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4,933

아름다운 인연(CBS 배미향의 저녁스케치에 방송 나왔던 글)


BY 비단실 2010-11-06

겨울로 가는 초입 11월 서울의 늦은 밤

옅은 안개에 쌓인 풍경이 나름 신선했고 밤 공기는 차가웠다

하지만 마음은 터질 듯 벅차고 따듯하기만 하였다

 

세상에 어떤 애인을 만난들 이런 느낌을 맛보겠는가?

 

오늘 아니 어제 사무실에서 근무 중에도 시시때때로 퇴근 후면 드디어 만나게 될 

그녀(?)로 인하여 가슴은 콩닥거리고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는 떠나질 않았다

 

어떤 모습일까?

처음 만나 무슨 말부터 하지?

 

울지는 말아야지 그런데 덜컥 눈물부터 주책없이 흐르면 어떡하지?

 

얼마 전 통화에서 나는 그녀에게 생일이 얼마 남지 않으셨죠 물었다

 

그녀는 한사코 아니라 하였지만

분명 어제 음력 9월 30일 양력 11월5일 금요일은 그녀의 생일이었다

 

2010년 올해 초 봄이 아직은 먼 겨울 언저리에서 그녀를 알게 되었다

 

서울시 다산 콜센터에서 서울시에 거주하며 홀로 외롭게 살아가시는

어르신들께 전화 안부 봉사를 하고 있었는데 일손이 모자란다며 나의 근무처로

지원 요청이 왔고 그 일을 계기로 일주일에 한 번 그녀와의 전화 안부

아니 전화 데이트가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서먹하기도 하였지만, 겨울이 지나 개나리 진달래 피는 봄이 오자

그녀는 동네 학교 운동장으로 걷기 운동을 나갔는데 꽃이 예쁘게 피었다는

꽃소식도 전화로 통해서 알게 되었고

 

저녁이면 TV 드라마를 자주 보시는데 사극 "동이"가 너무 재미있다고

그리고 지난달에는 복지관에서 야외 견학을 가게 되어 생전 처음 창경궁을

가보았는데 드라마에서 보았던 궁의 모습을 실제로 보니 너무 신기하고 좋았다고 하셨다

 

그녀와 일주일에 한 번 길지 않은 짧은 통화에서 시간이 흐를수록

나도 모르게 어머니라는 호칭을 어색하지 않게 쓰게 되었다

 

부모님 모두 세상에 안 계신 나의 처지에 오랜만에 어머니라는 호칭을 쓰던 날

얼마나 기분이 좋았던지...

 

그렇게 일주일에 한 번 전화 안부로만 인사를 드리다가

직장에서 새롭게 맡은 업무가 NGO 단체 상담 업무였는데 해당 구호단체에서

지구촌 희망 편지쓰기 대회를 개최하였고 대회에 참가한 학생들의 편지에

어려운 아이들을 돕고 싶다고 후원 의사를 남긴 학생들의 부모님께 통화를

드리는 업무였다

 

후원금액과 후원 소식지 보내드릴 주소를 확인하는데

생각한 것 이상으로 많은 부모님께서 매달 정기 후원을 신청하였고 그 일을

계기로 나도 전화로만이 아닌 실제로 나와 인연이 된 그녀에게 맛있는 간식을 매달

보내드리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안 호두과자, 고명이 여러 가지로 들어 있어 색도 맛도 좋은 떡, 모양도 화려한 화과자,

복날이면 수박, 생전 처음 호두과자를 맛보셨다며 좋아하시기에 다시 또 호두과자 등등...

 

택배를 받으신 후 전화를 드리면 언제나 돈을 쓰지 말라고  왜 돈을 들이느냐고

전화만 해줘도 이렇게 반가운데 그러지 말라고 하셨다

 

하지만 받는 기쁨에 앞서 나누는 기쁨이라는 것이 참으로  매력 있고 사람을 행복하게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의 생일!

 

미역국이나 드셨을까?

