 어머니는 아들에게 그 너그러움을 가르쳐 주었고 며느리에게는 정성스레 곶감을 말려 조상을 기리는 법도를 가르쳐 주었다.
갑자기 시골집이 더욱 더 정겨워 진다.
떠나지 않고 그 자리에서 내 아들과 내 며느리에게
내가 받은 지혜를 그들에게 고스란히 물려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