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마 순
부엌에 있던 고구마 중 한 개
순한 싹을 틔웠다
생살 뚫고 간신히 숨통 튼 애린 생명
댕강 부러뜨리고 삶아 먹을 수 없어
보시하 듯 물을 부어 주었다
뒷날 아침
쑤욱 올라온 순들
키순대로 정렬하여
대롱대롱 빛을 잡고 있는 모습
너무 이뻐서
가슴 한 켠이 시렸다
이 말간 새순들
물이 아무리 많아도
물만으로는 살 수 없을 텐데
산다는 건 잠시 빛을 쥐었다 놓는 것
죽음이 없다면 태어난 의미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듯
파릇파릇 죽음을 노래하는 잎들
세상에 눈물겹지 않는 것이 어디 있으랴만
가늘가늘 매달린 연약함이
눈물겨워서 눈물겹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