 

매 년 있는 생일이라지만 그래도 내가 겪어보니 이름 지어진 날에 아무도 알아주지 않으면

그 쓸쓸함이란 게 얼마나 고독한지를 알기에 생일날 어찌 보내실까 궁금해하다

퇴근 후 직접 찾아가 뵙기로 하였다  

 

내가 알고있는 그녀의 주소

서울 성동구 응봉동 000-000 번지 그리고 지하방

연락처로는 휴대폰도 없으시고 집 전화만 있는데

 

달랑 이렇게 그것도 퇴근 후 해도 저문 저녁 시간에 과연 잘 찾아갈 수 있을까?

 

뜻이 있는 곳에 길은 있다고

곁에 함께 근무하는 신입사원 후배가 자기가 그쪽으로 가는 길을 조금 안다고

동행하겠다 선뜻 나선다

 

얼마나 고마운지...

 

한결 마음에 부담이 덜어지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업무를 마치고 후배와 나는 그녀의 생일 축하 길에 나섰다

 

주소지 하나 들고...

 

생일에 빠지면 안 될 생일 케이크도 준비하고 어머니에게 드릴 보라색 꽃무늬 

 머플러도 포근한 겨울용으로 준비하였다

 

같은 서울이라지만 초행인 응봉동

대방동에서 1호선을 타고

용산에서 하차하여 중앙선으로 환승을 하고 응봉역에 내렸다

 

평소 전화 통화해서 집 근처에 학교가 있어 걷기 운동을 하신다고 하였기에

지나가는 아주머니에게 상냥한 후배는 얼른 곁으로 다가가더니 이곳에 응봉 초등학교

가려면 어떻게 가나요?

 

와~~ 후배는 길 찾기 선수다

 

나는 그저 뒤만 따랐다

 

그러다 후배는  걱정 마세요 찾을 수 있을 거예요

 

모르면 주소만 갖고 부동산 찾아가 물으면 되는걸요~

 

응봉동!

 

예전에는 왕십리라고 부르던 곳

지금은 재개발로 고층 아파트가 즐비하게 들어서 있었고 그 곁으로 산비탈 언덕에

작은 빌라와 주택이 빼곡하였다 

 

삐닥거리는 구두 다행히 후배는 발 편한 운동화 차림이었다

후배는 씩씩하게 걸으면서 작은 구멍가게 문을 열어 머리가 반은 벗어진 아저씨에게

주소를 말하면서  어찌 가느냐 묻는다

 

가게 주인아저씨 위로 죽 가다가 꺾어져서 한 번 가봐요 아마 거기가...

 

막연하기도 하였지만 후배와 나는 주욱가다가 옆으로 꺾어져서 갔는데

나중에 집을 찾고 보니 한 바퀴 산동네를 휘 돌아내려 오는 결과가 되었다

 

하지만 물건도 사지 않았는데  아는 대로 안내해 주신 아저씨도 감사하였다

 

눈이 밝은 후배는 어둠 속에서도 문패를 보고 점점 해당 번지수에 가깝게 왔다고

기뻐하였다

 

드디어 그녀가 아니 어머니가 사시는 집 근처에 도착하였다

 

휴대폰을 꺼내 집으로 전화를 드렸다

 

언제나처럼 기운이 없으신 목소리로 여보세요~ 하신다

 

어머니 저예요~

금방 목소리를 기억하고 반가워하신다 

 

제가요 사실은 어머니 사시는 동네에 와 있었거든요~

 

아니 뭐라고~

 

어떻게 먼 곳까지 이 밤에 온 거야~~

 

오늘 어머니 생신이시잖아요~

축하해 드리려고 왔지요~

 

어머니는 갑작스러운 방문에 놀라시면서 집 근처에 태양 부동산이라고 있는데

그 앞으로 나오신단다

 

태양 부동산?

태양 부동산이 어디 있는지 두리번두리번

 

그때 후배가 아~ 저기 있어요~

간판에 불은  꺼져 있지만 저기 보이잖아요

 

태양~ 부동산~~

 

그렇게 찾은 태양 부동산 앞에서 늘 전화로만 안부를 묻고 지내던

어머니와 뜻깊은 해후를 하였다

 

어머니도 나도 서로 너무 반가워하면서 손을 꼭 잡고 아이처럼 좋아했다

 

