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가 큰 할배와 키가 작은 할매는
“여보. 여보. 빨리 빨리. 빨리 더운 물 좀….”
갑자기 산해발이 돋는다. 산해발이란 출산 뒤에 조리를 하다가 바람을 쐬고, 그래서 으쓱하는 추위를 말한다. 그러나 몸이 약한 사람은 출산과 관계없이 나타나는데 몸이 부실할 때 그렇다고 하더군. 워낙 몸이 시원찮은 사람이라 나도 가끔 그러기도 한다. 그럴 땐 따끈한 물 한 잔이 직효 약이다. 한참 심할 때에는 이불 밖으로 손을 내밀 수도 이불을 뒤척일 수도 없다.
“빨리 뜨건 물 좀!”
긴 몸을 일으키려니 시간도 길게 걸린다. 주방에서 커피포트에 물을 데우는 소리가 들린다. 잠시 후에 방문이 열리고 영감이 들어온다. 하하하. 저 모양새를 좀 보시게나. 쟁반에 컵을 올리고 긴 몸을 잔뜩 구부린 채 새악씨 걸음을 하고 들어온다. 한 발 두 발…. 잔의 물은 잔 위로 부풀어 올라 터질 것만 같다. 재주도 좋다. 이불을 둘둘 말고 일어나 앉는다.
허~~~~~~~~ㄱ!
“이걸 뜨거워서 어찌 마시나엿!”
입술을 데일 뻔하고는 물컵을 내려놓는다.
“찬물을 좀 갖다 줘봐요.”
남편은 귀찮다는 표정으로 다시 일어나 나간다.
우아~~~~~~~ㅇ.
이번에도 물을 담은 컵은 찰랑찰랑. 넘치기 일보 직전이다. 이를 어쩌누. 찬물에 더운물을 섞으랴 더운물에 찬물을 섞으랴.
“누가 당신한테 머리 좋다 했대요?”
남편은 머리가 좋아서 ‘박사’로 통한다.
그래도 말의 뜻을 몰라 어리둥절하고, 서서 눈을 굴린다.
결국 다른 하나의 컵을 대동하고 나서야 나는 따신 물을 마실 수 있었다. 남자라니… ㅉㅉㅉ. 그렇게도 머리가 안 돌아가나? 아니 내 영감만 그런 겨? 나는 두고두고 친구들이나 손님들과 우스게 거리로 심심찮게 지껄인다. 얘기를 할 때마다 듣는 이들은 손벽을 치며 박장대소. 나도 늙기는 늙었나보다. 아무렇지도 않게 이렇게 남편의 흉을 보다니. 흉만 보나? 나도 같이 박장대소까지 한다 ㅎㅎㅎ.
보림아~!
할배가 좀 모자라신 거 아녀?
할매는 말이야~. 할배가 그래라도 건강하게 오래만 사셨음 좋겄돠~.
할매도 요럴 때가 있었다니께^^
< 미국의 마운틴버너> 에서