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챙겨 먹고 잠시 숨을 돌리는데 밖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려온다. 목소리가 젊고 또랑또랑한 게 중학생, 아니면 고등학교 1학년 쯤? 뭔가를 두드려대면서 가끔 외쳐대기도 한다. ‘별스런 녀석이네. 도대체 어떤 녀석일까?’ 호기심이 인다. 난 베란다로 가서 밖을 내다본다. 두서너 명 무리지어 갈 남학생들이려니 하던 내 눈에 가방을 맨 남자애가 혼자 걸어가고 있는 게 보인다. ‘저앤 아니구나.’하고 다시 두리번거린다. 엉덩이에 물병을 대롱대롱 매단 채 걸어가고 있는 남자가 눈에 들어온다. 손에는 솥뚜껑 같은 물건이 들려 있다. 별스런 남자네 하며 바라보고 있는데 양팔이 벌어진다. 그러더니 이어서 꽝-하고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온다. 뭐라 외치는 소리도 함께다. 정신을 놓은 남자인가보다 한다. 젊어 보이는데 어쩌다 쯧쯧. 남자가 시청 쪽으로 걸어가는 걸 잠시 쫓다가 안으로 들어온다. 들어오는데 간밤의 소리도 겹쳐서 다가온다. 난 10시를 넘겨 잠자리에 드는 날이 드물다. 어려서부터 그랬으니 아마도 내 체질인 거 같다. 그러니 남들 휘젓고 다닐 시간이 내겐 한밤중이다. 내 집은 그런 사람들이 토해내는 소리를 걸러줄 방패막이 없다. 그대로 들어온다. 게다가 내가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자야 하는 체질이다. 닫아놓으면 숨이 막히는 거 같아 아주 추운 한겨울이 아니면 조금이라도 열어놓는 게 버릇이 되었다. 그러니 소리가 담을 넘어오는 게 이상할 것도 없다. 한데 문제는 한참 쿨쿨 자고 있는 내가 그 소리에 간간히 잠에서 깨어난다는 거다. 지난밤에도 그랬다. 들려오는 소리로 보아 한 무더기의 사람들이었다. 소리를 낮추는 것도 없이 있는 대로 다 질러댄다. 불러대는 소리, 외쳐대는 소리가 고스란히 귀에 와서 꽂혔다. 난 시계를 봤다. 1시 20분을 향해 바늘이 움직이고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잠자리에 들어 잠귀신에게 끌려가 있을 시간이었다. 그걸 모르지도 않을 텐데. 그런 배려는 조금도 없는 소리였다. 난 또 대한민국 참 좋은 나라야 한다. 남한테 피해를 주면서도 아무렇지도 않을 수 있는 나라, 대한민국. 애도 어른도 다르지 않다. 어른이 하는 꼴을 그대로 닮아가는 아이들이다. 한데 어른들은 자신들은 멀쩡한데 애들이 못됐다고 탓을 한다. 자신들은 새벽 1시건 2시건 3시건 술 마신 티를 내며 한껏 목소리를 높이면서도 그건 돌아볼 줄을 모른다. 낮엔 멀쩡한 사람이 밤에 술 마시고 길에 나뒹굴어도 철판 한 번 깔면 그만이다. 대한민국이니까 통하는 거다. 그러고 보니 내 집이 문제다. 보령에 있는 내 집을 세주고 논산으로 세를 얻어 옮겨오면서 남향이고 앞이 확 트인 게 맘에 들어 계약을 했다. 그땐 앞에 죽 늘어서있는 다세대주택만 눈에 들어왔었다. 한데 이사 오고 나서 보니 바로 앞에 노래방이 떡하니 자리 잡고 있었다. 주택가 바로 앞에 노래방이 있는 거야 내 힘으로 할 수 없으니 어쩔 수 없다 친다. 맘에는 들지 않지만 말이다. 그래도 밤에 설쳐대는 것은 좀 그렇다. 다들 배운 사람들 아닌가 말이다. 낮엔 사무실에 매여 있는 사람들이니까. 한데 상식이 있어야 할 사람들이 머리만 채우고 가슴은 비워둔 건지 남들 생각하는 마음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다. 불 꺼진 집이 즐비한 한밤이라는 것은 안중에도 없이 마음껏 소리를 퍼낸다. 그 덕에 난 간간히 잠에서 깨어난다. 그때마다 난 ‘대한민국 참 좋은 나라야.’라고 중얼거린다. 내 생각에 대한민국은 술꾼들에겐 참 살기 좋은 나라이다. 세상의 온갖 소리들이 걸러짐 없이 흘러들어오는 내 집에서 차츰 마음이 뜨고 있다. 물론 이 소리들 때문은 아니다. 정말 귀촌하고 싶다는 생각과 500m 밖에 지어지고 있는 아파트가 시야를 가로막는 게 싫어서다. 난 앞이 확 트인 걸 좋아하는데 말이다. 보령 내 집도 앞이 확 트여서, 공원과 그 넘어 있는 논밭, 성주산까지 거침없이 보여서 미분양이 즐비할 만큼 사람들이 주저할 때임에도 망설이지 않고 계약했던 건데. 그래도 함께 더불어 사는 세상에 자는 사람 생각해서 조용조용 즐겨주면 어떨까? 노래방에서 실컷 놀았으니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얌전하다고 섭섭할 거 같지는 않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