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고비만이 산을 넘어도 또 산이 있는 건 아닌 모양이다. 사람의 욕심도 산 넘어 산이다.
명퇴를 하기 1년 전이었을까? 친구들 모임에서 명퇴를 말하며 글을 써보고 싶다는 얘기를 꺼낸 적이 있다. 그때 한 친구가 책으로 내보라는 말을 내게 했다. 난 거기까지는 자신이 없었다. 자비를 들여 책을 낼 마음도 없었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내가 원하는 글을 써낼 수 있을 거란 자신이 없었다. 쓸 수만 있다면 그걸로 족하다 생각했다. 더는 바라지도 않았다. 그 이상을 생각할 상황이 아니었다.
한데 작품 두 편, 책장으로 1000여 장을 써놓고 나니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내 작품이라는 인증을 받아두고도 싶었다. 훗날에도 내 이름이 작품과 함께 남겨지길 바라는 마음이 스멀스멀 기어 나왔다. 하지만 그러려면 작품을 들고 출판사를 기웃거려야 했다. 그 용기가 차마 나지 않았다. 50이라는 생물학적 나이가 버겁게 느껴진 게 처음이었다.
난 궁리에 궁리를 했다. 그러다 생각해낸 게 블로그였다. 블로그에 올려놓으면 그래도 내 이름과 함께 오래오래 남겨지겠지. 삐쩍 말라 남들 보기에도 곧 죽을 거 같은 여자가 몸은 생각지 않고 꿈만 꿔대고 있었다. 반면 몸은 위험경고를 자꾸만 보내고 있었다. 입은 바짝바짝 말라갔고, 먹을 건 한없이 당겼다. 난 혈당을 떨어뜨려야 한다는 생각에 극단적인 식이요법을 강행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혈당은 떨어지지 않았다. 식욕만이 날 끊임없이 괴롭혔다.
아침을 먹고 뒷정리를 하고 나면 다시 먹을 게 생각났다. 그때부터 난 멍하니 앉아서 점심때가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점심을 먹고 나서도 마찬가지였다. 먹자마자 다시 저녁을 기다렸다. 그러다 번번이 무릎을 꿇기도 했다. 배고픔을 견디지 못하고 먹을 걸 허겁지겁 입에 몰아넣기도 했다. 그래야만 속이 후련해졌다. 먹을 것에 대한 욕구도 조금 가라앉곤 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난 책을 낼 수 있는 방법만을 생각했다. 인터넷에 들어가 블로그 만드는 방법을 찾아 읽으며 블로그를 만들었다. 내 작품 연 속에 나오는 피네방이었다. 내 사이버 작품 방이었다. 거기에 그동안 써 놓았던 글을 올리며 내가 가꾸는 화초도 사진으로 찍어서 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도 이내 심드렁해졌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블로그는 쓸쓸했다. 가끔 누군가 읽는 사람이 있기는 했지만 단지 몇 명일뿐이었다. 그 걸로는 양이 차지 않았다.
난 다시 다른 방법을 찾아 헤맸다. 하지만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일단 접기로 했다. 급할 건 없었다. 몸이 보내는 경고는 중요하지 않았다. 살아 있는 걸로 충분했다.
내가 생각해도 난 미련함과 어리석음으로 똘똘 뭉친 고집불통이다. 그 고집만큼은 지금도 크게 달라진 게 없으니 현재진행형이다. 누가 어리석다고 혀를 끌끌 차도 어쩔 수가 없다. 죽을 때까지 그렇게 살아내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