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우리가 제일 좋아하는 오리를 한 마리 사왔습니다.
작아 보이긴 했지만 위생적인 진공포장 탓이라 여기며
녹길 기다렸습니다.
이제 빨리 저 넘의 오리를 푹 고아서
살을 쪽쪽~~찢어 후추랑 깨소금 넣은 소금장에 찍어 먹고
봄 꽃 흐드러지게 핀 저 공원들을 자전거 타고 펄떡 펄떡 뛰어다녀야지....
생각만 해도 침이 꿀꺽 넘어 가더군요.
냉동실을 열어보니 앗, 인삼도 생강도 찹쌀도 없습니다.
에라~ 그대향기님 말처럼 ‘안되는 게 어딨어’
압력솥에 계피, 느릅나무, 통마늘, 상황, 있는 대로 조금씩 넣고 끓이기 시작
30분쯤 지나면서 계피 냄새가 솔솔 나더니 맛있는 향내가 집안을 채우기 시작합니다.
쫄깃하면서 담백한 오리고기를
자기 한 입~~~~~ 나 한 입~~~~ 먹을 생각에
칙칙폭폭 시끄럽게 떠드는 압력솥을 노려보며 주방을 서성거리는데
음....
태국, 인도 어느 도시에서 골목까지 나와 길나그네를 유혹하던.....
약재들이 혼합해 만들어 내는 향내가 코를 자극하더니
예상을 빗나가지 않은 듯 보였습니다.
새로운 맛에 대한 기대로 우린 의식을 치루 듯....
조심 조심.... 오리를 건져 큰 접시에 옮겨 담았습니다.
먼저, 국물 한 수저 맛을 본 남편
가타부타 말없이 젓가락으로 오리 궁댕이를 이리 저리 뒤적이며
신체 검사(?)를 합니다.
"야~~~ 아~~ 이거 ..... 아무리 오리고기를 좋아한다 해도 그렇지 혼자 살 다 떼어먹은 거 아냐?~"
ㅋㅋㅋ
그러고 보니 진짜 얘가 완전히 25개월 다이어트를 했거나
사망원인 추적하면 거식증 환자로 나올 법 한 앙상한 몸매 입니다.
"자기 ... 혹시 우리... 개 먹이 잘못 사온 거 아냐?"
"흐..그럼 식료품점에서 파냐~?? 팻 샵에서 팔지"
"아냐.. 예전에 개 통조림을 잘못 알고 사 먹은 사람도 있다고 들었어~"
정말 가난한 유학생 부부가 소 꼬리, 우족 , 등뼈,사골이 눈 뒤집히게 싼 걸보고,
곰국만 먹고 살았는데 알고 보니
사골 먹지 않는 외국인들이 개먹이로 주기 위해 파는 거 였다는 에피소드.
하지만 오리고기를 개 간식으로 판단 말은 들어보지 못했는데......
"그럼 ... ........ 우리가 캐나다의 큰 새를 오리로 잘못 사온 거 아닐까?"
"아냐~ 분명 오리라고 쓰여 있잖아"
ㅋㅋ 하긴 네임 라벨을 잘못 표기할 수........ 도 있긴 하죠.
누가 엿들을까.... 기밀 나누 듯 소근 소근…...
우리의 저녁 대화는 마치 CSI 요원 스타일로 오가고 있었습니다.
남자들의 면도 칼질도 경력인지, 나보다 능숙하게 기술적인 솜씨로
뼈들 사이를 덮고 있는 얇디 얇은 살을 발라내더니
내 밥 위에 얹어줍니다.
"많이 먹어~~~~~~ "
많이 먹어? 한 솥 다 먹어도 한국오리 한 다리도 안 될 깜양이건만
남편이 이렇게 나오면 또 마누라도 곰살로 화답하는 게 예의.
"아냐~~ 아냐~~~~~~ 자기두 오리 고기 좋아하잖어~"
"아냐 아냐~~ 울 애기 마니 먹구 힘내서 공원가서 달리기해 웅~"
ㅋㅋㅋ
배통 큰 내 위장에 기별도 안 될, 살 몇 점을 서로 먹으라고 이리저리 옮겨 놓으며 생각합니다.
그래.... 부부란 도토리 깍지에 간장을 담아 먹고 살아도, 맘 만 맞으면 행복하다....
우리 엄니 지론이죠.
원래 가난한 집안 자식들이 형제간 우애가 더 있다더니
한국보다 부족한 것들이 때론 오히려 우리 마음을 더 풍족하게 합니다.
설사....
큰 새를 오리로 착각해서 사 왔다 해도
한국 오리의 두둑한 엉댕이 살집보다 몇 배 큰 사랑으로 마음이 부른
행복한 저녁 식탁에서 콜라였습니다.
오늘은 어제 죽은 사람들이 그렇게도 소망하던 내일 입니다.
늘 행복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