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 오늘 저녁에 집에 갔다가 일요일 오전에
우리집으로 오려구.." "그래라.." 큰애는 금요일이면 종종 그런 식으로 전화를 하고는 봇짐을
꾸려서 친정 나들이를 한다. 전화를 끊고 나면 풀어져 있던 일상이 그 때부터 분주해지기
시작한다. 우선 청소기부터 돌려야
한다. 구 개월 반 된 손녀는 집안 곳곳을 발발 기어 다니면서
저지레를 벌리기 일쑤여서 위험한 건 다 책장 위로 올라 갔거나 수납장 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손녀가 와 있는 동안, 거실은 아이 기저귀, 옷,
장난감등으로 난장판이 되는 데다 딸 아이는 육아에 시달린 잠보충을 하느라 툭하면 누워 자기
일쑤이다. 손녀도 저를 모르는 체하는 제 어미보다는 내 품에 달라
붙으니 아기를 업고 밥을 할 때도 있다 ㅎㅎ 덕분에 주말은 주중보다 더 바쁜 일상이
된다. 게다가 내가 하는 운동이 주중엔 각자 하다가 주말에만
모여 하는지라 토,일요일 이틀은 가족끼리 야외에 가는 것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런데도 주말마다 딸,사위 밥해 먹이랴, 손녀와 놀아주랴
하다 보면 숙제인 책 한 줄 읽기도 쉽지가
않다. 주말이면 그런 식으로 북새통을 떨고
지나간다. "손주는 오면 반갑고 가면 더
반갑다" 손주를 본 사람들이 하는 우스갯
소리다. 물론 있는 동안은 힘들긴
하다. 그런데도 손녀가 고사리 손을 흔들며 가고 나면 뒤돌아서 바로 아이가
그리워진다. 가서 울지나 않는지.. 잘 놀고
있는지.. 지금은 덜해졌지만 얼마전까지만 해도 늘 아기가 눈앞에
어른거렸다. 아기때문에 '한집에 살아야 하나' 하고 고민이 다 될
정도였다. 사실 손녀만 예쁜 게 아니라 아기들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꼭 들여다
보고 어르고 지나가는 버릇이
있다. 아기가 유난히 눈앞에서 아른거리는 건 손녀라서, 풀꽃처럼 여린 생명이라
애잔해서.. 그런 줄로만 생각했는데 '아기가 보고 싶다' 하면서 느끼는
건 내 입술에 닿았던 아기의 볼, 간지럽혀 주던 귓볼, 품에 안겨들던 두 팔의
보드라운 감촉을 그리워 한다는 것을 알았다. 오감 중에
가장 원초적인 감각이 촉각이라 한다. 원생동물이 촉각만 발달돼 있는 것도 이와 같은 이치일
것이다. 나중에 발달한 게 시각이라고
한다. 자본주의 사회가 심각한 건 '시각중심'이 되어서 그렇다는
것이다.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한
세상.. 시각을 중요시하다 보니 필요 이상의 비싼 옷을 걸치고, 비싼 곳에 가서
비싼 음식을 먹고, 명예에 목을 매고. 학벌에 매달리고, 특정한 지역에서 사는 걸 신분상승으로
착각하면서 산다. 보통사람도 강남에 입성하는 순간 자신들을 특수한 신분으로 착각하더라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그 얘기를 해줬더니 천박하다고 한마디씩들
했다. 강남에서 살지 않는 이들이었다
ㅎㅎ 기를 쓰고 강남에 살아야 한다고 하는 이를 실제 알고
있다. 보고, 보여주는 괴로움이
큰 세상이다. 인간은 시각중심을 버리고 촉각중심으로 살아야 한다고
한다. 촉각을 자극하면 몰입이 쉬워지기 때문에 그럴까.. 몰입하는 순간 의식도 열릴
것이다. 사람들이 첫사랑을 쉽게 잊지 못하는 건 처음으로 느낀 떨림의 경험이 강렬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한다. 온몸으로 느낀 환희가 오래도록 몸에
남아 기억으로 저장되는 건
아닐까. 옳은 얘기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이는 스킨십을 많이 해줘야 한다는 말도 이와 같은 맥락이지
싶다. 웃으면서 손을 한번 잡아주거나, 안아주는 것이 백마디 훈계보다 훨씬 마음을
전하는데 효과가 있을 것이다. 스킨십을 하면서 서로의 온기가 전해지면 의식이 풀어지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사실 기분이 나빴다가도 말없이 안아주는 것만으로도 얼어있던 마음이 풀릴
때가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포옹에 익숙치
않다. 나이 든 사람들이 자기 감정을 표현하는데 서투르고 경직돼 있는 것도
스킨십이 없는 문화에 일부 원인이 있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남의 살 닿는 것을 유독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그런 사람은 사랑을 받아보지 않아서, 그러니까 스킨십에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 건 아닐까라고 진단하는 사람이
있다. 나 역시도 아이들을 자주 안아주지는 않았던 것
같다. 막내딸 만은 지금도 응석 부리듯이 엉겨오지만
말이다. 이제는 손녀딸만 품에 안을 게 아니라 가족들을 자주 안는 습관을 들여야
할까보다. 사위 손도 잡아주고, 당기지는
않지만 남편에게도 손을 내밀어줘야 할까 .. 인간적인 차원에서라도
말이다. 몸보다 더 멀어진 마음이다 보니 남편에게만큼은 쉽지는
않지만 밉다한들 가족인데 차별을 둘 수는 없지 않은가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