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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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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BY 시냇물 2014-08-20

내일은 친정 아버지의 기일이다 

원주에 계신 엄마도 뵈올겸 다녀오려다 이번엔 못 가게 되어

오늘 아침에 남편과 함께 산소엘 다녀왔다

 

아버지가 계신 곳은 파주시에 위치한 동화경모공원이라는 실향민들을 위한

공원묘지이다 각 출신 지역별로 깨끗하게 꾸며진 묘역에는 후손들이 놓고 간

가지각색의 조화들이 묘지마다 양쪽 화병에 꽂혀 있어 쓸쓸해 보이지는 않았다

 

나 역시 오랜만에 가뵙는지라 공원안에서 팔고 있는 화려한(?) 장미 조화

두 다발을 샀다

아버지가 계신 함경남도 지역을 찾아 차를 세우니 이미 공원 관리소 측에서

추석을 맞아 미리 벌초를 해놓았는지 묘역 주변과 묘도 깨끗이 다듬어져 있어

마음이 놓였다

갖고 간 자리를 깔고 과일을 올리고 떡집에서 산 떡도 두 팩을 올렸다

생전에 아버지는 술을 좋아하셔서 늘

"이다음에 나 보러 올 때는 소주 한 병이면 된다!"고 입버릇처럼 말씀을 하셨다

그래 아버지가 좋아하시던 소주도 한 병을 사다 목마르실테니 우선

드시라며 한 잔을 따라 올렸다

이번엔 집에 있던 작은 액자에 넣어 놓은 젊을 적 아버지 사진을 갖고 가

젯상 위에 올려 놓고는 아버지께 절을 하였다

 

'우리 5남매 아버지가 잘 보살펴 주시고, 엄마도 건강히 지내시도록 지켜주세요!'

라는 말을 마음속으로 드렸다

벌써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14년이나 되었다

갑작스레 우리 곁을 떠나신 게 아직도 생생하건만.....

 

생전에 아버지를 뵙지 못한 남편도 술을 한 잔 올리며

"얼굴도 모르는 사위 술 한 잔 받으세요!"라며 인사를 한다

아버지 자리는 묘역 중 제일 가장자리 도로와 인접한 부분이라 옆으로

넉넉하니 자리의 여유가 있어 머잖아 엄마가 돌아가시면 나란히 계시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엄마는 평생 아버지와 별로 사이좋게 지내시지를 않아서인지 지금도

아버지 옆에 가시라면 질색을 하신다

그냥 화장해서 납골당에도 가두지 말고 훨훨 뿌려 달라 하신다

워낙에 어디 갇혀 지내는 걸 싫어하시는지라 지금도 80이 넘은 연세에

홀로 지내시며 일주일 스케줄이 꽉 짜일만큼 활동적으로 지내고 계신다

노인들 건강이야 장담할 일은 아니지만......

 

아버지 묘역 옆 그늘진 곳으로 자리를 옮기고는 한동안 남편과 앉아 있었다

오랜만이라서인지 쉽사리 떠나고 싶지가 않았다

늘 홀로 계시던 아버지는 내가 온 걸 알기나 하실까?

남편도 나도 이젠 이런 풍경이 낯설지가 않다 인생 100세 시대라고는 하지만

우리에게도 머잖아 닥칠 일이고 또 누구나 겪을 일이기에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 여겨지진 않는 까닭이다

아버지 산소를 보면서 남편은 더욱이나 작년에 돌아가신 형님 생각이 나는 모양이다

말이 좋아 수목장이지 어린 나무 한 그루에 뺑둘러 12개의 구멍을 뚫어 그속으로

잿가루가 된 형님을 집어 넣던 모습을 본 충격이 아직도 가시지 않는다며

적어도 지금 아버지 산소 정도는 되야 하는거 아니냐고 한다

 

아버지도 생전에 미리 마련을 해놓았기에  틈틈이 명절 때면 와보시고는

내심 당신이 묻힐 곳이라며 마음을 놓으셨던 것 같다

나이를 먹으면 아무래도 자신의 마지막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으니

그렇겠지만 앞으로는 화장이 더욱 대세가 될 듯 하여 눈앞에 계단식으로

쫘악 펼쳐진 묘역들을 보며 우리는 불과 30년만 되어도 이런 풍경이 사라지지

않을까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렇게나마 기일에 못 가는 아쉬움을 산소에 다녀오는 것으로 달래니

마음이 조금은 편해진다

명절 때는 어차피 아들,며느리, 딸,사위들이 오는지라 겨우 기일에나

뵐 수 있을뿐이라 이렇게 다녀오는 것으로 알량한 딸자식 노릇을 한 것이다

 

아버지도 이런 내 마음을 아시려나......

 

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