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드가 잘 맞는 편인 딸과는 종종 둘이 오붓하게 여행을 다녀보았지만 아들과는 첨인 것같다.
아들은 오래 외국에서 지냈고 군대도 다녀오고 그러다보니 집에서 머문 시간이 그리 많지도 않았고
또 여행이라고 차타고 어디 멀리 다니는 것을 싫어하는지라 좀처럼 기회가 없었는데
웬일인지 이번엔 흔쾌히 따라나선 것이다.
집에선 종알종알 말시중도 잘 드는 녀석인데 밖에 나서니 웬일인지 통 말 한 마디가 없다.
서로 아무말도 없이 가끔 각자 자기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면서 다니다보니 약간은 심심했지만
그래도 왠지 동행이 있는 게 든든했다.
기껏 남편을 챙겨서 가려고 한 달 전에 미리 게스트하우스며, 기차표를 예매했건만
바로 며칠 앞두고는 심경의 변화가 왔다고 안 가겠다는거다.
원래 일중독이라 편안히 노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랄까? 자라온 환경이 그래선지
여행을 싫어하는 사람인데 나이 먹어 언제 또 장성한 자식과 여행을 가보겠느냐며
강권한 내가 잘못이지.
다신 내가 데려가나 봐라....하고 화를 내도 요지부동
딸은 원래 학교에서 단체 문화탐방으로 가본 적이 있는데다 다른 스케줄이 있어서
진작에 예약을 안했지만 아빠 대신 가자고 권해도 자기가 한 번 가본 곳은 가지 않는 게
철칙이라네.ㅠ
결국 기차표를 하나 취소했다.
문제는 숙소, 남편이나 아들이 게스트하우스 이용을 불편해할까봐 가족실로 예약했는데....
그래도 연휴에 취소하면 다른 방을 구할 수도 없어 울며겨자먹기로 그냥 가족실 넓은 방에서
각자 더블침대 하나씩을 쓰며 뒹굴뒹굴 잘 묵고 왔다.
경주 양동마을, 순천 낙안읍성을 가보고 내 언젠가는 꼭 안동 하회마을에도 가보리라
마음먹고 있던 터라 처음부터 여행지는 안동으로 정했다
과연 아들이 전통적인 것을 좋아하려나 살짝 걱정도 됐으나 의외로(?) 아주 좋아했다.
임박해져서 인터넷을 폭풍 검색한 결과 하회마을 지나 병산서원도 꼭 봐야할 만한 곳이라길래
시간을 짰는데 안동은 의외로 시내버스가 드문드문 운행을 하는지라 시간이 빠듯해서
걱정이 앞섰다.
병산서원은 하회마을 가는 버스가 하루 세 번만 코스를 더 연장해서 간다고 하는데
마침 우리 기차시간과 딱 맞물려서 운좋게 가볼 수 있었다.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건물이 얼마나 예쁘고 위치가 좋은지...
배산임수의 지형에 조용하고 비포장도로를 한참 달려 산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는 병산서원
20분 정도 구경하면 다 돌아볼 수 있을 정도로 규모가 작은데
그래도 옛건물이라고 다 같은 건물이 아니고 건축 미학적인 측면에서 굉장히 훌륭한
서원중의 하나라고 하듯이 문외한인 내가 봐도 참 예쁜 곳이었다.
원래 역사에 관심이 많은 아들도 여기서는 공부가 저절로 되겠다며,
옛날에 이렇게 큰 통나무가 있었다는 사실이 놀랍다며 열심히 보니 뿌듯했다.
하회마을은 말할 나위도 없이 워낙 많이 알려진 곳이라 특별한 사진은 없다.
아들은 의외로 부용대를 참 좋아했는데 자기는 그런 자연적인 모습 자체가 좋단다.
변산반도 채석강엘 가봤으면 참 좋아했겠다.
그런데 배타고 건너가보자니까 돈 내는거면 굳이 뭐하러 그러냐며 거절해서 그냥 말았는데
나중에 부용대에서 내려다보는 하회마을이 아주 아름답단 소릴 듣고 둘이서 땅을 치고 후회를 했다ㅠ
왜 그 생각을 못 했을까?ㅠ
숙소 바로 앞에 있던 월영교(月映橋) 한자의 뜻에 걸맞게 물에 비치는 모습이 참 아름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