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병 팔아서 먹고 사는 홈리스들이 주차장 철조망을 잘라
내 자전거를 훔쳐 간 사건이후, 뒤쪽에서 나는 소리에 예민한 터에
쓰레기 버리는 뒷 문에서 우당탕탕 탱크 뒷바퀴 빠지는 소리가 나 달려갔다.
“뭐야!”
“여기, 아니 저기 … 저기 윗 층에 사는 사람… 건물 윗 층에 사는 사람..”
뺀질 뺀질하게 빛나는 대머리의 인도계 혹은 아랍계 남자는
작은 동양영자가 쇠 칼날 같은 날카로운 톤으로 소리치며 뒷문을 쾅 열어젖히자
놀란 듯 다급하게 설명을 한다.
이삿짐 옮기는 바퀴달린 수레에 미니 냉장고를 싣고 와서
쓰레기 통에 넣으려고 안간힘을 쓰다가 키가 닿질 않아
냉장고는 땅바닥에 떨어지고 수레는 저 만치 굴러 가 있다.
워낙 땅이 넓은 나라인 캐나다는 쓰레기 버릴 땅도 많은 지
종량제나 분리 수거를 하지 않고
그렇게 냉장고니 침대니 큰 물건들도 분해하거나 쓰레기 창고에 넣어 두기만 하면
대형 차량이 가뿐하게 통째 싣고 가서 해치워준다.
내는 세금도 엄청 많지만 덕분에 그런 편리함은 또 똑 소리가 난다.
이 남자 이마에 땀까지 송글송글 맺힌 게
서양인들 기준으로 만든 높은 쓰레기통에 냉장고 넣기가 쉽지 않았을 것.
나도 폐잡지 하나 꺼내려다가 거꾸로 처박힐 뻔하고,
박스 넣다가 통 껴안고 자빠진 적도 있다.
그 뿐인가.
싱크대 수납장은 중간 칸 이상 손이 닿질 않아 윗 칸은 연례행사에 사용할 물건들만 진열하고
설거지 할 때 조차 플라스틱 발 받침대를 딛고 서야 물 튀지 않고 편한 자세로 일을 할 수 있으니
작은 키의 부족함보다 자기들 키 높이에 맞춰 만든 모든 것에 불편함을 겪고 있던 터라
서로 마음이 단번에 통하면서 거리감이 사라짐을 느꼈다.
“어머, 겉은 멀쩡한데 냉장고가 고장났어? 기스하나 없구만. AS를 받지 그랬어?"
오지랖 콜라, 첨 보는 남자 잡고 어디서 샀냐, 가스를 주입해 봤냐, 기술자를 불러서 확인 해 봤냐…….
내 상냥함에 좀 친근함을 느낀 남자, 그러지 않아도 ‘이글루’라는 브랜드 본사에 전화 걸어
서비스 신청을 했더니, 제조사 주소지 방글라데시 주소를 알려주며 자비 부담으로 보내라고 해서
차라리 버리려고 한다는 등 맞수다를 떤다.
“ 어쩌니 그럼’’’’ 에휴, 너 이번 달에 세금 많이 냈을 텐데 생각하지도 않던 지출이 생겨서 어쩌니?”
진정으로 걱정하는 내 말에 걱정해줘서 고맙다던 그 남자, 일본사람이냐고 묻는다.
“노!! 나 한국사람. 그러니까 너, 이다음에 가전제품 사려면 뭐니 뭐니 해도 대한민국, 메디인 코리아를 사.”
한국산 중에서 어떤 게 좋으냐고 묻는다.
“삼성!! 엘지!! 너 오늘 우리나라 인터넷 뉴스에 나오고 아마 이 나라 신문에도 나왔을걸?
세계 텔레비전을 산 사람 중에서 세 명 중 한 사람이 삼성, 엘지 제품을 샀대 잖아. AS도 최고구..”
가전제품 이야기에 이어 렌트비며, 현재사용 중인 가전제품과 선호하는 국가, 브랜드, 요즘 날씨
동계올림픽으로 진 빚을 시민1인당 얼마씩 갚으면 몇 년이나 걸릴 지......
온갖 잡다한 수다를 떨던 남자에게 앞으로 가전은 무조건 삼성 아니면 엘지제품이라고 못을 박은 다음
또 보자며 이만 총총....... 굿 나잇 하고 가게로 들어왔다.
남편이 누구랑 그렇게 수다를 떨었냐고 묻는다.
웅 ~ 윗층에 산다는 남자가 냉장고를 버리려고 와서…. 어쩌구……. 저쩌구……. 하고 왔어.
홋 ~ 외국남자였어?
웅~ 왜?
빙긋이 웃던 남편….
“햐, 울 애기 천재네 천재….”
뭐가?
“영어도 잘하지… 한국말도 잘하지…. 내가 5년 머리털 빠지게 공부해도 못 한 걸
몇 달 만에 해치운 거 같아…..”
히히, 그러네…. 나 한국말은 정말 잘하긴 하지… …
칭찬은 거짓말이라도 기분 좋은 법. 내가 좀 잔머리는 좋지...
흐뭇해하는 내 등뒤에서 그가 큭큭 대며 혼잣말 하는 소리가 꿈을 깬다.
“애들 키워보면 5살 때까지 하는 짓은 다 같다고 하더라.”
씨~
그래.. 나 정신연령 낮다. 어쩔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