나중에 어머니 작은 지하방에 앉아 어머니와 이야기하면서 어머니의

손이 류머티스성 관절염으로 심하게 변형되어 울퉁불퉁 혹처럼 관절이

튀어나와 그런 손을 꽉 잡으면 얼마나 아픈지를 알면서 처음 만나 반갑다 꽉

잡은 손이 혹여 아프시지는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울지 말아야지 했지만

후배도 나도 어머니가 살아가시는 모습을 보며 눈물이 나와 꾹 참느라 힘이 들었다

 

주택에 지하방 곰팡내도 나고 방바닥에서는 가끔 물도 나와 삼중으로 장판을

깐 거라고 하셨다

 

대문도 없고 계단을 몇 개 내려가 알루미늄 샷시 문을 열면 바로 부엌

시멘트 바닥에 가스레인지가 올려져 있는 싱크대가 하나 있었다

 

주로 복지관에서 반찬을 해다가 주니까 직접 조리를 안해 드셔서 그런지 반찬 냄새도 없고

언제 쓰셨는지 모를 가스레인지에는 신문지가 덮여 있었다

 

싱글벙글 좋아서 어찌할 줄 모르시는 어머니 작은 체구에 인상은 생각한 대로

깔끔하고 좋으셨다

 

좁은 방에는 냉장고 하나, TV , 이불 올려놓은 삼단 서랍장,  

선풍기, 전기 밥통, 작은 팔각 상, 아마도 상은 치우지 않고 늘 고정으로

방안에 놓고 식탁처럼 쓰시는지 반찬통과 수저가 상위에 그대로 놓여 있었다

 

생각한 것처럼 어머니의 허허로운 삶의 모습들이 현실의 모습으로

눈앞에 보였다

 

누구나 여유롭고 편안한 노후를 꿈꾸지만

나는 절대 아니라고 자신의 당당한 노후를 누가 감히 장담하겠는가?

 

후배와 나는 생일 케이크를 꺼내 생일이 아니라고 내게는 생일 그런 거 없다고

 말씀하시는 어머님 생일날에

 

생일 축하 노래도 불러 드리고 촛불에 소원도 빌고 끄시라고 말씀드렸다

 

선물로 준비한 보라색 머플러를 목에 둘러 드렸다

 

무척 좋아하셨다

 

너무 멋져서 나 같은 사람에게는 안 어울리거라 그렇게 말씀하시면서도

환하게 웃으셨다

 

어머니의 눈가가 젖으시고 그런 어머님의 모습에

나도 후배도 눈물이...

 

이 작은방에 누워계시다 전화벨이 울리면 천천히 일어나

여보세요 하셨을 어머니의 전화기가 눈에 가득 들어왔다

 

어떻게 갑자기 여기까지 왔느냐 물으시기에 

그렇게 멀지는 않더라고 직장 앞이 역 근처라 지하철 한 번 갈아타고 편하게

왔다고 말씀드리니 어머니는 아직 지하철을  타본 적이 없다고 하셨다

 

후배와 나는 동시에 정말요?

 

70년 인생에 호두과자라는 걸 이름은 들었지만 처음 드셔 보았다는 어머님

 

서울에 사시면서도 그것도 응봉역 근처에 거주하시면서 수없이

오가는 지하철을 먼발치에서 바라만 보시고 막상 본인은 한 번도 타본적어 

없으시다는 어머님

 

15살 어린 나이에 시집와 평생 여자 좋아해서

어머니 속 많이 상하게 했던 할아버지에 대한 쓰린 기억과 그리하여

인연의 고리를 끊고 오랜 세월 외롭게 지내 오셨다는 어머님

 

후배와 나는 어머니의 생일에 말 그대로 번개 생일잔치를 하고

어머니의 작은 지하방을 나와 헤어지면서 뒤 돌아 손을 몇 번이나 흔들면서

아쉬움의 작별을 나누었다

 

그러면서 후배는 자신도 6억이나 되는 큰돈을 시숙의 사업에 투자했다가

실패로 끝나며 형편이 어려워져 직장 생활을 다시 시작했다고 했다

 

많이 잃었다고 좌절할 때 그래서 삶의 희망과 용기를 잃어 상실감이 깊을 때

 

주위를 가만히 살펴보세요~

 

내가 얼마나 가진 것이 많은 부자인지 나눌 것이 아직도 내게 너무도 많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아름다운 인연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