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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호지를 바르며


BY 매실 2011-05-18

전에 살던 아파트도 안방 이중문 중 안쪽문이 창호지를 바른 문이었는데

지금 이사와 사는 이 아파트에도 역시 안방에 창호지문이 네 짝 있다.

 

이사올 때는 그럭저럭 깨끗했는데 3~4년 살다보니 창호지가 노랗다못해

아주 짙은 황토색으로 변해가고 있어서 낮에도 방이 어둠침침하고

지저분해서 견딜 수가 없게 되었다.

 

진작에 새 창호지를 바르고 싶어도 똑같은 창호지를 구하기 어려운 게 문제였다.

전에 살던 아파트에서도 문방구에서 창호지를 구해다가 바르려니

폭이 좁아 몇 번을 덧대어 붙였는데 하도 얇고 약해서 작업이 힘들었기 때문에

그런 일을 또 다시 할 엄두가 안났다.

 

아파트를 지을 당시에는 아마 대량으로 주문했던지 폭도 넓고 길이도 길고

종이질도 두껍고 튼튼한데 그런 걸 개인적으로는 구할 수가 없다.

 

옛날 나 어릴적엔 질기고 두꺼운 한지가 참 많았는데...

 

이번엔 좀 나아졌을까? 기대를 안고 문방구에 가보았다.

색깔별로 예쁜 한지는 참 많은데 원래의 흰색은 역시나 크게 나아진 게 없었다.

할 수 없이 그 중에서 그나마 가장 질겨보이고 폭이 넓어보이는 걸로 여섯장을 사왔는데

집에 와서 대보니 문에 비해 턱없이 좁고 짧았다.

 

문은 네 짝인데 이리 저리 오려서 문 두 짝을 붙이고 나니 6장을 다 써버렸다.

 

그래서 지금 우리집 안방 창호지문은 두 짝은 새하얗고 두 짝은 우중충한 채로

아주 대조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ㅎ

 

맨처음 스프레이로 물을 충분히 뿌려주고 잠시 후에 묵은 창호지를 떼어내니

종이 위에 먼지가 켜켜이 쌓여서 그런지 쉽게 찢어지지도 않고

통째로 문살에서 잘 떨어져나왔다.

 

문살만 휑하게 남으니 그 모습이 이상한지 우리 강아지 매리가 문살 사이로 고래를

내밀었다 디밀었다 하면서 흥분하고 난리도 아니다.ㅎ

 

밀가루를 풀어 조금 쑤어놓은 풀을 문살에 고르게 바르고 찢어지지 않게

조심해서 창호지를 붙이고나서 그 위에 스프레이로 물을 또 충분히 뿌렸다.

그래야만 팽팽하게 잘 마르기 때문이다.

 

남편이 초상집에 문상하러 간 밤에 나혼자 강아지와 씨름을 하면서 발랐는데

아침에 일어나보니 세상에....문이 새하얗고 얇아서 햇살이 그대로 다 들어오니

방이 아주 환해졌다.

 

젖었던 창호지가 팽팽하게 잘 말랐다.

손으로 치면 통통 소리가 날 만큼.

기분이 참 좋다.

 

내가 어릴적 살던 집은 수백년 내려온 까만 기와집이었다.

 

조선시대때 한자리 하던 양반이 살던 집이라는데

오랜 세월 관리가 제대로 되지않아 서까래가 썩어내리고 부실하던 집을

우리 부모님이 내가 태어나던 해에 거금(?) 십만원을 주고 사서 수리를 하셨다고 했다.

 

해마다 비가 많이 오면 아버지가 진흙을 이겨 돌과 함께 담을 새로 쌓고

여기 저기 손보시던 기억이 난다.

대청마루에 유리문도 새로 달고 나무기둥과 마루에 페인트칠도 몇 번 했던 것같다.

 

해마다 가을이면 집안에 있는 문이란 문은 다 떼어내서 창호지를 새로 발라

월동준비를 하곤 했는데 나는 그게 무척 귀찮았다.

 

왜냐면 방마다 안쪽 미닫이문과 덧문, 그렇게 4개짜리 문짝이 보통 열 개도 넘으니

집안에 있는 문을 전부 떼어놓으면 엄청 많았는데 그걸 우리가 나서서 빗자루로

문살에 쌓인 먼지를 다 털고 걸레로 전부 닦아야했고 창호지 바르는 부모님을

하루종일 도와야했기 때문이다.

 

가을해가 하도 짧아서 서둘러 마치지 않으면 새로 바른 문이 다 마르지 않아서

도로 문틀에 걸 수 없기 때문에 무척 서둘렀던 것같다.

 

그러다보니 기껏 심부름하고도 핀잔 듣기 일쑤고 하루종일 종종거리는게 힘들었다.

 

그래도 잘 마른 문을 도로 제자리에 달아놓고 방에 들어앉아있으면 기분은 참 상쾌하고

좋았다.

그 때의 창호지는 두꺼워서 지금보다 보온도 잘 됐던 것같고 1년간 낡고 더러 찢어져서

허술하던 헌 창호지를 뜯어내고 새로운 창호지를 붙이고 나면 더 탱탱하고

방도 더 환하고 따뜻해서 여러모로 좋았다.

 

문고리 주변은 사람손이 자주 닿아서 때도 잘 타고 찢어질 염려가 있기 때문에

한 겹을 더 바르는데 거기에 나뭇잎이나 꽃잎 말린 것을 넣어 모양을 내기도 했다.

 

그 당시에는 힘들고 귀찮은 게 싫어서 창호지 바르는 날이 너무 싫었는데

다 완성되고나서 좋았던 기분이 아직까지 생생한 걸 보니

그 때 좀 더 즐거운 마음으로 할걸 그랬다는 생각이 든다.

 

늦게 돌아온 남편은 이런걸 어떻게 나혼자 척척 해낼 수 있는지 무척 신기해한다.ㅎ

한옥에서 자라면서 해마다 갈고 닦은 솜씨라는 걸 알기나 할까?

 

지금 내 친정집은 오래전에 허물고 슬라브집을 새로 지어 한옥은 흔적조차 없다.

 

하지만 내 기억속에는 사람이 그 아래 앉으면 눌리는 기분이 들어 서둘러 피할 만큼

묵직해보이던 아주 커다란 대들보,수많은 서까래,사이사이에 하얗게 회칠한 천정,

넓은 대청마루,툇마루,장지문,덧문,돌이 둥글게 닳은 댓돌,안마당,바깥마당,

움푹 들어가있던 부엌,텃밭이 있던 뒷마당,아버지가 굵은 밧줄을 꼬아 그네를 매주셨던

행랑채 문간,..그네를 신나게 타다보면 내발끝이 처마밑에 닿기도 했는데...

모든 게 그대로 아주 생생하게 남아있다.

 

새집을 지을 때는 점점 누추해지고 겨울에 너무 추워서 지겹던 한옥과 이별하는게

그저 좋기만 했는데 이제는 사진속에도 남아있지 않은 그 집이 가끔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