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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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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의 묘미


BY 박시내 2010-11-04

다섯째막내인 나는 평생 공부하란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엄마는 오직 장남인 큰오빠에게만 엄청나게 올인을 했었지.

내 책가방은 항상 현관에 있었다.

전과목을 다 들고다녔다.  책가방을 챙기는것 조차 귀찮았기때문이다.

문제는 도시락이었다.

아침마다 "왜 도시락통을 안내놨어!!" 하는 화난 엄마의 목소리...

숙제도 안해갔고, 학교에 가서 숙제를 하곤했다.

초등학교땐 아이들이 담임한테 고자질을 하기때문에 화장실뒤에 가서 하거나

아니면 그냥 혼나면 그만이었다.

중고등학교땐 수업시간에 숙제를 했다, 영어시간에 다음수업인 수학숙제를 하고

수학시간엔 다음수업인 생물숙제를 하고....

그 대신 집에서는 테레비를 보거나, 음악을 듣거나, 그림(만화나부랭이)을 그리거나,

일기를 쓰거나,,, 내 시간이 많았다.

난 내가 좋아하는 과목만 공부했다.  그 과목의 수가 몇개안되는게 문제였지만...

고등학생때는 독일어가 너무 좋았다.

처음에 외우는게 많아서 그렇지, 무척 과학적(?)인 언어였다.

대학진학을 할때 독일어과를 지원했지만 똑 떨어졌다.

학력고사시절,,점수가 좋게 나올 리가 없었다.

그리고 내게있어 수학은 쥐약이나 다름이 없었다.

25문제, 한 문제당 2점씩, 50점짜리 수학은 총점을 깎아먹는 과목이었다.

학교다니면서, 중간고사니, 기말고사는 범위까지 공부하고 시험본 적이 한번도 없었다.

공부도 해보던 사람이나 하는것이지, 시험공부는 항상 벼락치기로 했기땜에 시간이 늘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재수를 했다.  재수를 하면서 미술학원을 다녔다.

도저히 공부로는 제법한 대학을 들어갈 자신이 없었기때문이다.

9월전까지는 아침10시부터 밤 10시까지 미술학원에서 입시미술을 외웠다.

입시미술이란게 예나 지금이나 외우는 미술이라고 생각한다.

거기에 약간의 재능?이 있으면 되는것이다.

중학교때에도 고등학교때에도 미술시간마다 미술선생님들의 칭찬,, 그리고

고등학교땐 미술선생님이 따로 불러 미술을 전공하면 좋겠다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난 독일어가 더 재미있었는걸..

암튼, 내 생애(지금까지) 재수하며 미술학원에 다녔을때가 제일 열정적이었다.

광화문에 있던 제법 지명도도 있고, 큰 미술학원이었는데, 광화문일대,서대문쪽에 있는

미술학원들과 연계한 소묘대회에서 꾀 잘 그리기도 하여 원장한테 칭찬도 받았다

당시, 나처럼 몇달 그림그리고 대학에 들어가는 사람들도 많았다.

중학교때부터 학원을 다녔던 아이들은 차라리 매너리즘에 빠져 더이상 실력이 안늘지만

재수하는 내 입장에선 똥끝이 타 들어가는 심정이었기땜에 굉장히 열심히 했다.

그리고 9월부터는 학력고사대비 문제풀이 학원에 다녔다.

난 이미 수학도 포기하고, 외국어는 영어대신 독일어를 보기때문에 , 실상  학원은

국어와 외우는과목때문에 다녔다.

종합반에 늦게 합류한 나는 맨 끝에 앉았는데, 내 짝은 공부를 안하는 아이였다.

매일 프로야구에 미쳐서 (그 당시 프로야구가 생기면서 엄청 유행이었다) 각종 신문과

스크랩들을 가져와서는 어떤야구선수가 좋은가에 대한 얘기만 했다.

내 옆분단 맨 끝에 앉았던 예쁘게 생기고 아주 새침한 아이는 늘 우리를 벌레(?)보듯했다

항상 반듯한 자세로 앉아서 수업에 몰두하던 그 애 모습이 지금도 선명하다.

어떨땐 약간 찡그리면서도 비웃는듯한 표정으로 우리를 보며 "좀 조용히 해 줄래?"

당시 우리반은 인원이 90명에 육박했고, 선생은 마이크로 수업을 했었다.

 

 

시간이 흘러, 난 이화여대에 들어갔다.

수학은 난감한 점수를 받았으나, 독일어는 만점이었고, 나머지 외우는 과목들 역시 잘 봤다.

하긴,,모의고사보다 40점이나 더 받았으니, 참으로 시험운이 좋았던것이다.

자,,,반전의 시간이 돌아왔다

대학1학년 교양독일어시간에 난 깜짝 놀랐다.  그 아이의 깜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겠지만.

내가 듣던 교양독일어에는 음대랑 미대가 함께 들었는데, 재수생학원 같은 반이었던, 그 모범생

여자애가 앉아있는게 아닌가!!   자기는 작곡과에 들어갔다고 했다.

그 아이는 나를 보고 굉장히 의하해하며 놀랐다. 

맨날  짝이랑 수다나 떨고, 수업에 열중도 안하고, 그러던 나였으니...

 

 

교양독일어는 내게있어 껌이었다.

첫날 과제로 독일어로 자기소개를 써오랬다.  알파벳을 모르면 그냥 이름만 써서내도

좋다고 했다.   나는  A4용지 한장을 거의 채우다시피 써냈다.

독일어강사가 날 일으켜세우더니 본인이 직접 쓴거냐고 확인을 다 했다.

그렇다고했으나, 그 강사는 못미더운지, 시간마다 교과서의 해석을 나만 시켰었다.

근데,, 어떤 과제를 받은날,  그 모범생 작곡과 아이가 나한테 오더니 과제에 대해 도움을

요청하는게 아닌가!  그 아이의 표정은 비굴? 챙피? 암튼 주인에게 순종하는 강아지의 얼굴

표정이었다.   불과 몇달전에 날 쳐다보던 그 차갑고, 비웃는듯한 그런 표정이 확 바뀌는

반전을 맛보았다.  (좀 짜릿하기까지...ㅋㅋ)

 

살다보니, 여러종류의 반전을 맛보게 된다.

좋은 반전이 있는가하면, 기억하기도 싫은 반전도 수없이 맛볼 수밖에 없다.

나는 인생전반에 걸쳐 열심히 살지 않은것같다.

항상 대충대충..  그러니, 결과역시 별로다.

대충살은 삶의 반전은 아마 없는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