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이웃집 복순씨
아무리 효녀라 해도 매일을 그 부모만 바라보고 살 수는 없다. 특히 자기 일을 가지고 사는 내 딸의 경우는 더 그렇다. 먼 곳에 두고 그리워했던 터라 해도 제 삶이 있는 걸. 버지니아를 중심으로 지난번엔 동쪽으로 돌고 이번에는 북쪽으로 돈다 하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피치 못해 주말에 직장에 나가는 날이면, 영감과 나는 집 앞의 공원 벤치에서 여유를 부린다.
지나가는 사람도 없다. 그러니 눈인사를 나눌 이웃도 없다. 낮에는 일터로 모두 나가고 승용차로 출퇴근을 하니 길거리에는 내리쬐는 햇볕만 강렬하다. 도대체 에어컨은 얼마나 씽씽 돌리는지 콧속까지 시원하다. 햇볕이 강하기는 하나 무덥지도 않고 오히려 산뜻하다. 습기가 적어서라고 한다. 그러니 나 같은 수준급 병자는 거목 아래의 그늘이 제격이로구먼.
일주일쯤 지나고 나이아가라 관광을 꿈꾸는 즈음. 간간히 지나나는 승용차 소리 외에는 적막강산(寂寞江山)이다. 그날도 나는 나무그늘의 벤치에 앉아 나이아가라의 홍보책자를 뒤적이고 있었다. 어느 곳이든 관광 전에 조금의 사전지식을 갖는 건 필수라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누군가 말을 붙여 와도 내 짧은 영어실력으론 걱정이 아닌가.
“한국에서 오셨어요?”
이 무슨 반가운 소리인가. 화들짝놀라 돌아보니 제법 볼품 있는 몸매의 내 또래 아주머니가 웃고 서 있다. 재차 묻는다.
“한국에서 오셨지요?”
이렇게 말문을 튼 우리는 금방 제법 친한 이웃이 되었다. 그녀는 매일 내가 벤치에 나오기를 집 앞의 의자에서 기다린다고 영감이 전 한다. 내가 공원의 나무그늘 밑 벤치로 나오기를 목을 빼고 집 앞에 앉아 있다고 한다. 그랬다. 그녀는 먼저 나와 자리를 잡고 앉았을 때에도 아예 뒤를 돌아보고 앉아 있다. 내가 다가 가면 환히 웃으며 반기곤 한다.
그녀와 나란히 앉았으면 심심치 않다. 한시도 쉴새 없이 말을 한다. 내 말은 들으려 하지도 않는다. 아니 나에겐 아예 말을 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 듣고만 앉아서 장단만 맞추어 주면 족하다. 오늘은 27년 전에 그녀가 미국으로 건너 온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 대목에서는 늘 유쾌했던 그녀의 음성이 한 풀 꺽이고 있다.
조실부모하고 두 오빠의 손에 길러진 그녀의 삶은 차라리 ‘방치’였던 모양이었나 보다. 집에 들어가는 날보다 친구들의 집을 전전하는 날이 많았다고 했으니 말이다. 그렇게 살던 그녀가 피부가 까만 미국인을 예비신랑이라고 데리고 오빠들 앞에 섰으니, 반겨 맞을 오라비가 어디 있겠는가. 더군다나 거의 30년도 전에 말이지.
결국 결혼식도 올리지 못하고 미국행 비행기에 오른 그녀는, 내가 무슨 복이 이리도 많아 이런 신랑을 만나서 미국엘 다 가는가 하고 행복하기만 하더란다. 다행히 그녀의 신랑은 착하고 온순해서 아무런 문제없이 시민권을 따고 ‘미국인’이 될 수 있었다 한다. 슬하에 예쁜 두 딸을 두고 평범한 전업주부로 평생을 살았더란다.
그러나 내가 아는 한, 평생에 직업 한 번 가져보지 않은 미국여성을 평범하다고 보지는 않는다. 그래서 정부로부터 그녀는 아무런 연금혜택을 받지 못하는 것으로 안다. 다행스러운 것은 남편이 오랫동안 직업군인으로 있었기 때문에 욕심 내지 않는다면 살아가는 데에는 큰 지장이 없이 사노라고도 한다.
그러나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했나? 그녀는 지금 암을 앓고 있다. 두 달 전에 항암 약을 바꾸고는 머리가 모두 빠졌다며 늘 쓰고 나타나던 모자를 벗어 보인다. 그동안 안부도 모르고 살던 두 오빠가 보고 싶다고도 한다. 내가 사는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의 주소를 적은 꼬깃꼬깃한 메모지를 내 보이기도 한다.
찾아봐 달라는 뜻으로 알고,
“오빠를 찾아볼까요?”했더니 고개를 저으며 씁쓸하게 웃는다.
“그냥 이렇게 살다가 갈래요.”한다.
“나, 내일 한국으로 가요. 오빠 찾고 싶으면 지금 말해요.” 그래도 그녀는 머리를 흔든다.
미국시민이어서 행복하다는 그녀. 미국은 뭐든지 커서 좋다는 그녀. 버지니아가 한국의 10배가 넘는다고 자랑하더니 그건 과장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녀가 날 ‘한국의 촌할매’쯤으로 너무 얕잡아봤는가 싶기도 하다. 그러나 그녀도 내가 한국으로 떠나는 날엔 눈물을 보였다.
“참 좋겠다.”라며 한숨처럼 내 뱉던 그녀의 음성이 자꾸만 귓가에 맴돈다. 오늘도….
보림아~!
미국이 크긴 큰 나라더라. 너도 머지않아 볼 기회가 있겄쟈?!
근디 있잖여~. 뭐니뭐니 혀도 내 것이 좋은 것이여.
호텔 창 밖으로 보이는 나이아가라의 전경(오른쪽이 카나다쪽이고 왼쪽이 미국쪽. 미국과 카나다를 잇는 무지개다리가 보인다). 지금은 꿈을 꾼 듯한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발아래 수영하는 거시기를 툰 그녀보다는, 발아래 '나이아가라폭포'를 둔 내가 훠~ㄹ 행복해여~/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